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된 박희태(70·사진) 전 국회 부의장은 촌철(寸鐵)의 언변과 경상도 사투리의 유머가 트레이드마크다. 26년간의 법조인 생활, 법무부 장관, 5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2003년), 국회 부의장 등 이력도 화려하다.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을 거치면서 대변인, 원내총무, 대표를 지낸 한나라당의 적자(嫡子).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캠프 구성을 앞두고 박 의원의 거취는 당 안팎의 큰 관심사였다. 이명박 대통령(MB)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경제 살리기의 적임자가 MB라고 판단하고 ‘이명박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박 의원은 검증 공방으로 두 캠프가 대립할 때 소장파의 강경론에 맞서 화합을 도모했다.
그는 친이(親李·친이명박) 그룹의 지원을 뒷배로 당권을 손에 쥐었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해 6129표(29.7%)를 얻어 5287표(25.6%)를 얻은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대표에 올랐다. 여론조사에선 정 의원에게 뒤졌으나 대의원 투표에서 앞섰다.
그의 당선으로 친이그룹은 명실상부하게 당권을 장악했다. MB가 당을 사실상 친정하게 된 셈이다. 그는 MB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가 MB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캠프’라는 그의 출신 성분을 거론하면서 한나라당이 MB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에겐 늘 ‘화합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정치권의 폭탄주 원조를 자처하는 그의 인간관계는 여야를 넘나든다. 친이, 친박(親朴·친박근혜)으로 나뉜 당의 화합을 이뤄내고 야당과의 관계를 원만히 조율하는 게 그가 맞딱드린 첫 과제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그가 쇠고기 정국을 녹이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뒤엉킨 정국의 타개가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분위기다. MB의 지지도는 취임 100일여 만에 20%대로 떨어졌으며, 한나라당 지지율도 30%대로 주저앉았다. 앞으로 있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책임론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관리형 대표’격인 그가 정치풍(政治風)이 잦은 자리에서 과연 롱런할 수 있을까?
지난해 5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캠프 구성을 앞두고 박 의원의 거취는 당 안팎의 큰 관심사였다. 이명박 대통령(MB)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경제 살리기의 적임자가 MB라고 판단하고 ‘이명박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박 의원은 검증 공방으로 두 캠프가 대립할 때 소장파의 강경론에 맞서 화합을 도모했다.
그는 친이(親李·친이명박) 그룹의 지원을 뒷배로 당권을 손에 쥐었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해 6129표(29.7%)를 얻어 5287표(25.6%)를 얻은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대표에 올랐다. 여론조사에선 정 의원에게 뒤졌으나 대의원 투표에서 앞섰다.
그의 당선으로 친이그룹은 명실상부하게 당권을 장악했다. MB가 당을 사실상 친정하게 된 셈이다. 그는 MB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가 MB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캠프’라는 그의 출신 성분을 거론하면서 한나라당이 MB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에겐 늘 ‘화합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정치권의 폭탄주 원조를 자처하는 그의 인간관계는 여야를 넘나든다. 친이, 친박(親朴·친박근혜)으로 나뉜 당의 화합을 이뤄내고 야당과의 관계를 원만히 조율하는 게 그가 맞딱드린 첫 과제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그가 쇠고기 정국을 녹이리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뒤엉킨 정국의 타개가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분위기다. MB의 지지도는 취임 100일여 만에 20%대로 떨어졌으며, 한나라당 지지율도 30%대로 주저앉았다. 앞으로 있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책임론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관리형 대표’격인 그가 정치풍(政治風)이 잦은 자리에서 과연 롱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