주간동아 1372

2023.01.06

문제는 ‘방음판’이 아니라 ‘터널’ 자체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 재발 방지 근본 대책은?… 강화유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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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3-01-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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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서지하차도 방음터널 구간을 차량들이 주행하고 있다. [이슬아 기자]

    1월 2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서지하차도 방음터널 구간을 차량들이 주행하고 있다. [이슬아 기자]

    어두컴컴한 일반터널을 지나면 나타나는 투명한 천장의 방음터널. 1월 2일 오후 10시쯤 기자가 찾은 서울 서초구 염곡동서지하차도 방음터널 구간은 지난해 12월 29일 화재 사고로 4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과 꼭 닮아 있었다. 터널 천장에는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방음판이 쓰여 하늘이 그대로 보였고, 방재등급(4등급)에 따라 터널 안 50m마다 설치돼 있어야 할 소화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사고처럼 우연한 화재가 순식간에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불쏘시개’ 요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국토교통부(국토부) 전수조사 결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관리하는 전국 55개 방음터널 중 53개(96%)에 플라스틱 소재의 방음판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에 따르면 서울 지역 방음터널로 범위를 좁혀도 전체 16개 중 14개(88%) 터널에 전부 혹은 일부 플라스틱 방음판이 쓰였다.

    ‘플라스틱 방음판’ 경고 계속됐지만…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길이 830m 터널 가운데 600m가 불탔다. [동아 DB]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길이 830m 터널 가운데 600m가 불탔다. [동아 DB]

    제2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고 이후 방음터널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의 피해 규모를 키운 주원인으로 플라스틱 방음판이 꼽힌다. 통상 방음터널의 방음판 소재로는 PMMA, 폴리카보네이트(PC), 강화유리가 사용되는데 이 중 PMMA와 PC가 불에 타는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천장에는 PMMA 방음판이 덮여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목격자들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번진 불길이 천장으로 옮겨 붙은 뒤 ‘불똥 비’처럼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소방방재 전문가들은 “가연성 소재인 PMMA 방음판이 고온에 녹아내리면서 화재가 2차적으로 확산했다”고 분석한다.

    플라스틱 방음판의 위험성에도 그간 정부 규제는 느슨했다. 국토부 도로설계편람의 ‘도로건설 방음시설 재질 기준’에는 당초 불연성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으나 2012년 개정을 거치며 삭제됐다. 2016년에는 국토부가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개정해 처음으로 터널 등급에 맞는 방재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했지만 예외조항이 많다. 법적으로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소방법상 방음터널은 일반터널로 분류되지 않기에 소화전 등의 설치 지침을 지키지 않아도 위법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국토안전관리원의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도 피해간다.

    플라스틱 방음판 사용에 관한 경고는 한국도로공사, 감사원 등에서 10년 넘게 제기해왔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 2016,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국토부에 PMMA 소재에 대한 ‘부적합’ 의견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원은 국토부 산하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 실태’ 감사를 진행하던 중 국토부에 “터널형 방음 시설의 화재 안전기준 보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보고가 이뤄진 시점은 2021년 말이지만 국토부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 지난해 7월에야 ‘터널형 방음 시설의 화재 안전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제2경인고속도로 사고 이후 정부, 지자체는 부랴부랴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30일 “현재 공사 중인 방음터널이 화재에 취약한 소재를 쓰고 있다면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화재에 튼튼한 소재와 구조로 시공법을 바꾸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국토부는 기존 방음터널에 대해서도 방음판을 전면 불연성 소재로 교체하거나 부분적으로 내화성 도료, 방화 보드 등을 활용해 안전성을 보강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 수원시, 용인시가 신규 방음터널에 강화유리 등 불연성 방음판을 사용하고 기존 플라스틱 방음판을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 “가연성 소재 방음판 교체할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음재 변경뿐 아니라 터널이라는 구조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는 강화유리도 무게 탓에 천장이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고 화재 시에는 깨져서 파편이 되기 쉽다”며 “터널 안 운전자 입장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연성 방음판을 쓴다 해도 화재 시 터널 안에서 발생하는 2차, 3차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며 “우선 재료의 위험성을 없앤 뒤 터널 형태 외에 효과적인 방음 시설물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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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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