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7

2003.08.14

仁術로 실천하는 ‘1% 나눔의 삶’

‘밝은세상 봉사단’ 구미서 3년째 무료 한방 진료 … 힘들고 가족 눈치 보여도 ‘보람찬 활동’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8-06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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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術로 실천하는 ‘1% 나눔의 삶’

    밝은세상 봉사단 허성우 단장(위 오른쪽)과 진료를 받으러 온 이매월 할머니.

    조건 없이 나의 1%를 떼어 남에게 주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나눔이 실행에 옮겨지면 사회는 그만큼 밝아진다. 밝은세상 봉사단(단장 허성우) 소속 14명의 한의사와 침구사는 2001년부터 ‘1%의 나눔’을 실천해온 주인공들이다. 경북 구미지역의 독거노인 등을 치료하는 일(지난해까지 매주, 올해부터 격주)에 나선 봉사단원들은 자신들의 나눔에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이 일은 단순히 나눔의 삶을 실천하려는 봉사단원들의 소망과 의지에서 출발한다.

    밝은세상 봉사단은 7월30일부터 8월3일까지 경북 구미시 현일고등학교 실내체육관에서 꽤 큰 규모로 나눔의 행사를 열었다. 동국대 침구학회 소속 교수와 학생, 민족의학연구소 소속 한의사 및 침구사 100여명과 150여명의 자원봉사자(택시기사 50여명 포함)가 참석한 가운데 구미지역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봉사를 실시한 것. 수천만원에 이르는 행사 경비는 허단장과 봉사단원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봉사단원은 하루 평균 600여명의 환자가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가 하루 평균 1000명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8월1일에는 채 동이 트지 않은 새벽 5시에 이미 체육관 앞에 환자들이 50여m의 긴 줄을 이뤘다.

    7월30일, 봉사단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이매월 할머니(90)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한 모습이었다. 자원봉사자의 손에 이끌려 진찰석에 들어선 할머니는 손과 허리 및 목 등의 통증을 호소했다. 진찰에 나선 양모씨(동국대 한의과대학 본과 4학년)는 팔과 손목의 신경 손상이 심하다고 진단했다. 1시간여 침을 맞은 할머니는 의료진이 제공한 약봉지를 들고 “내일 또 오겠다”며 체육관을 나섰다.

    무료진료 입소문 … 환자들 장사진

    仁術로 실천하는 ‘1% 나눔의 삶’

    진료중인 의료진들.

    허단장은 “지난 3년 동안 지역을 돌면서 만난 대부분의 노인 환자들이 병원 가기를 꺼린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도 병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게 보호자의 말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봉사단은 부담 없이 몸을 맡길 수 있는 ‘열린 병실’인 셈.



    이날 치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 김모씨(52·구미시 고아면)도 병원행을 거부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운 경우. 그는 봉사단의 의료봉사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5000평의 밭과 논 농사를 혼자 감당해온 그는 40대 중반부터 허리와 무릎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쉬면 사라지는 통증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증상이 악화돼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퇴행성 질환이 중증에 이르렀다. 그는 봉사단의 의료봉사를 빼놓지 않고 받는 ‘마니아’. “침을 맞고 나면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게 그의 말.

    봉사단의 일원으로 진료에 나선 박영환 민족의학연구소 소장(한의사)은 “농촌 노인들의 경우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허리와 무릎 관절의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 오랫동안 농사 일 등 중노동에 시달린 것이 퇴행성 질환의 원인이다.

    구미시 옥성면에 사는 김씨 할아버지. 중증의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독거노인 김 할아버지가 새 삶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것도 봉사단의 도움이 결정적이다.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릎관절의 통증을 느꼈던 그는 지난 2년 동안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허단장이 이끄는 의료봉사단을 찾아 침과 쑥뜸 치료를 받았다.

    仁術로 실천하는 ‘1% 나눔의 삶’

    7월30일 경북 구미시 현일고 실내체육관에서 의료봉사에 앞서 기념촬영에 나선 자원봉사자들.

    김 할아버지처럼 봉사단을 쫓아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줄잡아 100여명.

    봉사단원들은 지난 3년 동안 의료봉사를 하면서 한국 농촌의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냈다. 웬만한 곳에는 병원이 있지만 농촌의 노인들에게 병원은 ‘그림의 떡’이다. 여의치 않은 교통수단, 복잡한 의료제도 등이 노인들의 병원행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허단장은 “정부가 나서 봉사단처럼 의료반을 구성, 방치된 농촌환자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적극적이고 열린 복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구미시가 시골 노인들을 위한 전문 클리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단장이 의료봉사단을 만든 것은 자신의 ‘과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초, 철책선 수색에 나섰던 17명의 병사들이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했다. 14명이 현장에서 죽었고 나머지 3명 중 2명도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허단장이다. 그는 요즘도 비가 오면 온몸에 박힌 파편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 건강한 신체가 밝은 세상의 출발점이란 그의 지론은 여기서 비롯됐다. 유학길에 올랐던 미국에서의 경험도 봉사단의 밑거름이 됐다. 94년 컬럼비아대학 유학길에 오른 허단장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자원봉사자(공화당)로 활동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선거캠프의 핵심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미국사회를 관통하는 기부 및 봉사 문화에 눈을 떴다. “외형상 미국이라는 나라는 무질서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도덕적 의무와 책임)라는 사회의 도덕률이 사회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공부를 포기한 채 2년 동안 공화당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봉사단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봉사단은 앞으로 봉사단의 기능을 예방의학으로 전환하려 한다. 구미지역 독거노인들의 질병 여부를 파악, 병원행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발병 초기 치료할 경우 완치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지난 3년 동안 매월 500만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나마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식사를 무료로 제공, 부담을 덜어주지만 봉사단원들은 재정 문제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모두 입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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