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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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대국 일으켜 세울까

러시아 대통령 당선된 푸틴, KGB 출신으론 두 번째 크렘린 주인공

  • 입력2006-04-19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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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대국 일으켜 세울까
    “푸틴이라고요?” 지난해 8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47)을 총리로 지명하고 후계자라고 선언하자 모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생을 구 소련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그 후신인 연방보안부(FSB), 국가안보회의, 크렘린궁 등 음지에서만 보낸 푸틴을 일반인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혜성같이 등장한 지 7개월만에 푸틴은 마술처럼 크렘린궁의 주인이 되었다. 일부에서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늙고 병약한 옐친의 무기력한 통치에 지친 러시아 국민은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푸틴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여전히 푸틴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쌓여 있다. 푸틴은 선거기간에도 ‘바쁘다며’ 텔레비전 토론에도 불참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신념을 드러내지 않았다. “먼저 표부터 던져. 그러면 내가 누군지 가르쳐주지” 하는 식이었다.

    딱하기는 서방도 마찬가지. 핵강국의 새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3월10일 별다른 현안도 없이 러시아를 방문해 서방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푸틴을 만났다. 푸틴은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레닌과 스탈린의 요리사로 일했고 아버지는 2차대전에서 부상한 상이군인. 푸틴은 스파이 영화에 감동받아 어려서부터 첩보원을 꿈꿨다. 레닌그라드대 법대 3학년 때 거짓말처럼 KGB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KGB요원의 충원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푸틴은 75년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1국에 들어가 16년 동안 KGB에 몸담았다. 푸틴은 명사수에 11세 때부터 유도와 삼보(러시아의 고유 격투기)로 몸을 다진 근육질. 특히 “운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유도에 흠뻑 빠졌다. 푸틴은 3월20일 수호이27 초음속 전투기의 부조종석에 타고 체첸을 방문했는데 보통사람의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푸틴의 별명은 터미네이터.

    유도로 단련된 ‘터미네이터’

    그러나 푸틴은 알고보면 ‘007’이 아니라 ‘별 볼일 없는’ 첩보원이었다. 레닌그라드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감시하는 한직이나 돌다가 동독으로 파견됐는데 그것도 베를린이 아닌 시골 드레스덴이었다. 첩보원으로서 “위험을 겁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밀려나다시피 조직을 떠나야 했다. 그래도 ‘영원한 KGB맨’을 자처한다. 푸틴은 96년 동향(同鄕)이며 당시 크렘린의 실력자였던 아나톨리 추바이스의 천거로 중앙으로 진출해 대통령행정실 차장을 거쳐 결국 KGB 후신인 FSB 부장으로 화려하게 친정으로 돌아왔다. 옐친이 왜 무명의 푸틴을 후계자로 결정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



    새로운 퍼스트 레이디가 된 류드밀라 여사(42)는 스튜어디스 출신. 레닌그라드에 들렀다 친구 소개로 푸틴을 만나 첫눈에 반해 3년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푸틴이 KGB라는 것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푸틴은 ‘기관원’ 출신답게 말수가 적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하는 일중독증 환자.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러시아 무지크(사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지나치게 딱딱하고 차갑다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있자 부드러운 이미지를 꾸미기 위해 집에서 푸들 강아지를 안고 인터뷰에 응하고 동물보호운동가인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이메일을 보내 ‘격려’하기도 했다.

    푸틴은 러시아 현대사에서 최초로 40대에 최고지도자에 올랐고 유리 안드로포프 전 소련공산당서기장에 이어 KGB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크렘린의 주인이 되었다. 치열한 선거전도 목숨을 건 쿠데타도 없이 손쉽게 집권한 행운아. 여전히 사람들은 푸틴이 누구인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병든 대국’ 러시아를 이끌 푸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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