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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3국 중 유독 조선에서 천주학이 성행한 이유

성리학에 빠져 ‘만인 평등’ 양명학의 진가를 몰라본 탓

동북아 3국 중 유독 조선에서 천주학이 성행한 이유

공자 초상화 [위키피디아]

공자 초상화 [위키피디아]

한국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 세종대왕 생일이라면 대만 스승의 날인 9월 28일은 공자 생일이다. 중국 대륙에서도 스승의 날을 이날로 옮긴다고 했지만 아직은 9월 10일이다. 이 역시 공자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는 기준이 달라 왔다 갔다 하다 1985년에 9월 학기 시작 이후로 정한 것이다. 

대만과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같은 유교권 국가에는 모두 공자 사당인 문묘(文廟) 또는 대성전(大聖殿)이 있다. 문묘의 주인공은 당연히 유학의 시조로 불리는 공자다. 하지만 그 외에도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문도의 위패를 모시고 함께 제사 지낸다. 4자(四子)라고 해서 안자(안회), 증자(증참), 자사자(자사), 맹자(맹가)를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받든다. 그외 공자의 수제자 10명을 뜻하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이 그다음이요, 다시 공문 72현(賢) 가운데 십철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과 한·송·명대의 명유(名儒)가 포함된다. 이를 배향(配享)이라 한다.


한국 문묘에만 빠진 왕양명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현(聖賢)은 엄밀히 따지면 여기에 배향된 유학자를 가리킨다. 그러데 그 구성원이 유독 한국만 다르다. 하나는 있음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없음에서 나온다. 있음은 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송시열 같은 한국 명유를 ‘동국18현’이라고 해 함께 모신 것을 말한다. 일본은 자체 유학자를 배향하지 않았다. 없음은 육구연과 왕수인(왕양명)으로 이어지는 심학(心學) 계열의 유학자가 빠진 것을 말한다. 

심학은 곧 양명학이다. 성리학의 이칭인 이학(理學)에 대응하는 말이다. 성리학이 송대 유학자 주희가 집대성해 주자학으로 불리듯, 양명학은 명대 유학자 왕양명이 확립했기에 양명학으로 불린다. 

그런데 왜 양명학 계통의 유학자가 한국 문묘에만 쏙 빠졌을까.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이 왕양명의 이론이 겉으론 유학을 내세우지만 속으론 불교·도교와 다름없다며 유교의 이단자를 일컫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유성룡은 왕양명에 대해 묻는 선조에게 스승의 말을 전했는데,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 그 뜻을 행했다면 그 화가 진시황 때와 비교해 어느 쪽이 더 심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 화가 채용신이 그린 주희 초상화. [한국미술정보센터]

조선 후기 화가 채용신이 그린 주희 초상화. [한국미술정보센터]

퇴계는 오로지 ‘전습록’만 읽고 “주희의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나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고 한 왕양명의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유학의 본토인 중국은 물론 조선을 통해 성리학을 수입한 일본에서조차 공인 받은 것이었다. 주희와 왕양명의 사상은 권력의 위협과 이익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도덕성의 함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만 주자학이 성현의 가르침을 이치에 맞게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양명학은 성현 말씀의 문자적 해석보다 내면의 깨침을 더 중시했다. 불교에 비유하자면 주자학은 교종이고, 양명학은 선종이다. 주희가 기독교 교부철학의 완성자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경전을 집대성한 해석학의 대가라면, 왕양명은 종교개혁을 촉발한 마르틴 루터처럼 그 말씀을 내면화해 각자의 실천(지행합일)을 역설한 혁명가였다. 

이는 ‘대학’에 등장하는 성인의 덕목인 팔조목의 해석 차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팔조목이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다. 주자학은 뒤의 네 조목을 단계적으로 풀이한다. 먼저 자신의 심신을 닦고, 집안을 평안히 한 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다스리라는 것이다. 반면 양명학은 이를 동시간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덕성을 함양하는 일은 평생을 해도 끝내기 어렵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병행할 문제라는 것이다.


만가성인의 유학

청대 화가 초병정이 그린 왕양명 초상화. [동아DB]

청대 화가 초병정이 그린 왕양명 초상화. [동아DB]

어떤 사람이 성인군자가 되느냐를 두고도 차이가 발생한다. 중국 계급 질서는 ‘황제-제후-공경-대부-사-서인’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공경은 삼공과 구경이라는 고위직을 맡는 상층 귀족을, 대부는 중하위 귀족을 말한다. 사(士)는 중앙정부의 말단 관료와 제후나 공경의 가신을 가리킨다. 서인은 생산에 종사하는 농부, 공인, 상인이다.
 
고대에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황제나 제후뿐이었다. 공자는 군자라는 말로 그 가능성을 확대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대부 정도까지만 가능했다. 송대 성리학은 이를 사대부로 확산했다. 사대부란 대부(大夫)와 사(士)를 합친 단어인데, 하위직인 사가 고위직인 대부의 앞으로 나서는 역전이 발생했다. 혈통을 중시하는 귀족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선발된 전문 관료가 중앙정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현상에 조응한 변화였다. 명대에 성립된 양명학은 성인의 경지를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했다. 왕양명의 ‘전습록’에 등장하는 ‘만가성인(滿街聖人)’이란 표현이 이를 상징한다. 온 거리가 성인으로 가득하다는 뜻이다. 

양명학의 이런 강렬한 평등의식을 퇴계와 그의 후예들은 간과했다.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유독 조선에서 천주교 신자가 넘쳐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조선의 사농공상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양명학이 상륙하지 못함에 따라 생긴 지적 공백을 ‘천주 앞에 만인의 평등’을 내세운 천주학이 대체했기 때문 아닐까. 

2500년 전 공자는 이미 ‘만가성인’의 사상을 품고 있었다. 왕족과 귀족 자제를 위한 사교육 시장만 넘쳐나던 시대에 사립학교를 열고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육포 한 묶음의 수업료만 내면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너희도 학문을 통해 성인군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를 압축한 공자의 말이 ‘오직 가르침만 있을 뿐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의 ‘유교무류(有敎無類)’다. 공자가 만세의 사표로 불리는 진정한 이유다.




주간동아 2018.09.28 1157호 (p6~7)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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