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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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간병인 눈물 닦아주오”

‘유료소개소 반대’ 외로운 싸움 7개월째 … 열악한 노동 조건 저임금 개선 호소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3-18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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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간병인 눈물 닦아주오”

    3월11일 서울지방노동청 입구에서 공대위 소속 20명의 회원들이 서울대병원 불법 유료소개소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큰 사진).서울대병원 전경.

    ‘간병인 노동자 탄압하는 노동청은 각성하라.’

    ‘서울지방노동청장은 약속을 이행하고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 해결하라.’

    3월11일 낮 12시, ‘서울대병원 간병인문제 해결과 공공병원으로서 제자리 찾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소속 20여명 회원들이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황사 바람을 맞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2월25일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했다 사흘 만에 쫓겨난 뒤 시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으로 돌아갈 수도, 다른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어려운 이들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한 간병인은 “우리의 목소리가 언젠간 들릴 것이란 기대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1일 서울대병원이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폐쇄한 이후 간병인 12명의 외로운 싸움이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무료소개소 폐지에 반대하며, 유료소개소로 옮기지 않았던 12명의 간병인 노조원은 병원의 출입정지 가처분신청으로 병원에 출입하는 것조차 금지당한 실정이다. 병원의 일방적인 유료소개소 도입 결정에 항의한 대가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실직’의 굴레였다.

    소개비로 ‘중간 착취’ 절대 반대



    서울대병원 간병인 무료소개소는 1998년 만들어져 간병인을 자체적으로 모집하고 환자에게 소개하는 중개소 역할을 해왔다.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에서 유일하게 운영해온 무료소개소 제도는, 공채한 간병인을 대상으로 매년 두 차례의 간병교육과 인성교육을 실시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유료소개소를 통해 들어온 간병인을 믿을 수 없다”던 서울대병원이 지난해 돌연 입장을 바꾸었다. 병원은 무료소개소를 폐지하고, 유료소개업체 두 곳을 선정해 운영하고 있는 것. 더욱이 병원이 선정한 두 업체는 2월2일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에서 ‘근로자 불법 공급’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이 유료소개소 도입을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하다. 무료소개소를 운영해오면서 간병인들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고 보호자들에게서 많은 민원이 제기됐다는 것. 유료소개소가 전면 도입된 이후 6개월여 동안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므로, 무료소개소를 굳이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는다.

    그러나 이러한 병원의 주장에 간병인 노조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은 간병인이 보호자에게 부당하게 웃돈을 요구하거나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접수되면 간병인에게 시말서를 쓰게 했고, 이런 일이 세 번 계속되면 자동 탈락될 정도로 엄격하게 제도를 운영해왔다. 간병인 노조원들은 “환자들도 ‘서울대병원 소속 간병인’의 친철한 서비스 정신을 인정한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측은 “12명의 간병인 노조원 중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환자의 민원을 받은 사람이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고 대답을 피했다.

    간병인 노조원들이 생존권의 위협을 감수하며 유료소개소를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간병인 노조가 내세우는 유료소개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간 착취 구조’다. 유료소개소와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를 두루 거쳤던 간병인 최모씨(58)는 한숨을 내쉬며 유료소개소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유료소개소요? 입회비만 15만~20만원에, 월 협회비로 5만원씩 내야 합니다. 장기 환자나 간호하기 편한 환자를 만나려면 협회 사람들에게 20만~30만원의 돈은 쥐어줘야 하죠. 더욱이 협회비를 안 내면 다른 유료소개소에도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전국에 170여개나 있는 유료소개소들끼리 이미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는 얘기죠. 제때 돈을 못 내는 사람은 경기도 외곽지역의 병원으로 도는 경우가 허다해요.”

    “서울대 간병인 눈물 닦아주오”

    2월28일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한 공대위 소속 회원들이 투입된 경찰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다. 경찰에 저항하다 실신한 간병인 노조원들(아래).

    유료소개소에서 협회비를 걷기 위해 나온 이들에게 받았던 모멸감도 간병인 노조원들에게는 못 잊을 기억이다. 한 간병인은 협회비를 주며 직원에게 악수를 청했지만 “똥 묻은 손 어디에 내미냐”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며 분개했다.

    현재 서울대병원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간병인 노조원들은 50, 60대 장·노년의 여성이다. 남편과 사별하거나 사업 실패로 가정을 꾸려가야 할 책임을 떠안은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하루 24시간, 주 6일 근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이들이 받는 급여는 하루 5만원. 환자의 목에 뚫은 구멍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었다 뺐다 하며 가래를 뽑는 석션(suction)이나 환자의 환부를 소독하는 등의 의료행위도 대개 이들 간병인이 하고 있다. 하지만 간병인은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신분으로 일하다 다쳐도 호소할 곳조차 없는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다. 또 장기적인 수면장애로 대부분 안구건조증에 시달릴 뿐 아니라, 간염·결핵 등 감염성 환자들을 돌볼 경우 감염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자부심 높은 20만명 전국서 종사

    노조원 중 간병 경력이 가장 오래된 조모씨(57)는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 간병인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987년 남편이 죽고 간병인 일을 시작했어요. 환자가 5분 간격으로 토하고, 설사를 하면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어요. 환자의 보호자들이 한꺼번에 방문하면 앉을 자리가 없어, 비품실에 고단한 몸을 기대곤 했죠. 잠든 환자가 갑작스럽게 침대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심장병이 걸릴 만큼 놀랍니다. 엿새 동안의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 반찬 만들어놓기가 바빴어요. 쉬는 날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조금만 아끼면 아이들 고기 한 근이라도 더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환자들이 고마워해주는 덕에 버텼는데…. 이제는 일조차 하지 말란 말입니까.”

    7개월째 일터를 잃은 간병인 노조원들은 공과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거나 카드 빚에 시달릴 정도로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마음고생은 비단 병원 밖에서 싸우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는 유료소개소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환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소수의 간병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유료소개소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간병인들이 입는 가운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등 차별을 받고 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간병인이라지만,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은 누구보다 직업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정금자(53) 서울대병원 간병인노조 지부장은 자신이 꼼꼼히 정리한 수첩을 보여주며 간병인으로서 알아야 할 상식들을 알려주었다. 붉은색 수첩에는 당뇨병자, 암 환자 등의 식단과 환자 돌보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메모가 쓰여 있었다. “간병인은 단순히 환자의 병 수발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최적의 환경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돌보는 전문가”라고 설명하는 그의 눈은 유난히 빛났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조원들이 극단의 위치에서 싸우고자 하는 이유는 점점 늘어나는 간병인 수요 때문. 현재 간병인은 전국에 2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껏 가려져 있던 간병인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간병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길 바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논란으로 정국이 달아올랐던 3월11일 한 간병인 노조원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당국의 해결을 촉구했다.

    “현장의 서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데 정치인들끼리 총선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일본은 ‘노인요양보험’제도를 운영하며 간병제도를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데…. 나랏님, 제발 우리들 얘기도 좀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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