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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동북아 새판 짜기 부른다

YS와 카터를 섞은 문재인의 허허실실

동북아 새판 짜기 부른다

5월 26일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5월 26일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반도의 빅게임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북 · 미 정상회담을 한다 했다가 안 한다 하고, 다시 열겠다고 한다. 이 가운데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빅게임은 평화를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열전이나 긴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화가 온다’란 기대에 매몰돼 있으면 ‘집단사고(group think)’나 ‘소망적 생각(wishful thinking)’ 같은 전형적인 실패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치는 심리작용의 연속이다. 로버트 저비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평소와 다른 상황이 전개되면 확실한 근거도 없이 많은 사람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있는데(소망적 생각+집단사고), 그 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쉬워한다. 그런데도 훗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기대가 어긋났다는 기억이 있어도 다시 집단으로 소망적 생각을 했다가 또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심리현상을 ‘착각(misperception)’으로 정의한 바 있다. 

2018년 빅게임은 1차 북핵 위기인 1994년 빅게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1994년 북한은 핵개발국이었고 2018년엔 핵보유국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급박한 상황 반전은 상당히 유사하다. 1990~91년 동유럽 공산국가와 소련이 무너졌을 때 많은 한국인이 북한도 급변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격렬한 민중봉기로 무너진 루마니아, 유혈사태 없이 순차적으로 서독에 통합된 동독과 비교하며 독일 모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이것을 체제 위기로 보고 핵개발로 대응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경착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에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던 당시 김영삼 정부는 돌파구를 찾고자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미국의 군사압박에 몰려 있던 북한은 이에 응했는데, 실무 회담장에서 돌연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벼르고 있던 미국이 즉각 북폭작전 검토에 들어갔다. 평화를 향한 행진이 하루아침에 전쟁을 향한 구보로 바뀌게 된 것이다.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반도 전쟁은 절대 안 된다”며 미국을 막아섰다. 그때 박정희 정부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대동강에 띄운 배에서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온 카터는 김일성이 대화할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 상황은 다시 롤러코스터를 탔다. 순식간에 전운은 걷히고 ‘남북정상회담 재개’라는 태양이 솟아오른 것이다. 

그러나 얼마 뒤 김일성이 급사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북한은 곧 무너진다’ ‘급변을 피하려면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폭증했다. 북한을 변화시켜가며 한국에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였다. 미국은 북한에 길을 터주려고 북핵 문제를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북한은 재처리 방식에 의한 핵개발을 동결한다. 미국은 두 기의 원전을 외상으로 북한에 지어주고, 북한은 이 원전에서 나온 전기를 팔아 얻은 수입으로 수십 년 동안 갚아나간다. 두 기의 원전을 지을 때까지 미국은 매년 50만t의 중유를 북한에 무료로 제공한다’는 제네바합의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의 생각은 달랐다. 북한은 이 합의가 재처리만 금지한다는 점을 악용해 비밀리에 우라늄 고농축을 통한 핵개발과 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는 로켓 개발을 추진한 것이다. 미국은 2002년에야 이 사실을 알고 제네바합의를 파기했다. 그러나 북한은 가장 힘든 시기를 넘겼기에 그 후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 시험발사도 성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1994년 위기는 김영삼 정부가 먼저 움직이면서 뜻하지 않게 다가왔다. 2018년 위기도 우리가 먼저 움직여 촉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때마다 외교적, 정보적, 군사적, 경제적 압박만 강화하고 대화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미국 소식통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핵개발을 완료하면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경제제재도 풀어 북한 경제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 봤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은 데다 다시 뛰어갔다 오라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5월 22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부터). [AP=뉴시스]

5월 22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왼쪽부터). [AP=뉴시스]

또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군사압박과 경제제재 강화로 대응함으로써 북한의 돈줄을 마르게 하는 효과를 거뒀다. 당장 칠 것 같은 공포감을 북한에 주면서 경제적으로 말려 죽이는 전술을 구사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반응이 없으니 김 위원장으로서는 답답했을 수 있다. 그때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이끌어내 취임 1년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는 공약을 실현했다. 그리고 북한의 바람대로 북·미 정상회담도 중재했다. 

미국 소식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접촉을 끝까지 외면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중간선거나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폭로한 포르노배우 사건처럼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한 카드를 활용할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전한다. 정보 관계자들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일등 공로자는 서훈 원장이 이끄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은 지난해 12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북·미 정상회담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처음 추진됐다”고 말하고 있다. 

국정원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북한 통일전선부를 중재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는 것이다. 3월 6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원장 등은 대북특사로 평양을 방문한다. 그 직전 이들은 CIA 측으로부터 ‘김정은이 (한국에) 북·미 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하면 수락해도 좋다’는 내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는 우리가 지켜본 대로다. 

남북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을 무렵인 3월 31일 마이크 폼페이오 전 CIA 국장(현 국무장관)은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했다. 그때까지 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 1호기는 북한 밖을 날아본 적이 없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때도 전용차를 기차에 싣고 다닐 정도로 경호를 중시한다. 이 때문에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그리고 판문점이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국과 협력해 남북정상회담을 성대하게 치렀다. 폼페이오 장관의 보고와 문 대통령의 권유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상당히 고려했다고 한다. 그 무렵 미국에 등장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만들자는 움직임이었다. 미국 TV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연설을 하는 도중 청중석에서 “노벨, 노벨!”이라는 연호가 나오고, 이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씩 웃으면서 “노벨상~”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거듭 방송됐는데, 이는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도 국무회의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언급했다.


경기고 출신 안보 전문가들의 활약

5월 28일 청와대 소속으로 확인된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가 경기 파주 통일대교에 미리 나와 대기 중이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군 호위차량을 따라 북측으로 향하고 있다. 이 차량에는 북 · 미 정상회담 실무 접촉에 나선 미국 측 관계자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DB]

5월 28일 청와대 소속으로 확인된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가 경기 파주 통일대교에 미리 나와 대기 중이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군 호위차량을 따라 북측으로 향하고 있다. 이 차량에는 북 · 미 정상회담 실무 접촉에 나선 미국 측 관계자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DB]

이러한 분위기를 깬 것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경기고 출신의 원로 안보 전문가들이었다. 그때 경기고 출신의 원로 인사 가운데 일부는 안보가 위험해지고 있다 보고, 돈을 갹출해 안보 분야에 종사해온 동문 2명을 미국으로 보냈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그들은 볼턴 보좌관의 비서관을 만나 이런 설명을 했다고 한다. 

“북한은 1953년 판문점에서 미 제국주의자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내부 교육을 시켜왔다. 따라서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면 북한은 체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를 즉각 활용한다. 북한으로부터 핵무기를 받아내는 가시적 성과 없이 비핵화를 합의하면 결국 북한의 지독한 말싸움에 휘말린다. 공산주의자의 협상 목적과 협상술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정전협정 대표로 참여했던 터너 조이 제독이 북한의 협상술을 분석해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란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이를 반드시 참고하라.” 

이러한 의견이 들어가자 트럼프 대통령은 숙고 끝에 판문점을 버리고 싱가포르를 회담지로 선택했다. 볼턴 보좌관은 북핵 처리 방법으로 리비아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두 인사는 미국 싱크탱크와 더불어 미국 국회의원이 참가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미 의회에서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까지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온 북한에 적대적이었기에 금방 그들의 의견에 동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면 반드시 미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만들었다. 미국 보수세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 범위를 좁혀버린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해낸 두 인사는 “그때 워싱턴에는 트럼프를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을 피해가며 우리는 활동했다”며 웃었다. 그러자 북한이 발끈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소한 뒤 북·미 정상회담도 취소할 수 있다는 협박을 한 것이다. 그때쯤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조야가 북한과 협상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방향을 바꿨다. 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의 권유도 있었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김 위원장의 항복을 받는 자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먼저 문 대통령을 만나 자축하고 싱가포르로 갈 생각이었는데, 북한의 태도를 보니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강경 노선으로 회귀했다. 5월 23일 워싱턴을 방문한 문 대통령을 박대하고 24일에는 싱가포르 회담을 취소한다는 서한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지에는 김정은은 할 말이 있으면 자신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즉각(5월 25일) 문 대통령과 연락해 5월 26일 통일각에서 비공개 남북정상회담을 만들어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서 받은 박대를 뒤집을 기회를 잡은 것은 물론, 1994년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회담 다음 날인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를 통일각으로 보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회담하게 했다. 이때 성김 대사는 북한의 핵무기 20기를 반출해달라는 강력한 요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피해가지 않았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한 약속도 지키면서 미국 조야가 쳐놓은 그물도 피해나가려고 택한 묘수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 압력을 수용하면 마치 항복하는 꼴이 되고, 응하지 않으면 더 강한 미국의 압박을 받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심모원려를 갖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려고 한 일인데, 김 위원장에게는 더 큰 압박이 돼버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를 강화해 남북한을 동시에 옭아매는 모습을 보였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카터 전 대통령이 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2018년 문 대통령이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 임하거나 피하는 치킨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박대당했는데 상황은 역전시키는 마력

이러한 상황은 김 위원장이 그래도 문 대통령을 믿고 나섰다 벌어진 일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위기 진화, 북한과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을 염두에 두고 대화에 나섰는데, 그것이 엄청난 사태를 몰고 올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는 더는 좋은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언론은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배제되고 있다며 ‘저팬 패싱’을 거론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문 대통령을 제쳐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베이징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하루를 기다린 뒤에야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노골적인 박대를 받았다. 반면 시 주석은 두 번이나 김 위원장의 방문을 받아줬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갈등이 본격화되자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이 아니라 문 대통령을 찾았다. 

문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남북관계는 절대로 벌어질 수 없다. 문 대통령이기에 김 위원장이 따라 나왔고,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이 중재하는 회담장에 딸려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저비스 교수가 우려한 ‘착각’ 현상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지 못한 것 같은데,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차가 가게 하는 허허실실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과 카터를 결합한 듯한 역할을 하는 그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18.06.06 1141호 (p54~)

  •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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