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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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팔씨름에서 졌지만…

뼈대 위 인공근육 ‘로봇팔’ 인간에게 완패 … 상당한 기술 진전 ‘바이오 맨’ 현실로

  • 허두영/ 과학평론가 huhh20@naver.com

    입력2005-03-31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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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이 팔씨름에서 졌지만…

    로봇과의 팔씨름 대회에서 승리한 17세 소녀 펠슨 양의 경기 모습.

    로봇과 인간이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까. 아직 로봇이 팔씨름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감안, 인간이 양보해서 연약한 17세 여고생을 대표선수로 내세운다면 결과가 달라질까.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로봇과 인간이 팔 힘을 겨루는 팔씨름 경기가 처음 열렸다. 국제광학기술협회(ISOE)가 지능형 구조 및 재료에 관한 심포지엄의 특별행사로, 3월 초에 개최한 이 경기는 로봇의 완패로 막을 내렸다.

    로봇 측은 이 경기를 위해 특별 제작한 대표선수 3대를 출전시켰다. 인바이런멘틀로봇(ERI)과 스위스연방재료시험연구소(EMPA), 버지니아테크 기계공학부 학생들이 각기 제작한 특수 로봇팔로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에 맞서 인간 측이 내세운 선수는 17세의 아리따운 여고생인 파나 펠슨 양이다. 그는 샌디에이고 북쪽 칼스배드에 있는 라코스타캐니언 고등학교에서 전 과목 A를 받는 우등생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시건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할 예정인 예비 과학자다. 펠슨 양은 취미로 로봇 조립과 해양 스포츠 활동을 즐기고 있지만, 또래의 여고생에 비해 특별히 팔 힘이 센 것은 아니다.

    힘 아닌 민첩성과 유연성 겨루기



    경기 결과 로봇 3대는 여고생과의 세 차례 대결에서 모두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하나는 시작하자마자 3초 만에, 다른 하나는 4초 만에 손을 들었고 가장 오래 버틴 것이 24초로, 로봇 3대가 한 여고생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한 셈이다. 마징가Z의 ‘무쇠팔’이 아직은 만화 속의 이야기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로봇이 힘으로 인간에게 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계적인 관절로만 구성된 마징가의 ‘무쇠팔’로 인간을 이기는 것은 로봇에게는 ‘누워서 떡먹기’나 다름없다. 근육이 없는 뼈대로만 팔씨름을 한다는 것은 거리의 가로등과 팔씨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뼈대에 인공근육을 씌운 뒤, 심판의 신호에 따라 힘을 주어 상대방의 팔을 제압하는 것이 핵심 관건이다.

    경기가 끝난 뒤, 펠슨 양은 “내가 처음으로 로봇과 팔씨름을 하는 선수로 선발되어 정말 기쁘다. 어릴 적부터 로봇을 좋아해서 경진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팔씨름으로 인간을 이기는 로봇을 만들 생각은 아직 없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인간이 로봇과의 팔씨름에서 승리한 것은, 지능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힘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쉽사리 능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단박에 무너뜨린 인간의 쾌거(?)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번 경기는 팔의 힘보다 민첩성과 유연성을 겨루는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지능에서나 힘에서나 인간과 로봇이 각각 대표선수를 내세워 경기를 벌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아직까지는 인간이 로봇에 비해 대체로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사례로 인간과 컴퓨터의 체스 대결을 돌이켜보자. 1996년 러시아의 게리 카스파로프와 IBM의 슈퍼컴퓨터인 ‘딥블루’가 처음 겨룬 결과 3승2무1패로 인간이 컴퓨터를 이겼다. 이듬해 기량을 보완한 슈퍼컴퓨터가 2승3무1패로 카스파로프를 제압하기에 이른다. 그 뒤 카스파로프와 슈퍼컴퓨터는 엎치락뒤치락하며 경기를 계속했는데, 가장 최근인 지난해 11월 열린 대국은 1승2무1패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번 팔씨름 경기는 99년부터 기획됐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요셉 바코언 박사가 인공근육을 가진 로봇과 인간이 팔씨름을 벌이는 이벤트를 생각해낸 것. ‘인공근육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코언 박사는 이 이벤트가 인공근육을 만드는 전자구동 폴리머(EAP)에 관한 기술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했다.

    전자구동 폴리머 기술 활용 방안 무궁무진

    99년 당시의 기술로는 인간과 팔씨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로봇팔을 만드는 것이 적어도 20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로봇팔이 3대 0으로 완패하였는데도 로봇팔 제작팀은 자체적으로 인공근육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기뻐하고 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로봇팔이 1승이라도 거뒀더라면 인공근육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길 뻔했다. 인공근육 기술이 굉장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로봇팔을 응원하던 사람들은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세계의 팔씨름대회 챔피언과 겨뤄 이기는 것이다.

    인공근육 기술은 동물의 근육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동물의 근육은 가는 근육섬유(액틴)와 굵은 근육섬유(미오신)로 이루어져 있다. 근육이 자극을 받으면 서로 떨어져 있는 가는 근육섬유가 굵은 근육섬유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전체 근육섬유가 짧아지고 수축된다. 이 구조와 기능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인공근육 기술이다. 전자구동 폴리머는 인공근육을 이루는 플라스틱 소재로 가볍고 질기며 유연해 실처럼 길게 뽑거나 꼬아 근육의 형태로 구성할 수 있는데, 전기나 화학 신호를 받으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NASA는 이 폴리머를 소재로 만든 인공근육이 물건을 붙잡거나 집어올릴 수 있는 정도의 힘과 유연성을 갖추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의 성과에 따라 앞으로 외계 행성에서 탐사 로봇이 둥근 바퀴를 버리고 인공근육으로 된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공근육으로 된 팔도 갖춘다면 원숭이처럼 가파른 경사면도 오를 수 있고, 더 먼 거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을 전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근육은 인공관절 기술과 결합해 의료용으로 쓰일 수도 있다. 상처를 입어 회복되지 않는 근육을 대체하고, 망가진 신체의 각 부위를 인공보철기술로 복구하는 의료 혁명이 전개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인공근육 기술은 ‘600만불의 사나이’인 스티브 오스틴의 팔과 다리에 들어갈 근육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바이오닉 맨(Bionic Man)의 등장이 현실로 다가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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