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0

2010.04.06

사쿠라 전선 북상 ‘열도 꽃몸살’

벚꽃놀이 ‘하나미’는 봄맞이 통과의례 … 총리부터 서민까지 야외로 총출동

  • 도쿄=이종각 jonggak@hotmail.com

    입력2010-03-30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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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쿠라 전선 북상 ‘열도 꽃몸살’

    일본 니가타 현 하카다 성의 아름다운 밤 벚꽃 풍경.

    ‘봄을 축하하고 즐기는 꽃놀이에 초대합니다. 3월 27일(토), 오전 11시. JR기치조지(吉祥寺)역 공원 출구 앞 집합. 이노가시라 공원까지는 걸어서 5분. 점심, 술 등은 각자 지참. 우천 시 오쿠보 한국음식점에서 한잔하는 것으로 대신함.’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초, 일본인 지인이 보낸 벚꽃놀이 초대장이다. 일본인들은 매년 이맘때면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과 ‘하나미(花見)’라고 하는 벚꽃놀이를 즐긴다. 도쿄의 경우 우에노 공원과 야스쿠니 신사가 있는 지도리가후치 주변 등 벚꽃나무가 많이 심어진 명소엔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 명이 몰려든다.

    일행이 많을 때는 미리 나무 아래에 대형 비닐을 깔아놓고 각자 준비해온 술과 음식을 먹으며 만개한 벚꽃나무를 감상한다. 눈보라처럼 꽃잎이 떨어지는 호수 위에서 보트를 타기도 하고, 밤에 조명시설로 환상적인 야간 벚꽃놀이를 하기도 한다.

    벚꽃놀이는 보통 공원에서 하지만, 아파트 단지의 휴게소에서 주민회가 주최하는 경우도 있다. 지인들을 초대해 불판에 ‘야키소바(燒そば)’나 ‘야키도리(燒鳥)’ 등을 해 먹는다. 이때는 각자 얼마씩 참가비를 내고 음료수 등을 지참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 총리는 매년 봄 도쿄의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각계 인사 수천 명을 초대해 벚꽃을 감상하며 노고를 치하하는 ‘사쿠라를 보는 모임’ 행사를 연다.

    일제강점기 사쿠라는 침략의 상흔



    ‘꽃은 사쿠라,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쿠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자 일본의 봄을 상징한다. 봄이 오면 전국이 형형색색의 사쿠라로 물든다. 일본은 벚꽃이 자라기 좋은 토양인 데다, 메이지유신 이후 각지에 자생종보다 성장이 빠르고 꽃이 많이 피며, 또 빨리 지는 재배종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왕벚나무)’의 식수를 적극 권장했다. 그래서 1000년 이상 묵은 거대한 자생종 벚나무도 있지만, 일본에는 왕벚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쿠라는 근대 일본 내셔널리즘의 상징이었다. 보통 일주일 정도 만개했다가 곧바로 지는 것이 일본인의 성정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에 ‘야마토 고코로(大和心)’라는 일본 정신을 사쿠라에 비유한 일본 국학자들의 견해가 널리 퍼지면서 관청이나 학교 주변 등에 사쿠라를 많이 심었고, 군의 휘장으로도 삼았다. 그래서 사쿠라를 일본 국화(國花)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일본 정부의 법정(法定) 국화는 없다. 사쿠라와 일본 왕실의 문양인 국화(菊花)는 일본인에게 널리 사랑받는 대표적인 꽃일 뿐이다.

    봄이 오면 미국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에도 벚꽃이 만개한다. 1912년 초 태프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 사쿠라의 아름다움을 전해 듣고, 일본에 묘목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일본이 우호친선용으로 보낸 3000여 그루가 지금은 큰 나무로 성장해 워싱턴의 봄을 알리는 명소가 됐다. 이때쯤 일본 매스컴들은 ‘포토맥의 사쿠라’를 소개한다.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 일본이 전해준 사쿠라가 활짝 꽃을 피우니 자랑스럽지 않느냐는 식의 설명이 붙는다.

    한국에서 최고의 벚꽃 명소는 진해다. 그러나 한국의 벚꽃은 우호의 꽃이 아닌 침략의 상흔이다. 한일강제합병(1910년 8월) 직전부터 1916년까지 일본 해군은 진해를 군항으로 만들면서 시가지 경관과 토지 보전을 위해 10만여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일본 해군의 휘장에도 새겨진 꽃이니만큼 그들은 진해 곳곳에 벚나무를 적극적으로 심었다.

    사쿠라 전선 북상 ‘열도 꽃몸살’

    진해 여좌천의 만개한 벚꽃과 유채꽃.

    이들 벚나무가 자라난 1920년대부터 진해는 전국 제일의 벚꽃놀이 명소가 됐다. 봄이면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조선총독부는 진해뿐 아니라 서울, 마산, 청주 등 다른 도시에도 벚나무를 심었다. 조선총독부와 한국 거주 일본인들은 주로 신사(神社)를 비롯해 관청, 군대, 학교, 공원, 집 근처에 많이 심었다.

    서울에서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라며 창경궁의 일부를 허물어 동물원과 식물원이 포함된 창경원을 만들면서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창경원은 조명시설까지 갖춰 야간 벚꽃놀이의 명소가 됐다. 그 밖에 우이동, 장충단, 남산 왜성대(倭城臺)도 벚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사쿠라는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란 인식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벌채됐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가 심은 포플러, 아카시아 등 다른 나무들은 손대지 않고 벚꽃에만 ‘분풀이’를 한 셈이었다. 창경원의 벚꽃은 광복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수십 년간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창경원을 헐고 창경궁 복원공사를 하면서 일제가 심은 벚나무를 폐기처분했다.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많던 진해에서도 광복 후 상당수의 나무가 뽑혀져 땔감 등으로 사용됐다.

    1960년대 일본이 진해에 심은 사쿠라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진해군항제 홈페이지, 벚꽃 소개). 이에 진해시와 해군이 묘목을 구입하고, 진해 출신 재일동포들이 수만 그루의 묘목을 보내는 등 진해에 다시 벚꽃나무 심기 운동이 벌어졌다. 진해에는 2009년 말 현재 기준으로 34만7561그루의 벚나무가 있다고 한다.

    매년 봄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벚꽃을 보러 ‘진해군항제’에 간다. 예년의 군항제 팸플릿을 보면 진해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군항제가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는 행사이고, 진해 중심지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서 있는 만큼 ‘사쿠라=일본’이란 고정관념을 불식, 희석시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미’ 안 하면 봄이 와도 허전

    ‘사쿠라’는 일본어로 ‘야바위꾼’, ‘사기꾼’이라는 뜻도 있다. 한국에서도 사쿠라가 벚꽃이라는 뜻 외에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야당이면서 정부와 여당에 은밀히 협력하는 자를 말하는 ‘배신자’, ‘변절자’, ‘첩자’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비슷하지만 일본보다 한국 쪽의 의미가 더 나쁘다.

    일본은 열도이기 때문에 남단인 오키나와(沖繩)에서 북단인 홋카이도(北海道)까지 사쿠라가 피고 지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매년 일본 기상청은 지역별 개화시기를 알리는 ‘사쿠라 전선(前線)’을 발표한다. 최근에는 기상청 대신 민간업체가 사쿠라 전선을 발표하고 있다. 또 수종(樹種)에 따라 다르지만 사쿠라의 개화는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2개월여 걸린다. 그 기간이 바로 일본의 봄이다.

    일본에서 산 지 수십 년이 된 한국인 지인은 “매년 ‘하나미’를 안 하면 봄이 왔어도 봄을 맞이하지 않은 것처럼 이상하다는 일본인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고 말한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지인들과 술잔을 나누고 담소하는 ‘하나미’는, 일본인들이 매년 치르는 통과의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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