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공개한 600㎜ 초대형 방사포. [뉴시스]
韓 세계 최강 포병 전력 갖췄지만…
이 발언이 보도되자 전국 슈퍼마켓과 시장에선 라면 등 비상식량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전 국민이 한동안 전쟁의 공포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당시 북한은 전쟁이 발발하면 실제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능력이 있었다. 1990년대 초 북한은 170㎜ 곡사포와 240㎜ 방사포 실전 배치를 마무리하는 단계였다. 한국은 이들 장사정포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당시 170㎜ 곡사포 사거리는 50㎞ 이상, 240㎜ 방사포는 60㎞ 이상으로 휴전선 이북 기존 포병진지에서도 서울을 타격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군이 보유한 M114 155㎜ 곡사포나 M110 8인치 곡사포는 사거리가 짧아 이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한국군엔 지금 같은 대포병 레이더나 공중 감시정찰자산도 없었다. 북한이 서울에 몇 시간 동안 포격을 퍼부어도 발사원점을 찾아 대응 사격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당시 북한이 정말 전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서울 풍경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던 군은 이 사건을 교훈 삼아 대대적인 포병 전력 강화에 나섰다. 미국으로부터 다연장로켓(MLRS)을 급히 수입했고, K9 자주포 개발과 K55 자주포 개량 사업을 추진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시작한 포병 전력 증강 사업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다. 그 결과 3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세계 최강 포병대국이 됐다. 상비군 전력으로서 105㎜/155㎜ 도합 3000문 이상의 현대화된 자주포, 550문 넘는 다연장로켓 전력을 갖춘 나라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강력한 포병 전력을 갖춘 한국은 이제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no)다. 당초 한국군이 반격 목표로 삼은 북한의 기존 장사정포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존 전력으로는 그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통적 다연장로켓 개념 깬 北·中
지난해 12월 3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참석한 가운데 600㎜ 초대형 방사포 증정식이 열렸다. [뉴시스]
세계 각국이 방사포 또는 다연장로켓시스템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로켓 직경은 커봐야 300㎜ 수준이었다. 미국의 표준 대구경 다연장로켓이 227㎜였고, 괴물 로켓으로 불리던 러시아 BM-30도 300㎜ 정도였다. 각국이 다연장로켓의 구경 한계를 300㎜ 정도로 제한한 것은 이보다 더 커지면 로켓탄 중량이 1t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다연장로켓은 명중률이 다소 떨어져도 넓은 면적을 타격하기 위해 고안된 광역제압무기다. 비교적 낮은 명중률을 강력한 탄두 위력과 여러 발을 동시 발사라는 물량 공세로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 물량 공세가 가능하려면 신속한 재장전이 필수다. 이 때문에 미국은 227㎜ 로켓 중량을 300㎏ 이내로 억제해 6연장 캐니스터에 묶는 방법을 채택했다. 러시아는 300㎜급 로켓 재장전 전용 트럭을 만들어 각 포반에 붙이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2010년대 등장한 중국 웨이스(衛士) 다연장로켓시스템은 전통적인 다연장로켓 무기의 개념을 깨뜨렸다. 최근 몇 년간 매우 다양한 유형이 등장한 북한 대구경 방사포의 기술적 바탕이 된 무기다. 중국은 유사시 본토 해안에서 대만에 화력을 대거 쏟아부을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 러시아 BM-30을 복제한 03식 원정화전포를 만들었다. 이후 웨이스 시리즈를 거쳐 ‘16식 300호미/370호미 상식화전포’라는 무기도 완성했다. 이 무기들은 다연장로켓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유도 기능을 추가해 명중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사실상 미니 탄도미사일이다.
이들 로켓엔 유도 기능이 도입돼 명중률이 미사일 수준으로 높다. 그렇기에 기존 다연장로켓처럼 부족한 명중률을 보완하는 물량 공세 작전이 필요 없다. 점표적을 공격할 땐 충격신관을 세팅해 표적에 직접 명중시키고, 광역 제압이 필요할 땐 시한신관이나 근접신관으로 공중에서 폭발시켜 넓은 면적에 파편 비를 뿌릴 수 있다. 탄두중량 역시 200㎏이 넘기에 어떤 표적에 대해서도 충분한 파괴력을 기대할 수 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 유도 기능이 추가된 초대형 다연장로켓을 만들고 얼마 안 돼 북한도 유사한 여러 종류의 무기를 만들어 내놓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구경 방사포들은 사실상 미니 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의 직전 세대 주력 탄도미사일이던 스커드 시리즈는 직경이 880㎜, 길이 11.25m 수준이었다. KN-25는 직경 600㎜, 길이 8.6m 정도로 기존 스커드 대비 80%가량의 크기를 갖고 있다. 스커드 미사일이 유형에 따라 300~550㎞ 사거리와 700~1000㎏ 탄두중량을 가졌던 것을 고려하면 600㎜ 초대형 방사포는 스커드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를 약간 줄이고 소형화한 무기다. 더 큰 문제는 KN-25가 크기와 사거리만 ‘미니 스커드’일 뿐, 위력과 전략적 가치는 스커드 미사일을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탄도탄 180발 동시 투사 능력 보유한 北
2019년 북한이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추정 전술유도무기. [뉴시스]
한미 정보당국이 추산한 북한의 스커드 계열 이동식 발사차량(TEL)의 수는 최대 100대 정도였다. 이 TEL은 한 번에 1발의 미사일만 발사할 수 있고, 발사 후 지하 기지로 복귀해 미사일을 다시 실은 뒤 발사 진지로 돌아와야 했다. 이 작업에 반나절 이상 걸리기 때문에 하루에 많아야 3~4발 쏘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나 KN-25는 스커드 미사일에 준하는 수준의 전술 탄도미사일을 20초 간격으로 6발 연속 발사할 수 있다. 단 1대의 TEL로도 스커드 미사일 TEL 6대분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KN-25 비행제원을 분석해보면 400㎞급 사거리와 97㎞의 정점고도, 마하(음속) 6~7 수준의 종말단계 비행 속도를 갖췄다. 전형적인 전술 탄도미사일의 비행 코스를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최근 증정식에서 30문의 KN-25를 인수해 실전 배치한다고 밝혔다. KN-25 1문이 2분간 6발의 전술 탄도미사일급 발사체를 투사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북한은 거의 동시에 탄도탄 180발을 쏟아부을 전력을 배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의 동시에 날아오는 이 180발의 탄도미사일은 한국 전역의 주요 항만과 비행장을 초토화하는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 유사시 다른 유형의 대구경 방사포, 전술 탄도미사일과 함께 동시 투발될 것이기에 한국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교란하는 미끼 역할도 가능하다. 앞서 지적했듯 비행 특성이 일반 탄도미사일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다른 미사일과 섞여 발사된다면 한국군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유사시 비행 특성이 비슷한 KN-25, 대구경 조종 방사포, 대구경 방사포, 북한판 이스칸데르, 북한판 에이타킴스(ATACMS), 스커드 등을 섞어서 쏠 것이다. 레이더 스크린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수백, 수천 발의 탄도미사일 궤적은 현존하는 방어 시스템으론 완벽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오늘 당장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 국민은 북한이 쏟아붓는 수천 발의 미사일과 로켓 불벼락을 고스란히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KAMD·LAMD 구축해도 미사일 수천 발 못 막아
‘장사정포 요격체계’ (한국형 아이언돔) 시험발사 장면. [국방부 제공]
북한이 새로운 위협을 내놓으면 우리 군이 수십 년에 걸쳐 대응 전력을 구축하는 지금 같은 구도에서는 한국은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정책결정권자는 국가 안보를 위해 적 위협을 냉철히 분석하고 어떤 무기와 전략·전술이 필요한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