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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뭐길래” 백운규 ‘세계 1% 연구자’에서 피고인으로

탈핵 추진 과정에서 ‘독이 든 성배’ 마신 것일까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정치가 뭐길래” 백운규 ‘세계 1% 연구자’에서 피고인으로

한양대 공과대학 주차장에 설치된 ‘백운규 교수 전용 주차구역’.

한양대 공과대학 주차장에 설치된 ‘백운규 교수 전용 주차구역’.

6월 30일 불구속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떤 사람인가. 한양대 공과대학 주차장에는 ‘백운규 교수 전용 주차구역’이 있다. 한양대가 배출한 장관이라서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전용 주차구역 표시 안에는 HCR와 함께 이를 풀어놓은 ‘Highly Cited Researcher’라는 글자가 씌어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세계 상위 1%에 들어가는 저명 연구자’다. 지난해 말 그가 여기에 들어갔기에 설치됐다.

글로벌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 ‘웹오브사이언스’에 등록된 논문을 21개 분야로 나눠 매년 ‘피인용 횟수가 상위 1%에 들어가는 논문을 낸 연구자’ 보고서를 발간한다. 지난해 11월 이러한 연구자로 6167명(중복 포함)이 선정됐다. 미국이 가장 많은 2650명(41.5%)을 냈고, 770명(12.1%) 중국과 514명(8.0%) 영국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0.7%인 41명이었다. 10위 스페인은 103명이다.

‘백운규 교수 전용 주차구역’

기관별로는 188명인 미국 하버드대가 1위, 124명인 중국과학원이 2위, 106명인 미국 스탠퍼드대가 3위다. 한국 최고는 7명인 서울대인데, 10위 미국 워싱턴대가 54명이다. 한국만의 서열은 6명인 UNIST(울산과학기술원)가 2위, 5명인 성균관대가 3위, 4명인 고려대가 4위, 한양대와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각각 3명으로 공동 5위다. 미국, 중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넘쳐나지만 한국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가 HCR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백운규 교수가 바로 여기에 선정됐다. 한양대는 환경과 생태학 분야에서 중복 선정된 김기현 교수, 재료 및 재료화학 분야에서 중복 선정된 선양국 교수가 함께 영예를 누렸다. 김 교수는 2년, 선 교수는 5년 연속 선정됐다. 백 전 장관만 처음 선정됐는데, 그의 부문이 ‘크로스 필드(Cross-field)’인 것이 특이하다.

요즘 연구는 ‘융합’이 대세다. 융합하는 이들은 한 분야에 집중하지 않으니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 논문을 쓰기 어렵지만, 여러 분야에서 많이 인용될 수 있다. 이들의 성과는 특정 분야 연구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지지난해 ‘크로스 필드’ 부문이 추가됐다. 백 전 장관은 그 부문의 HCR가 된 것이다. 학교는 교수들의 연구를 독려해야 하니 전용 주차구역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페인트가 희미해지기도 전 그는 불구속 기소되는 비운을 맞았다.



대통령 공약이더라도 ‘탈핵’은 원자력 전문가가 해야 무리가 적다. 그는 원자력공학자가 아니다. 무기재료를 공부하고 세라믹을 연구하다 미래 에너지 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배터리를 이용하는 미래 에너지는 새로운 영역이기에 미국 유학 후 창원대에 터를 잡은 그는 많은 논문을 낼 수 있었다. 당시 대학은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을 많이 쓴 교수를 찾았으니, 그는 모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스카우트됐다. 2005년 이 과는 에너지공학과로 개명됐는데 그때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너 죽을래” 발언으로 구설

한양대에는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설치(1958)된 원자력공학과는 물론이고, 석유 등 화석연료의 이용을 다루는 자원공학과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매우 중요하고 광범위한 것이라 원자력공학, 자원공학 등으로 나눠놓았는데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에너지공학과를 만든다고 하니 반발이 나온 것이다. 에너지공학과는 미래 에너지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해 요즘은 수소엔진 등을 다루며 주목받고 있다.

미래 에너지는 원자력 같은 현재 에너지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현재 에너지가 고갈되거나 비싸져야 주목받기 때문이다. 그 시기 백 전 장관은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나왔음에도 탈핵 진영으로 이동한 A 박사와 가까이 지내며 정부기관이 발주하는 미래 에너지 연구 프로젝트를 많이 수주했다. 2017년 탈핵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해 대통령비서실장에 백 전 장관의 대학 후배인 임종석 씨를 임명했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돼 “너 죽을래”라는 말로 월성 원전 1호기 수익성 조작에 연루됐다.

채희봉 전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관은 원자력을 다뤄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대전지방검찰청의 월성 원전 1호기 수사 대상자가 됐다. 청와대에서 탈핵 정책을 주도한 이로는 그가 아니라 김수현 당시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과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 등이 거론된다. 김혜애 씨는 환경단체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반핵 환경운동가 양이원영 씨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만들었다(6월 22일 부동산 투기 연루 의혹으로 제명). 따라서 백 전 장관을 기소한 검찰은 훗날 환경단체와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 관계자들로 수사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환경 정책이 아무리 중요해도 멀쩡한 원전의 수익을 조작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백 전 장관의 추락은 HCR로 선정된 그의 연구 결과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양대 출신으로 세계적 연구자가 된 그는 본업이 아닌 일에 참여해 자신은 물론이고 권력도 흔들 수 있는 일에 연루됐다. 정치에 발을 담그고 탈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일까. ‘백운규 교수 전용 주차구역’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세계 1% 연구자’라는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 것이다.





주간동아 1296호 (p18~19)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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