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청부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 ‘황해’의 한 장면.
지난해 12월 29일에는 경기 김포의 한 다방 앞 인도에서 조선족 김모(44) 씨가 탈북자 동거녀 이모(45)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이씨와 2013년 8월부터 동거했으며 이씨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모욕감을 느껴 홧김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기 수원 팔달산 토막살해 사건’의 범인 박춘봉(56·1월 7일 구속 기소)은 지난해 12월 29일 경찰에 검거됐다. 조선족인 박씨는 11월 26일 경기 수원 팔달구 매교동 자신의 집에서 동거녀 김모(48·중국 국적) 씨를 목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해 팔달산 등 5곳에 버렸다. 2012년 4월 있었던 ‘오원춘 사건’의 재판(再版)이었다.
최근 발생한 이들 살인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모두 동거녀이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그들에게 받은 모욕감이 살인 동기가 됐다는 것.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들에게 사람 목숨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 ‘황해’가 현실이 되다
이 때문일까. 지난 한 해 조선족에 의한 청부살인도 잇따랐다. 언론은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의 조선족 청부살인이 현실화됐다며 집중 보도했다. ‘황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조선족 폭력조직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지난해 3월 20일 K건설업체 사장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조선족 김모(50·2014년 10월 검거 구속) 씨 사건은 ‘황해’의 내용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브로커 이모(58) 씨로부터 3100만 원을 받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경찰 수사에서 “한국에 사는 가족을 만나려고 2011년 F-4(재외동포) 비자를 받고 들어왔는데 돈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브로커 이씨의 청탁을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 청부살인 사건의 주범도 조선족 팽모(44) 씨였다. 팽씨는 김 전 의원의 부탁을 받고 재력가 송모(67) 씨를 손도끼로 때려 죽인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의원은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살인교사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심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재력가 송씨에게 토지 용도 변경 명목으로 5억2000여만 원을 받았지만 용도 변경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금품수수 명세를 폭로하겠다는 송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친구 팽씨를 시켜 송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조선족 청부살인은 심심찮게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P그룹 모 회장 운전기사의 육성 녹음파일에도 “조선족을 동원해 (회장) 남편의 측근을 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회장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결과 사실무근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조선족 청부살인 소문은 이미 5~6년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일반인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2007년 경찰의 중국계 폭력조직 소탕 작전으로 체포된 흑사파 조직원은 “한쪽 다리 절단 250만 원, 양다리 절단 500만 원 등 지침을 마련해놓고 있고 청부살해는 1000만 원이면 가능하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인터넷에도 조선족 청부살인이나 청부폭력에 대한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글의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조선족 청부살인 사건이 실제로 세상에 알려지자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영화 ‘황해’나 ‘신세계’에 나오는 조선족 청부살인업자들 모습도 한몫했다.
과연 이런 소문은 사실일까. ‘주간동아’는 조선족 청부살해, 또는 청부폭력과 관련해 중국계 폭력조직이 서울 강남 심부름센터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조선족 청부살인을 교사하는 사람으로 위장해 심부름센터 10곳을 접촉했다. 이 중 8곳은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일부 업체의 경우 말하는 분위기로 봐서 ‘예전에는 했는데 조선족 청부살인 사건이 있은 후부터 조심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경찰에 잡히면 큰일 난다.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2곳으로부터는 청부살인이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청부폭력을 가해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P업체는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청부살인 또는 청부폭력이 가능하다고 답했지만 직접 상담을 요구했다. P업체 직원의 말이다.
“네, 가능합니다. 요즘도 그런 거(청부살인, 청부폭력) 찾는 고객이 가끔 있어요. 요즘엔 단속이 심해져 저희도 위험 부담이 커요. 그 이상은 와서 상담하세요. 지금 바쁩니다. 우리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 주세요.”
“동남아 가면 뭐든 다 해준다”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의 살인 피의자 팽모 씨.
▼ 영화 ‘신세계’나 ‘황해’에 나오는 것처럼 죽여줄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국내에서 하면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니까 동남아시아 쪽에 데리고 가서 해야 법적으로 문제없고 편하십니다. 필리핀 같은 데 말입니다. 원하는 나라에 관광을 가시면 거기서 뭐든지 다 해드립니다.”
▼ 비용은 어느 정도 듭니까.
“착수금 3000만 원, 관광지 도착해서 (죽은 게) 확인되면 나머지 한 7500만 원을 줘야 합니다. 항공비, 체류비, 수고비 다 합쳐서요.”
▼ 외국인이 대행하면 더 싸집니까.
“일단 지휘는 한국인이 전담하고, 조선족을 이용하면 더 싸지죠. (착수금과 나머지 금액) 각각 2000만 원 해서 총 4000만 원까지 가능해요.”
▼ 조선족은 왜 그렇게 싸죠.
“일단 수고비가 싸니까요. 일 처리하고 자기 나라로 가버리면 그만이거든요. (한국인을 썼을 때와) 과정이나 결과가 다른 건 없고요.”
결론적으로 조선족을 이용하면 4000만 원에 청부살인을 해줄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또한 J업체 관계자는 “안 죽이고 영원히 안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느냐”는 주문에 “(살인에 대해) 완전 범죄를 할 수 있지만 들킬 염려도 있으니 동남아시아 국가의 감옥에 죽을 때까지 가둬두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들은 듣기에도 간담이 써늘해졌다. 최근 필리핀에서 벌어진 한국동포 납치 사건이나 살해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옥에 들어가면 절대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해당 국가의 법무부, 경찰, 군인이랑 다 네트워크가 있고요. 언제 비행기 타서 어느 숙소에 묵는다는 것만 알려주시면 아예 평생 감방에서 썩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어요. 외부랑 완전 차단되는 거예요.”
이들이 필리핀을 청부살인 장소로 선택한 것은 총기 구매와 소지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J업체 관계자는 “필리핀에선 현지인의 이름을 빌리면 외국인도 총기를 소유할 수 있다. 가격도 싸서 합법 총기는 4만 페소(약 108만 원), 불법 총기는 6만 페소(약 162만 원)만 내면 9mm 구경 권총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브로커 없으면 1000만에도 가능”
이상호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가 2014년 7월 22일 오후 서울 신정동 남부지검에서 재력가 송모 씨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팽모 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M직업소개소의 소개로 심부름센터에 고용된 적이 있다는 40대 조선족 박모 씨는 “심부름센터에서 주로 물건 배달이나 민원서류를 떼어다 주는 일을 했는데, 한 지인이 청부 심부름업체에 다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3년마다 ‘한 건’ 하러 들락거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옌볜 출신인데 처자식 있는 가장입니다. 평일엔 공사장에서 일하고 룸살롱에서도 일하곤 했죠. 그런데 돈벌이가 안 되니까 그쪽(청부살인)으로 빠진 거지. 중국에서도 빈민층인데 쓸 줄 아는 건 주먹밖에 없으니까(그 일을 하는 거죠). (청부업자는) 한국이든 동남아든 다 갑니다. 심부름센터가 다 비슷한 폭력 하청업체랑 연결돼 있어요. 업체가 3000만~5000만 원을 받으면 절반 가져가는 것 같더라고요.
중국에서 바로 동남아로 가 상대방을 납치해 때리고 손발 묶어놓은 뒤 중국으로 튀거나, 멀쩡한 제3자를 찔러 놓고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하대요. 수고비는 한국에 있는 지인의 계좌 두세 개를 연결해서 받고요. 하청업체가 가짜 여권을 만들어줘 아무도 모르게 재입국하기 쉽고 중국에서도 걸릴 일 없고. 가족도 그냥 해외 출장 갔다 오는 줄 안대요.”
박씨에게 청부업자의 인적사항을 묻자 “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씨가 말한 청부 심부름업체는 중국계 폭력조직과 깊이 연계돼 있다는 것이 경찰 측 분석이다.
국제수사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2007년 옌볜 흑사파 조직을 단속했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국내 군소 조직을 흡수하면서 그 후 더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한국 조직폭력배들과도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큰 조직으로는 헤이룽장파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계 폭력조직에 속해 있는 조선족 김모 씨는 “청부폭력이나 청부살인은 굳이 폭력 조직원이 아니더라도 브로커를 끼지 않으면 500만 원이나 1000만 원이면 가능하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하므로 수사기관은 실태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적잖은 것만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청부살인·폭력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심부름센터의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했지만 조선족을 동원한 사례는 적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