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개입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를 의뢰하겠다.”
“이미 정해진 게임 들러리는 서지 않겠다.”
4월 11일자 보도에 서울시교육감 보수 측 후보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한나라당 서울시당이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김영숙 전 덕성여중 교장을 지원키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보수후보 단일화를 주도하는 ‘바른교육 국민연합’(이하 바른교육)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바른교육 관계자의 말이다
“자가발전이거나 지나가듯 언급한 이름을 덥석 물어 선거에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현재 보수진영 내부에는 보수-진보를 아울러야 이긴다는 정서가 있습니다. 공정택 전 교육감 여파 때문이죠. 그래서 한나라당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먹힐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당성을 띠면 현재로선 유리한 게 사실입니다.”
정당과 별개 아랑곳 없이 이념 공세
김영숙 후보는 ‘공교육의 신화’로 불린다. 교장 시절 방과 후 수업을 활용해 공교육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 모범사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런 그는 4월 8일 예비후보 등록을 하며 보도자료에 “여권으로부터 강력한 출마 권유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구절이다. 이에 A씨는 “지방자치법상 특정 정당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게 에두르는 화법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의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난맥상이다. 모두 12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고, 이들 가운데 7명이 단일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단일화는 바른교육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3월 ‘반(反)전교조’를 표방하며 300여 개 보수성향 시민·교육단체가 뭉쳤다. 연합 사무실 화이트보드에는 앞으로의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4월 15일 단일화 방안 확대 발표, 5월 3일 후보 초청 토론회, 7~9일 투표, 10일 결과 발표 순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범보수진영은 분열 조짐을 보인다. 김 전 교장 사건을 계기로 불신이 깊어졌고, 일부 후보는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다. 당초 단일화 불참 의사를 밝힌 후보 3명은 단일화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남승희 후보(전 서울시교육기획관)는 “독자적으로 ‘학부모발 교육혁명 전국 교육감 후보 연대’를 발족하겠다”고 밝혔고, 오성삼 후보(건국대 교수)는 “반전교조라는 이념적 원칙에 따른 단일화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채동 후보(서울시교육위원)도 “독자 중도후보로 남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력 쌓기용 후보가 절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현 상황은 이원희, 김영숙 후보의 양대 구도로 각이 잡힌다. 조직력, 자금력, 정책 역량 등에서 두 후보가 유력하다고 거론된다. 평교사 출신의 이원희 후보는 EBS 스타강사로 이름을 알렸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세를 모았다. 이 후보는 맞수인 김 후보의 공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희 후보 캠프의 한재갑 본부장은 “김영숙 후보의 최근 행동은 선거법 위반이다. 단일화 후보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 교육감 보수진영 측 김영숙, 이원희 후보. 진보진영 측 곽노현, 박명기 후보(왼쪽부터).
두 후보는 현재 바른교육의 단일화 참여결정을 유보한 상태. 이 후보는 “5월 10일로 잡힌 단일화 시기를 앞당기자”고 요구하고, 김 후보는 출마의사만 밝힌 상태다. 바른교육에서는 여론조사 50%, 회원 모바일투표 40%, 정책평가 10%로 후보를 정할 예정이다.
“이미 짜인 판 있는데 무슨 추대”
하지만 단일화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단일화 전에 후보들이 ‘마이웨이’를 외치며 뿔뿔이 흩어지거나, 결과가 나와도 따르지 않으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시기. 후보등록일(5월 14일) 나흘 전에 후보가 결정되는데, 그때까지 가면 물러날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한 후보 캠프의 관계자는 “본등록을 하면 후원회를 꾸리고 돈을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돈이 투입됐고 앞으로 액수가 더 늘어날 텐데, 모두들 후원금으로 그 돈을 털어버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진보진영은 14일 저녁 단일화 후보를 정했다. 20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2010 민주·진보 서울시교육감 시민추대위원회’는 투표를 통해 곽노현 후보(방송통신대 교수)를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경선은 추대위 소속 시민공천단 30%, 시민단체 대표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20%, 서울시민 1600명의 여론조사 50%로 진행됐다.
곽 후보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를 지내며 삼성 등 재벌개혁 운동을 추진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 자문을 맡으며 교육계에 이름을 알렸다. 추대위의 단일화에는 곽 후보를 비롯, 이부영·최홍이 후보(서울시교육위원) 등 3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박명기 후보(서울시교육위원)에 이어 이삼열 후보(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가 탈퇴하면서 ‘반쪽짜리 단일화’가 됐다. 특히 이 후보는 선거 당일 불참 의사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마음은 열흘 전에 정했지만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줄까봐 발표 시기를 늦췄다”고 말했다.
“선거구도가 저한테 맞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면 지지세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시민단체의 몫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지난주까지 이부영 후보와 양자 간 단일화를 추진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요. 독자 출마 여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추대위 단일화를 두고 “이미 짜인 판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애초 친소관계가 두터운 시민단체들이 결과를 주도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단일화 투표에서 운영위원의 비중은 20%로 가장 작지만 표당 비중은 가장 높다. 한 진보후보 캠프 관계자는 “사실상 핵심단체 31곳이 후보를 결정하게 돼 있었다. 후보를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 표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교육감을 둘러싼 경쟁은 좀 더 노골적이다. 김상곤 교육감이라는 확실한 타깃이 있어서다. 김 교육감은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등 이슈로 눈길을 끌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현직 프리미엄과 무상급식으로 일단 분위기를 주도한 진보진영은 느긋하고, 보수진영은 필적할 만한 대항마를 내세우기 위해 분주하다. 지난 7일 정진곤 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의 출마 선언으로 보수진영 단일화는 본격적으로 불을 댕겼다.
“제가 제 발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말씀드릴 수 없고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선거인가
진보진영 측 단일 후보로 나선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보수진영 측 정진곤(오른쪽) 후보.
김상곤 교육감은 MB 교육정책과 사사건건 각을 세워왔다. 주요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반대 의사를 고수했고, 대부분 그의 의지를 관철했다. 정 후보의 갑작스러운 출마선언에 “김상곤 교육감에 대적하기 위해 MB가 지원하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도는 이유다. 한양대 교육학과 출신의 정 후보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교육자문위원을 지냈다.
“정부의 교육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김상곤 교육감을 교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출마했습니다. 누가 단일화 후보가 됐든, 김 교육감은 꼭 꺾어야 합니다. ‘무상급식’ 같은 정치적 화두로 교육을 정치선전에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니까요.”
김진춘 후보(전 경기도교육감)를 비롯한 여러 후보가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보수진영 단일화 후보는 3명 정도로 압축됐다. 강원춘 후보(전 경기교총 회장)와 조창섭 후보(단국대 교육대학원장)는 “갑자기 내려온 낙하산 인사와 어떻게 경쟁하느냐”며 단일화 불참 의사를 전했다.
“청와대, 청와대 하는데 그게 확인된 얘기인가요. 다른 후보들도 그렇게 말하고 다녀요.”
4월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교육청. 김상곤 교육감의 측근인 김동선 대변인은 정진곤 후보를 이렇게 평가했다. “선거 생리상 우리 쪽을 강하게 비방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김상곤 교육감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지만 보도된 내용은 단 하나. 김 교육감이 20일 출마선언을 한다는 기사였다. 간담회 진행 중에도 보수진영의 움직임을 의식한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무상급식을 두고 한 기자와 김 교육감이 공방을 벌이자 대변인이 이를 저지했고, 이에 반발한 기자가 간담회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 바른교육 박성현 사무처장은 “경기도는 김상곤 교육감이 워낙 세서 그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레 보수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다. 진보는 무상급식을 활용하며 표 관리만 해도 괜찮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육감으로선 무상급식의 화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려한 대로 서울·경기교육감 선거는 정당 대결로 치닫고 있다. 개인의 교육철학과 신념을 내세우기에는 선거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그러나 법적으로 정당의 발이 묶여 있어 선거 고수들의 선전술만 날로 진화하고 있다. 후보자도 유권자도 “차라리 정당선거를 하든지 아예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선거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