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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섬과 사람들 | 보령 삽시도

때묻지 않은 비경… 황홀한 ‘해넘이’

때묻지 않은 비경… 황홀한 ‘해넘이’

때묻지 않은 비경… 황홀한 ‘해넘이’
파아란 하늘과 검푸른 바다 사이의 섬들은 띠처럼 드리운 해무(海霧)에 반쯤 잠겨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섬마다 바다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구름 같은 안개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삽시도 가는 뱃길, 꿈속처럼 몽환적인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허나 그 실경(實景)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다. 어느 바다에서나 섬의 원경(遠景)은 대체로 평면적이면서도 수평적(水平的)인 공간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카메라의 파인더에 들어오는 섬은 하나의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

거의 완벽한 날씨 덕택에 몸과 마음은 가뿐하다. 바닷결은 고요하고 알맞게 시원한 바람은 온몸을 연신 쓰다듬는다. 바다를 노래한 유행가나 시 한 소절을 절로 흥얼거릴 만큼 편안한 뱃길이다. 게다가 설핏 기울기 시작한 햇살과 얇게 드리운 해무의 조화(造化) 덕택인지, 눈앞의 풍경마다 절경이 따로 없다. 보령항에서 삽시도까지는 직선거리로 13km. 이 섬의 동쪽 바닷가에서는 보령항 일대의 산줄기와 고층건물이 큰 강 하구(河口)의 건넛마을처럼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오후 4시 막배를 타면 약 1시간 40분 동안 몇 개의 섬과 포구를 부산하게 들락거리고서야 삽시도 선착장에 닿을 수 있다.

삽시도는 면적이 3.78km2에 전체 해안선의 길이가 11km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섬 면적은 실제보다도 훨씬 넓어 보인다. 술뚱 선착장을 끼고 있는 웃말과 아랫말 사이에 널찍하고도 반듯한 논밭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삽시도의 세 마을(웃말 아랫말 밤섬) 중 가장 큰 웃말에는 삽시초등학교 발전소 보건소 경찰초소 등의 공공기관과 정미소 교회 민박업소 상점 등의 건물이 몰려 있어 낙도치고는 제법 번잡하다. 더군다나 주민들의 승용차와 소형 트럭이 비좁은 마을길을 부리나케 오가고, 마을 동쪽의 갯벌에서는 방조제 공사에 여념이 없는 중장비의 굉음이 요란해서 마치 육지의 어느 소읍(小邑)에 들어온 듯하다. 그런 번잡함과 소음에서 벗어나려다 보면 발길은 마을 서쪽 끄트머리의 거멀너머 해수욕장으로 자연스레 향한다.

거멀너머 해수욕장은 처음 본 이들로 하여금 장탄식을 터트리게 할 정도의 절경이다. 인위적으로 파헤쳐지고 들쑤신 동쪽 해변과는 달리, 원래 그대로의 자연미가 비교적 오롯하다. 1.5km에 이르는 백사장을 따라 아름드리 곰솔[海松]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해수욕장 언덕에는 해당화를 비롯한 야생화가 철철이 피고 진다. 그리고 바다 저편에는 호도 녹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는데, 그 섬들의 바다와 하늘을 황홀한 빛깔로 물들이는 해넘이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관이다.

때묻지 않은 비경… 황홀한 ‘해넘이’
거멀너머 해수욕장 남쪽에는 진너머 해수욕장이 가까이 있고, 거기서 해벽(海壁)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썰물 때마다 삽시도와 이어지는 무인도 ‘면삽지’가 나타난다. 면삽지에서 다시 암석 해안을 끼고 돌아서면 바닷물이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청정한 석간수(石間水)를 뿜어낸다는 ‘물망터’에 다다른다. 그리고 물망터 동쪽에는 삽시도 최대의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밤섬 해수욕장이 있다. 이처럼 삽시도의 동쪽과 남쪽 해안에는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는 비경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워낙 외진 곳에 감춰진 면삽지와 물망터는 육로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주민들의 배를 빌려 타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거멀너머 해수욕장이나 진너머 해수욕장에서 밤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도 곧장 바닷가를 따라 넘어갈 수는 없다. 천상 다시 웃말로 나가 밤섬까지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이 길을 따라 밤섬 가는 도중에 뜻밖의 진객(珍客)을 만났다. 세계적인 희귀조로 알려진 검은머리물떼새였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빈번히 오가는 큰길 근처의 갯벌에서 검은머리물떼새 대여섯 마리가 “삐이~삑 삐이~삑” 소리를 내며 쏘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수백 마리의 갈매기 무리에 섞여 있는데도 전혀 주눅든 기색이 없다. 오히려 우아한 자태와 몸짓이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인 듯 돋보였다. 검은머리물떼새와 갈매기들이 한데 어울려 먹이를 찾는 갯벌 한쪽에서는 갯벌을 파헤치고 바위를 깨뜨리며 방조제 공사를 하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끊이질 않았다. 크고 거침없는 포크레인과 작고 나약한 검은머리물떼새.이 극단적인 대조야말로 개발이라는 광풍(狂風)에 무력하기만 한 삽시도의 현실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듯했다.







주간동아 2001.06.14 288호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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