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에 제보된 각종 자료와 녹취파일이 담긴 CD. 2월 환경운동연합이 배포한 해명자료.
“국내 최대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연의 실무 간부 2명이 지난 3년간 6600만원의 기업·정부 보조금을 개인 계좌에 넣어 관리해온 사실이 적발돼 환경연이 자체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조선일보’ 2월28일자).
하지만 이 사건은 같은 날 환경연의 해명자료가 나온 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후속 보도도 없었다. 많은 언론은 당시 이 건을 ‘횡령’으로 규정했지만 환경연은 사건의 본질이 ‘불투명한 회계운영’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용도로 사용한 흔적이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당시 환경연의 설명이었다.
수사기관의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시민단체의 자정기능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 시민 사이에서 힘을 얻었다. 환경연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락된 듯하던 이 사건은 물밑에서 지금도 확대 재생산되며 환경연을 괴롭히고 있다. 환경연 안팎의 몇몇 인사는 여전히 당시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조사가 미진했다’ ‘의도적으로 은폐했다’ ‘관행적 회계부정(또는 횡령)을 고발한다’는 식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 환경연 안병욱 사무총장은 “법적 조치를 강구할 생각도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주간동아’는 2월 언론보도 이후 이 사건에 주목해왔다. 공공성과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단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사건의 본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관행의 일면이 확인된 것뿐”이라는 환경연 내외의 지적도 궁금증을 부추겼다.
“악의적 편집, 사실관계 대체로 맞아”
5월 말부터 ‘주간동아’는 이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몇몇 제보자와 차례로 접촉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이른바 ‘환경운동연합 횡령 의혹 사건일지’(이하 사건일지)를 포함한 몇 건의 자료를 확보했다. 자료에는 환경연 전·현직 실무자들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비밀 녹취파일 6개도 포함돼 있다.
이 녹취파일에는 환경연이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저질러왔다는 각종 문제점이 상세히 담겨 있다. 내용 또한 충격적이다.
‘주간동아’는 제보를 받은 이후 사건일지에 대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도 확인했다.
그 결과 사건일지 내용은 다소 부풀려진 부분이 있긴 해도 대체로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자별로 상황을 정리해놓은 사건일지에 이름이 거명된 한 환경연 인사는 “악의적으로 편집된 부분이 많지만 사실관계는 대체로 맞다”고 말했다.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3명의 신원도 분명했다. 확인 결과 이들은 환경연의 전직 간부와 현직 실무자,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활동가였다. 이들은 2월 벌어진 간부 2명의 횡령사건에 대해서도 환경연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상세한 부분들을 거론하며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환경연은 전국적으로 15만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중 3만1000여 명이 납부하는 회비(2008년 5월 현재)로 운영된다. 중앙환경연의 경우 연간 총수입이 14억7000여 만원(2007년 기준)인데 이는 회원들의 회비, 기업 보조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지원금 및 프로젝트 비용으로 이뤄진다. 사실상 공적 기관이라 해도 무방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녹취파일이 특정인의 의도에 따라 녹음된,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기록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간동아’가 환경연의 예산을 ‘공적(公的) 영역’으로 규정하고 보도를 결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개인정보 및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상정보는 밝히지 않는다).
3시간 분량의 녹취파일 6개와 사건일지의 내용은 상당 부분 맥을 같이한다. 녹취파일 중간 중간에 사건일지 얘기가 나오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 녹취파일이 2월 회계부정 사건 이후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녹취파일과 사건일지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환경연이 진행하는 각종 사업에 정부 보조금과 기업 후원금이 들어오면 그중 30%를 관행적으로 떼어내 담당자(개인)가 보관, 임의로 사용한다(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를 ‘오버헤드 30%를 뗀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대화과정에서 이 자금이 애초 목적과 다른 용도로 유용되거나 심지어 개인이 횡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을 감추기 위해 정산 과정에서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가짜 영수증을 정부, 지자체, 기업 등에 보고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내부적으로 체계적인 정산을 한 경우도 별로 없다(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예로 2005년 우간다에서 열린 람사르회의를 꼽는다. 당시 이 사업과 관련해 행정자치부로부터 1억원의 보조금을 받았음에도 환경연이 참석자들에게 참가비 200만원을 환경연 실무직원의 개인 계좌로 받았고 이후 정산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녹취파일에는 위 내용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들이 제시돼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녹취파일의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 한다.
“(정부, 기업에서 나온) 펀드의 경우 오버헤드를 떼고 남은 70%만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정산할 수가 없다. 정산한다고 해도 이미 가짜 정산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정산을 요구하지도 않는다.”(전직 환경연 간부 B씨)
“(환경연 간부) A씨를 잘 아는 친구에 따르면, A씨가 전화해 ‘영수증을 맞추다 보니 이젠 1000만~2000만원도 시시해 안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현직 실무자 C씨)
“환경연에서 행정자치부나 어디든 (펀드 신청서를) 내면 똑같은 명목으로 자기 지역에도 사업계획서를 낸다. 제목만 다르게 하고 날짜를 맞춘 뒤 조사는 한 번만 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면 펀드에서 1000만~2000만원은 쉽게 남길 수 있다.”(C씨, 활동가 D씨)
“영수증의 경우에도 숙박비, 비행기표 등을 통으로 끊는다. 세금만 내면 (어디서든) 다 끊어준다. 카드로 결제하고 10분 안에 취소한다. 그리고 그 영수증을 첨부해 제출한다. (카드 리스트를 뽑아보면 다 나오지만) 대기업 같은 경우엔 기부 형태로 주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펀드 자체가 다 눈먼 돈이니까.”(B씨)
“영수증 처리 등 문제 있음 인정”
그렇다면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거나 한때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왜 이런 식의 의혹을 제기했을까.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녹취파일에 등장하는 B씨는 7월2일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녹취파일에 나온 내용을 여러 차례 문제 제기한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언젠가는 이 문제가 공론화될 줄 알았다. (내가) 원한 결과는 아니지만 자정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사건일지와 녹취파일의 주요 내용은)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선 이미 공공연한 것들이다. 새로울 게 없다. 내가 한 얘기도 그 연속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녹취된 파일이지만 발언 내용을 부인하진 않겠다. 다만 환경운동이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감안해 (녹취파일이) 악의적으로 쓰이지 않길 바란다.”
‘주간동아’는 이러한 의혹들과 관련해 환경연에 서면질의를 함과 동시에 염형철 사무처장과 장시간 인터뷰를 가졌다(상자기사 참조). 염 처장은 2월 불거진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의도로 제기된 의혹”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사건일지도 악의적으로 편집된 경향이 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환경연 운영에 일정 부분 문제가 있음을 털어놨다. 다음은 그의 부연 설명이다.
“제보자의 주장은 상당 부분 과장됐지만 우리(환경연)가 인정할 부분도 있다. 시민단체에서 영수증 처리가 잘 안 된다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며 또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후원금 같은 경우는 인건비 등이 책정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녹취파일에서 제기된 내용들도 일부 문제를 마치 전체 문제인 양 확대해석한 측면이 있다. ‘횡령사건’의 경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도 깜짝 놀랐다. 사건 당사자들이 조사를 거부해 (조사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환경연에 전달되는 각종 자금, 특히 정부·지자체의 예산은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그 용도와 다르게 자금이 사용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탈·불법 용도 전용’이 된다. 개인이 이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명백한 ‘횡령’이다.
환경연은 취재과정에서 ‘어쩔수 없는 자금 전용’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염 처장의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제보자들의 주장처럼 ‘횡령’이 있었는가로 모아진다. 과연 의혹은 사실일까. 아무래도 이 의혹에 대한 설명은 예산을 집행하고 감독하는 정부와 수사기관의 몫일 듯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