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1

2021.12.31

새해에는 융통성 있게 ‘현존’하세요! [SynchroniCITY]

건강과 인격은 좀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요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입력2022-01-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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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대 2021년은 정말 빨리 지나간 거 같아요.

    현모 그렇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더 그랬던 거 같아요. 방역수칙이 자꾸 바뀌니까 일정도 계속 변경되고 취소되고. 거기에 맞춰 삶을 새롭게 조정하고 적응하는 일이 여간 시간을 잡아먹는 게 아니죠.

    영대 맞아요. 저 같은 경우는 2020년에 귀국했으니까, 한 해를 통으로 한국에서 보낸 건 지난해가 처음이었는데, 어느 해보다 바쁘게 지낸 거 같아요. 절대적인 업무량이 늘었다기보다 안 해본 일을 여러 가지 하게 됐고, 또 프리랜서다 보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빴어요.

    현모 우리 둘 다 프리랜서라 아무래도 일적인 면에서 예측이 힘들어 시간 통제가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영대 프리랜서라고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사실은 하고 싶은 일 10%를 위해 나머지 90%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죠.

    현모 아, 그래서 제가 며칠 전 특별한 달력 하나를 샀어요!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1년 12달 365일이 한눈에 보이는 2022년 포스터형 달력을 벽에 붙여놨답니다. 원래는 매해 예쁜 다이어리만 한 권 장만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시간이 하도 쏜살같이 지나가니까 하루씩 혹은 한 주씩 볼 게 아니라 전체적인 큰 그림을 좀 봐야겠더라고요.

    영대 아, 아내도 얼마 전 한 장에 3개월씩 있는 달력을 사왔더라고요. 비슷한 맥락인 거 같아요.

    현모 오, 분기별 달력이군요. 그것도 아마 하루하루를 조금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목적 같은데, 실은 이 아이디어를 배우 박상원 선생님으로부터 얻었어요. 방송에도 소개됐지만, 그분이 무려 100년짜리 달력을 사무실에 걸어놓으셨더라고요.

    영대 와아….

    현모 자그마치 21세기가 통째로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달력이에요. 그런데 100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긴 듯하지만, 그렇게 한 바닥에 전부 담겨 있는 걸 보니 상당히 금방이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박 선생님도 달력에 형광펜으로 본인이 했던 작품들을 기준으로 기간을 표시해놨는데, 그렇게 성실하게 필모그래피(출연 영화 목록)를 쌓은 분조차 표시만 따라가도 해가 휙휙 넘어가는 게 보였어요.

    영대 그죠. 인생이 알고 보면 짧아요.

    현모 그래서 어영부영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다가는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못 해보고 죽겠더라고요. 한평생이 종이 한 장으로 끝날 정도로 세월이 덧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하면 시간 관리를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말 나온 김에 나도 100년짜리 달력을 1983년부터 2082년까지로 해서 주문해볼까나.

    영대 저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주간계획, 월간계획보다 연간으로 뭔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 같긴 해요. 물론 제가 매사에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현모 저도 마찬가지긴 해요. 우리가 MBTI(성격유형검사) 마지막 글자가 P잖아요. ㅋㅋㅋ J는 계획형인데 P는 무계획형. ㅋㅋ

    영대 ㅋㅋㅋ 그래서 전 철저하게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이라는 게 내가 계획한 대로만 진행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때그때 흐름에 맡기고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해요.

    현모 완전 동의해요. 저도 대체로는 계획적인 사람을 닮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재에 집중하면서 변수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강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더라고요.

    영대 40년 넘게 살아 보니 그런 계획적인 사람이 더 많은 부분을 이루고 성취할 것만 같지만, 저마다 가는 경로가 다를 뿐 결과적으로 도착 지점은 별반 차이가 없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현모 마치 그래프가 포물선이든, 직선이든, 계단형이든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이죠?

    영대 그렇죠. 그리고 돌이켜보면 내가 계획한 일들이 다소 실패했더라도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뜻밖에 생겨나 상쇄되는 때도 있고요.

    현모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런 비슷한 말을 했어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멈췄을 때 이른바 ‘격리 앨범(quarantine album)’으로 불리는 메가 히트 앨범을 2장이나 발표하면서, 자기가 하려고 했던 일들은 아쉽게도 모두 무산됐지만 그 대신 여유가 생겨 생각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게 됐다고.

    영대 멋지네요.

    현모 비틀스 멤버도 마음에 와 닿는 말을 남겼던데.

    영대 뭐죠? 비틀스라면 저도 알 텐데.

    현모 누구더라…. 찾았다! 존 레넌이 그랬네요. “Life is what happens to you while you’re planning on doing something else.”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뭔가를 계획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모여서 곧 인생을 이룬다는 거죠. 공감되지 않아요?

    영대 자신이 정한 계획에 집착하기보다 매 순간순간 현존하라는 뜻이기도 하군요.

    현모 맞아요. 파도를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도를 타는 것도 중요하죠. 그래도 새해니까, 뭔가 바라거나 다짐한 거 없으세요? 사람들이 으레 하는 신년 각오 같은 거요. 담배를 끊는다든가, 다이어트를 한다든가. 근데 영대 님은 뭐 술도 잘 안 하시니까 고칠 습관이 없겠네요.

    영대 ㅎㅎㅎ 전 지난해를 돌아봤을 때 너무 소진만 하며 달려온 거 같아요. 충전 기회가 적었어요. 그래서 책이나 영화도 원하는 만큼 충분히 못 봤고, 나중에 보려고 찜해둔 아이템만 잔뜩! 현모 님이 뭐를 말씀하실 때마다 아직 못 봤다면서 울었잖아요. ㅋㅋ

    현모 오호 충전이라! 해야 할 의무(To-do) 체크리스트라기보다 하나의 좋은 방향성이네요. 저도 그러고 보면 지난해 막국수만 잔뜩 충전한 거 같아요. ㅎㅎㅎ

    영대 ㅋㅋㅋ 새해에도 막국수는 계속 함께 충전해야죠. 현모 님은 어떤 다짐을 하셨어요?

    현모 저도 어릴 때는 공부하기, 배우기, 읽기 같은 온갖 비현실적 포부에 부풀곤 했는데 이젠 현실적으로 변한 것도 있고, 어차피 우리가 모든 것을 일일이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경험치도 쌓이다 보니 올해는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기더라고요. 최대한 친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는 게 목표예요.

    영대 좋네요!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현모 한국 나이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시점이 되니까 이제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부지런히 나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계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매일매일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를 인식하게 됐어요. 과거엔 플러스알파에 욕심을 냈다면, 이제는 건강이나 체력, 인격처럼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단계가 된 거 같아요.

    영대 공감해요.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땐 갖고 싶은 것도 많고 꽤 구체적으로 플랜을 세웠던 거 같은데, 이젠 그럴 단계는 지났죠. 운동도 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바탕을 위해 해야 하는 거고요.

    현모 어쩌면 나이 탓이라기보다 우리 성격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영대 그럼요. 나이 먹는다고 욕심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요.

    현모 충전과 친절, 감사가 함께하는 복된 2022년 됩시다.

    영대 그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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