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현금이 사실상 무가치하다. GETTYIMAGES
전문직·집주인도 망한 1920년대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특히 1922년 7월쯤부터 1923년 말까지는 물가가 한 달에 10배씩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1922년 전반기 1달러는 약 320마르크였는데 1923년 11월에는 1달러에 4조2105억 마르크가 됐다. 이때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득을 봤는지 살펴보면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인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우선 하이퍼인플레이션 하에서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중산층, 그중에서도 특히 봉급 생활자였다. 한 달에 500만 원 월급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달간 물가가 10배 오르면 실질소득은 50만 원이 되고, 다음 달 물가가 다시 10배 오르면 실질소득은 5만 원으로 하락한다. 먹고살 수가 없다. 평소라면 물가만큼 월급도 올라야 하지만, 임금은 보통 1년에 한 번 협상한다. 그사이에는 소득 감소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독일에선 물가상승 속도가 워낙 빨라 월급 소득자들이 먹고살 수 없게 되니 일주일에 한 번씩 월급을 협상했다. 그런데도 월급 가치가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 그사이 상승한 물가를 반영해 다음 주부터 월급을 올린다고 해도 그 일주일 사이에 물가가 또 상승해 실질소득이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먹거리를 구하고자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팔아야 했다. 처음에는 금·은 같은 귀금속과 가구를, 그다음에는 먹거리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팔기 시작했다. 회사원,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교수 등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사람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이라도 월급을 받는 경우라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실물자산을 갖고 있는 이들은 어떨까. 인플레이션으로 현금가치가 하락하는 것에 대비하려면 부동산·주식 같은 실물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에서는 그렇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 때는 아니다. 당시 독일의 경우 부동산 임대료로 먹고사는 사람은 거의 다 극빈층으로 추락했다.
건물 소유주가 한 달 월세 1000만 원으로 살아간다고 해보자. 한 달에 물가가 10배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한 달 뒤 실질 월세가 100만 원, 두 달 뒤엔 10만 원으로 줄어든다. 월세가 계속 오르면 될 텐데, 임대료는 연 단위로 계약하고 그 기간 바꿀 수도 없다. 집주인, 건물주는 음식 살 돈조차 없었고, 먹거리를 구하고자 집을 급매로 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들어온 목돈도 몇 달 뒤 다 사라졌다. 다른 수입처가 있는 집주인들 사정은 좀 나았지만, 임대료만으로 먹고살던 부동산 소유주는 다 망했다.

1923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식료품 가격이 치솟았다. GETTYIMAGES
일용직 노동자는 매일 파티
가격이 급등한 주식을 보유 중인 사람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1922년 10월부터 1923년 7월까지 주식 가격은 89배나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달러는 1525배 상승했다. 명목 가격은 올랐지만 실질 가치는 크게 떨어진 것이다. 배당금은 당연히 의미가 없었다. 주식을 가진 사람도 현금을 가진 사람보다 나았지만 재산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하이퍼인플레이션 하에서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이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 단위로 고용돼 일하고 돈을 받는다. 일을 시키려면 당일 물가를 고려해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월급쟁이, 그러니까 미리 계약해 일하는 사람은 물가가 상승해도 일정 금액만 받을 수 있었지만,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하루 물가를 고려해 임금을 올려 받았던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 돈을 벌면 보통 그날 중으로 다 써버렸다. 하루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니 그날 받은 돈은 당일 써버리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일용직 노동자는 매일 먹고 마시면서 돈을 썼다. 독일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독일인이 먹거리가 없어 고생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매일매일 파티 분위기인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매일 파티인 것처럼 먹고 마시는 사람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였다. 일용직 노동자, 사회 저소득층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해쳐나가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생활이 나아진 계층도 있었다. 농촌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먹거리가 생산된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주면서 뭔가를 따로 살 필요가 없다. 농촌 사람은 이전과 똑같이 먹고살 수 있었다. 자기가 먹고 남은 것은 도시 사람들에게 팔았다. 자고 나면 농산물 가격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급할 것도 없었다. 늦게 팔면 팔수록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 농민은 그동안 필요로 했던 모든 물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당시 농민 사이에서는 집에 그랜드 피아노를 장식용으로 구비하는 게 유행이었을 정도다.
농촌보다 큰돈을 벌었던 집단도 있었다. 외환 거래를 통해 투자·투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은행에서 20억 마르크를 대출받아 10만 달러로 바꿔놓은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으로 30%가량 물가가 오르고 그만큼 환율이 상승한다고 해보자. 8만 달러 정도만 팔아도 대출금과 대출이자를 충당하고, 2만 달러가 남는다. 물가가 한 달에 수백% 상승하는 상황에서 이 과정을 몇 번 거치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너도나도 환투기에 뛰어들어 당시 100만 명 넘는 독일인이 이런 방식으로 돈을 불렸다고 한다.
대출을 크게 낼 수 있었던 사람은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많이 늘렸다. 20억 마르크를 대출받아 부동산을 사놓은 경우 몇 달 지나면 20억 마르크는 실질 가치가 2000만, 200만 마르크로 줄어든다. 이때 그 돈을 갚으면 200만 마르크로 20억 마르크 가치의 부동산을 산 효과가 나온다. 대부분은 이렇게 큰돈을 대출받기 어렵고, 설령 대출이 되더라도 먹거리 구매가 급해 부동산을 살 여유가 없다. 큰 부자만 이런 식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 기간에 부동산, 공장 등을 늘려나갈 수 있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든다는 건 이런 의미에서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1923년 발행된 10만마르크. 발행 당시에는 큰돈이었으나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수주 만에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다. GETTYIMAGES
하이퍼인플레이션 기간에 돈을 벌려면 주위에서 큰돈을 빌려 재테크해야 한다. 자기 돈으로 하는 건 의미가 없다. 돈을 대출받아 달러나 부동산을 사고, 인플레이션으로 돈 가치가 크게 떨어졌을 때 그 돈을 갚는다. 그런데 이건 말처럼 쉽지 않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에 돈을 빌리면 큰 이득이라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폭증하는데, 이럴 때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는 건 쉽지 않다. 어쨌든 은행 등에서 큰돈을 빌려 달러를 구입해두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기에 부자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건 알아두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 대비한 행동요령은 위기 시에 큰 역할을 한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도 유사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