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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웨펀 이끌 한국 방산 혁신의 아이콘, 한화 ‘레드백’

수백억 원 투자해 세계시장 진출 모색 … 호주육군 차세대 장갑차 도입사업 최종 후보 올라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K-웨펀 이끌 한국 방산 혁신의 아이콘, 한화 ‘레드백’



레드백 장갑차 제막식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제막식 [한화디펜스]

방위산업(防衛産業). 사전적 정의로는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의 생산과 개발에 기여하는 산업을 말하며, 이러한 산업에 종사하는 업체를 방위산업체, 줄여서 방산업체라고 부른다. 많은 국민들은 ‘방산업체’ 하면 전투기나 탱크 만드는 회사들만 생각하지만 군에 속옷과 신발을 납품하는 업체도 방산업체고, 유명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미사일과 로봇을 만드는 업체도 방산업체다. 

이러한 방산업체는 매우 독특한 구조로 운영된다. 일반 업체는 시장을 조사해 ‘고객’인 일반 대중의 니즈를 파악하고, 자기 자본 또는 외부 투자를 통해 생산 설비를 만들고 제품을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팔아 이윤을 얻는다. 그러나 방산업체는 ‘고객’이 ‘정부’에 한정되는 특수한 산업이다.

한국형 명품 무기 제작 프로세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자본이 풍부하고 해외 네트워크가 충분히 갖춰져 있으면 자기 자본을 투자해 제품을 만들어 외국 정부에 수출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고객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정부가 제시한 규격과 설계, 수량에 맞춰 정부에만 납품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형 명품 무기’들은 대부분 이러한 프로세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군의 주력 개인화기인 K2 소총은 현재 S&T 모티브가 생산하고 있지만 개발은 정부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발했고, K1 전차 역시 생산은 현대로템이 하지만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가 담당했다. T-50 고등훈련기 역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제작했지만,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했다.



‘정부’라는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고객이 존재하고, 별도로 R&D 예산을 들일 필요 없는 이러한 산업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없는 쏠쏠한 현금 조달원이다. 비록 이윤은 적지만 국가가 망하지 않는 이상 꾸준히 일감과 수입이 보장되고, 투자로 인한 리스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성은 뒤집어 말하면 성장이나 ‘대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결정과정이 대단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한국군의, 한국군에 의한, 한국군을 위한 무기만 제작하기 때문에 전장 환경의 변화와 방산 시장의 트렌드에 부합하지 못하고 수출의 기회를 얻는 것도 힘들다는 의미다.

‘한국형 험비’라는 타이틀을 달고 최근 전력화되고 있는 소형 전술차량은 선진국에서 험비가 도태되는 시기에 맞춰 등장한 한 세대 이전 개념의 모델이고, 미래형 소총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K2C1은 레일 시스템을 통한 총기 액세서리 부착에 대한 개념이 등장한지 25년 만에 등장한 ‘뒷북’이자 레일 시스템에 대한 이해 없이 원가 절감만 고민했다가 실패한 사례로 유명하다.

가끔 해외 수출이 성사될 때마다 ‘명품’ 무기라고 대서특필되는 한국산 무기들의 특징은 한국군에 대량 납품되어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평가되며 6개국 이상에 수출된 K9 자주포는 한국군에 1200문 이상 납품되어 독일제 동급 PzH2000의 절반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 동남아시아 시장에 활발히 판매되고 있는 한국산 총기류는 한국군에 수 만정 단위로, 한국산 차량은 한국군에 수 천대 단위로 납품되어 미국이나 유럽의 동급 장비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우리나라에서만 ‘명품’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산 무기가 성능 면에서 외국산 첨단 무기에게 뒤처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무기체계의 소요를 제기하는 담당자들이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등 전문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거의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문성이 부족한 의사결정권자들이 소요 제기부터 확정까지 고민하는 시간과 절차가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방위산업 자체가 정부가 주는 사업만 받아먹는 구조이고 이윤도 너무 적다보니 업체 스스로 트렌드를 분석하고 R&D에 투자할 재정적 여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故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제창하기 시작한 이래 50년 가까이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시기에 건국됐고, 훨씬 작은 규모의 국토와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이 방위산업을 키워 세계 방산시장을 휩쓸며 연간 100억 달러 안팎을 벌어들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 방위산업은 60만 대군을 끼고 존속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방산 시장에서 명함을 내밀지 못해 왔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난 2017년, 한국 방위산업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됐다. 바로 한화디펜스가 쏜 신호탄, ‘레드백(Redback)’이었다.

한화는 2015년 삼성테크윈 등 타 그룹의 방위산업부문을 인수해 한화테크윈을 설립한 뒤 2017년 방산부문만 분사해 전문화 과정을 거쳐 지난해 종합방산업체 한화디펜스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출범 직후 이전의 한국 방산업체에서는 보기 힘든 공격적인 R&D와 해외 제휴, 마케팅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화디펜스는 우선 한국군에 납품하고 있는 K21 보병전투차를 이용한 다양한 파생 상품을 개발했다. 한화테크윈 설립 직후인 2016년에는 벨기에 CMI 디펜스와 손잡고 K21 장갑차에 105mm/120mm 포탑을 얹은 경전차를 개발해 미 육군 차세대 경전차 사업인 MPF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며 국제 시장 개척을 시작했다. 이 경전차는 비록 MPF 프로그램에서 미국 기업에 패했지만, 최근 필리핀 육군 납품 사업의 승리가 유력시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K21을 개조해 세계 시장에 나선 사례는 또 있다. 호주의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 프로그램의 최종 후보까지 올라 선정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레드백 장갑차다. 레드백은 K21 장갑차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최신 트렌드와 기술을 접목해 완전히 재설계된 세계 최정상급 보병전투장갑차다.

레드백은 호주군의 요구에 맞게 포탑부터 바꿨다. 호주 현지 기업과 손잡고 개발한 T-2000 포탑은 30mm 또는 40mm 기관포를 선택할 수 있으며, 포탑 위에 7.62mm 또는 12.7mm 기관총이 연동된 RWS(Remotely Weapon Station)을 별도로 장착하고 있다. 차장이나 장전수는 해치를 열고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차체 내부에서 ‘아이언 비전(Iron Vision)’ 고글을 쓰고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하고 탑재된 무장을 원격으로 제어해 공격할 수 있다.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프로젝트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주포로 탑재된 부시마스터 Mk.44 기관포는 밀집 보병을 제압할 수 있는 파편탄, 적 전차를 저지할 수 있는 대전차 철갑탄을 사용하는데, 30mm 철갑탄의 경우 1km 거리에서 3세대 전차의 측면장갑 또는 2세대 전차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일부 실험 데이터에서는 근거리에서 T-72 전차의 정면 장갑을 관통하는 기록도 보일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이 기관포탄으로 적 전차 저지에 실패하면 포탑 후방에 2발이 내장된 스파이크-LR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해 4km 밖의 적 전차를 일격에 파괴할 수 있다.

레드백은 방어능력 면에서도 월등하다. 무려 42톤에 달하는 차체는 복합장갑으로 보호되며, 필요에 따라 장갑 모듈을 추가할 수도 있다.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할 수 있는 능동감시레이더와 연동된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방어장치는 장갑차로 접근하는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 등을 요격할 수 있다.

이러한 성능 덕분에 레드백은 보병전투차량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군림하던 BAE의 CV90 파생형과 미국의 거대 군수기업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최신형 장갑차 에이잭스(Ajax)를 꺾고 독일 라인메탈의 KF41과 함께 총사업비 5조원에 육박하는 호주육군 차세대 장갑차 도입 사업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사실 레드백에 적용된 기술과 장비들은 ‘한국형 명품 무기’ 개발 프로세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최신 모델들이다. 한화디펜스는 무기체계를 개발할 때마다 과도한 국내 개발에 매몰됐던 그간의 관행과 구태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유연한 개방형 아키텍처와 모듈형 설계 컨셉을 과감하게 도입하는데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한국에서 개발됐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 최강의 보병전투장갑차를 만들어냈다.

M113 장갑차를 대체하는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를 획득하는 호주 육군의 LAND 400 3단계 사업은 직접 획득 물량만 450대로 장갑차의 대당 획득 가격이 110억 원을 넘는 21세기 최대의 보병전투차 해외 도입 사업으로 평가된다. 무려 2년에 걸쳐 철저한 시험평가가 이루어지는 이번 사업에서 승리한 업체는 수 조원 이상의 규모가 될 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동의 노후 장갑차 대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사실 기존의 국내 업계 관행에 찌든 입장에서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프로젝트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우리 군이 소요를 제기하지 않은 사업에 과연 그 누가 수백억 원의 자기 자본을 투자라는 무거운 리스크를 끌어안고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화디펜스는 그 어려운 일을 해 나가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열린 주요 방산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부디 호주 장갑차 사업에서 레드백이 승전보를 울리고, 이 승전보가 한국 방위산업 혁신을 이끄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대한다.





주간동아 1234호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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