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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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국민은행 희망퇴직의 역설

젊은 행원 떠나 ‘항아리형’ 구조 여전… “창구직원 강제 퇴직 다름없다” 지적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2-10 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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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2800여 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KB국민은행이 한 달가량 심사한 끝에 1월 19일 2795명의 퇴사를 결정했다. 이는 2010년 3244명의 희망퇴직 이후 최대 규모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19일부터 10년 차 이상의, 임금피크제에 해당하지 않는 L0(사무직원), L1(계장·대리), L2(과·차장), L3(부지점장·팀장), L4(지점장) 직급 등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최근 금융권은 핀테크(금융+기술) 확산과 인터넷뱅킹 출범, 저금리 기조에 따른 수익률 감소 등을 이유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장기근속 직원은 월 임금 최대 36개월 치, 임금피크제 해당 직원은 최대 27개월 치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희망퇴직 총비용은 8072억 원. 개인별로 따지면 적게는 2억~3억 원, 많게는 5억 원(특별퇴직금+기존 퇴직금)가량 된다.  

    국민은행이 이 같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한 것은 만성화된 ‘항아리형’ 구조(고임금의 책임자급 직원 비중이 높은 형태)를 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국민은행 희망퇴직은 ‘실패’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민은행의 희망퇴직 인원 대다수가 아직 근무 여력이 충분한 30, 40대 젊은 직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창구 업무를 맡고 있는 여직원(L0)이 전체 희망퇴직자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차장급 40대 남성 직원의 이탈도 상당하다. 결국 성별을 떠나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는 직원이 많은 셈이다.





    이직은 ‘하늘의 별 따기’

    이러한 실패는 올해에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2015년 말 시행한 희망퇴직 때도 15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는데 이들 중 3분의 2가 행원이었고, 책임자급 직원은 490명에 그쳤다. 같은 기간 책임자급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5.4%에서 57.2%로 오히려 늘었다. 2015년 말 희망퇴직을 통해 1000명에 가까운 직원을 내보낸 SC제일은행의 경우 퇴직자 대다수가 책임자급 직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제일은행은 2013년 4348명이던 일반 직원 수가 지난해 9월 3393명으로 총 955명 줄었는데, 이들 중 96%(919명)가 책임자급 직원이었다. 결국 국민은행은 2년에 걸쳐 업계 최대 인원을 내보냈음에도 은행의 비효율 원인으로 꼽히는 인력구조 개선에는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또한 금융상품 개발·전산업무 등 은행업 중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직급의 경우 희망퇴직 후 다른 은행 혹은 같은 금융계열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결국 퇴직금은 퇴직금대로 챙기고 새로운 일자리도 보장받는 것. 경력 15년 차인 한 시중 은행 직원은 “흔치는 않지만 ‘꿩 먹고 알 먹고’인 사례를 접할 때면 나도 진작 희망퇴직으로 나갈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이번에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계속 회사에 다니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지만, 내년에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또 고민에 휩싸일 것 같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은행 간 이직은 극히 일부의 얘기로 40대 과·차장급이나 창구 업무 담당 여직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한 관계자는 “입사한 지 1~2년 정도밖에 안 된 신참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은행에 합격할 정도면 스펙도 상위권이라 아예 직종을 바꿔 이직하는 경우가 많지만, 희망퇴직자에게 이직 혹은 재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창구 업무 담당 여직원도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이머 형태로 신분을 바꿔 재취업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 역시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시중은행 모두가 서로 몸집을 줄이려고 애쓰는 마당에 경력직을 뽑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희망퇴직 자체를 후회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2년 전 육아를 이유로 희망퇴직했다는 전직 은행원 A씨는 “다시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는 좀 더 버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2억5000만 원가량의 퇴직금을 받은 A씨는 절반은 아파트 대출금 상환에 쓰고, 나머지 로는 주식투자에 나섰지만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재는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다고 한다. A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는 삶이 나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써야 하는 돈도 많아지다 보니 월급쟁이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부터 파트타임이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빠져나오는 게 사는 길? 

    국민은행 희망퇴직자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L0 직급 여직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와 과도한 업무가 희망퇴직을 부추겼다는 여론이 강하다. L0 직급은 2014년 초 국민은행이 창구에서 입출금 업무를 주로 처리하던 무기계약직 직원(텔러) 4200여 명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신설됐다. 거의 대부분 여성이다.

    국민은행 L0 직급 한 여직원은 “정규직  전환 이후 업무 강도가 말도 못하게 세졌다. 과거에는 입출금 업무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펀드나 보험을 팔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대출 업무까지 봐야 하기 때문에 관련 자격증도 새로 따야 했다. 하지만 월급은 일반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고, 승진에서도 차별받는 등 의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근무환경 악화와 삶의 질 저하는 비단 L0 직급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핀테크 확산에 따른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마케팅 경쟁을 비롯해 앱 판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 등 부수적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은행권에 번지고 있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부담도 행원들의 퇴직을 부채질했다. ‘앱 팔이’ 소리를 들으며 실적 압박에 쫓기는 상황에서 성과연봉제까지 도입되면 은행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입사 10년 차인 국민은행 한 직원(37)은 “이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민을 준비 중인 동료가 있는데,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진짜 두려운 건 나에게도 곧 그날이 닥칠 것이란 점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은행의 미래가 이렇게 어두운지 짐작조차 못 했다. 몸집 줄이기에 앞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함에도 회사가 언제까지 인력 감축에만 집중할지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업에 불고 있는 희망퇴직은 ‘강제’ 퇴직이나 다름없다는 게 종사자들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번 희망퇴직으로 회사 측은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비(非)대면 업무 감소에 따른 영업점 축소가 한창인 요즘 ‘희망퇴직’이라는 더없이 좋은 명분으로 L0 직급 등 대면 업무 관련 인력의 구조조정이 자연스레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강제성이 전혀 없는 희망퇴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일 뿐 강제성을 띤 구조조정은 결코 아니다. 은행 업무환경 변화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던 내용으로, 이번 희망퇴직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건 무리가 있다. 연령대별 희망퇴직자 수는 내부 자료로만 활용될 뿐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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