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0

2023.03.10

“부모의 학교폭력 두둔, 자녀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국내 1호 학폭 전문 변호사 노윤호 “악의적 맞신고, 시간 끌기 소송도 2차 가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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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3-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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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중학교 1학년 A 군은 동갑내기 B 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함께 출전한 과학경시대회에서 피해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자 앙심을 품은 것. A 군은 B 군이 학교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려 하면 길을 막거나 어깨를 치는 등 시비를 걸었다. 우드록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등 물리적 폭력도 행사했다. 어느 날 괴롭힘에 화가 난 B 군으로부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A 군은 주먹으로 상대방 얼굴을 내리쳐 전치 4주 상해를 입혔다. 이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A 군에게 출석정지 처분을 내렸다. A 군의 부모는 “특목고에 진학해야 한다”는 이유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중학교 졸업까지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피해를 입은 B 군은 심한 트라우마로 결국 전학을 택했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가 3월 6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대처 방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홍태식]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가 3월 6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대처 방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홍태식]

    “비(非)물리적이고 교묘한 형태로 바뀌는 학폭”

    이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한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대표변호사(39·사법연수원 44기)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최근 학교폭력(학폭)이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잖다”며 “가해자 측의 ‘시간 끌기’ 꼼수로 피해 학생이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국내 1호 학폭 전문 변호사’다. “학폭은 한 학생이 학업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더는 아이들 싸움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변호사 전문 분야 중 하나로 ‘학교폭력’을 신설해달라고 건의해 2019년 관철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노 변호사는 서울동부교육지원청 학폭위 위원, 서울동대문경찰서 청소년선도심사위원회 위원, 푸른나무재단 법률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학폭 예방 및 피해자 법률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주간동아’가 3월 6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노 변호사를 만나 최근 학폭 문제의 심각성과 대처 방안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최근 학폭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물리적 폭력이나 직접적인 금품 갈취에서 비(非)물리적이고 교묘한 형태로 바뀌는 추세다. 학생 사이 힘의 우열 및 관계를 면밀히 살피지 않으면 ‘이게 학폭인가’ 헷갈릴 정도로 교묘한 형태를 띠는 것이다. 가령 친구로부터 돈을 빼앗는 학폭 행태를 보자. 예전 같으면 직접 돈을 갈취했다. 최근엔 피해 학생이 자기 말에 복종하게 만든 다음, 알바 자리를 소개시켜주고 월급날이 되면 가해자가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돈을 자기 수중에 넣는다.”

    초중고별 학폭 양상은 어떤가.

    “초중고 공히 가장 빈번한 학폭 유형은 언어폭력이다. 따돌림과 폭행이 뒤를 잇는다. 통념과 달리 학폭이 제일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초등학생 때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초등학교(3.8%), 중학교(0.9%), 고등학교(0.3%) 순이었다. 아무래도 고교생은 대학 입시를 의식하다 보니, 대부분 학폭에 연루되지 않으려 조심하는 편이다. 반면 초등학생은 장난과 폭력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가해 학생의 부모도 ‘우리 아이가 아직 어린데 무슨 폭력을 저질렀다는 거냐’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니냐’며 학폭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학교 차원에서 학폭 방지를 위한 지도가 어렵고, 2차 가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초등생 학폭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

    “초등학생이 저질렀다고 하기엔 수위 높은 사건도 적잖다. 언어폭력의 경우 피해 학생의 부모를 모욕하는 이른바 ‘패드립’ 사례도 많다. 초등학교 4학년 피해자를 대리한 사건을 예로 들겠다. 가해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놀던 동갑내기 피해 학생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걸면서 패드립을 했다. 화가 난 피해자가 항의했다. 그러자 가해 학생들은 폭행을 가하곤 현장에서 117(교육부·여성가족부·경찰청 학폭 상담 전화)에 거꾸로 피해자를 신고했다. ‘너 이제 학폭 가해자로 걸렸다’면서 피해자를 조롱하곤 상담 경찰관을 바꿔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주의를 줬다. 가해자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2차 가해까지 한 것이다. 최근 사이버 폭력과 학폭의 결합이 큰 문제로 떠올랐는데, 초등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피해 학생을 따돌리고 모욕할 목적으로 가해자들끼리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을 개설한다. 단톡방에서 오간 욕설·비방 내용을 캡처해 피해자에게 전송하거나, 강제로 단톡방에 초대해 직접 인신공격하기도 한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과 유사한 사례 빈번”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최근 고위공직자 자녀의 학폭과 징계 처분에 대한 시간 끌기 소송 의혹이 논란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과 인권감독관을 지낸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폭 논란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낙마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고교 재학 시절인 2017~2018년 동급생에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피해자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으로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학생의 신고로 학폭위는 정 변호사의 아들에게 강제전학 처분을 내렸다. 이에 가해 학생 측은 △도교육청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한 데 이어 △법원에 징계처분 취소 행정소송 △징계 효력 집행정지 신청에 나섰다. 1~3심 모두 피해 학생 측 손을 들어줬지만 송사가 길어진 만큼 피해 학생의 고통이 계속 이어졌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전학 처분을 받고 1년여가 지나서야 다른 학교로 전학했고 이듬해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이에 대해 노 변호사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으로 최근 공론화됐을 뿐, 상당수 학폭 가해자 측이 빈번하게 쓰는 방법”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해 학생 측이 학폭위 징계를 지연시킬 목적으로 행정심판에서 시작해 행정소송 1·2심, 흔치 않지만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기도 한다. 일단 집행정지로 징계를 막고 학교 졸업 때까지 소송을 이어가려는 목적이다. 이러면 심각한 학폭으로 강제전학 조치를 받아도 전학을 미루거나 사실상 피할 수 있다. 피해 학생은 가해자와 같은 학교에 계속 다니기 힘드니 전학을 택하기도 한다.”

    교육 현장의 학폭 대응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일선 학교는 사안 조사에 착수한다. 피해자가 실제로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학교는 신고를 접수하고 48시간 이내에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한다. 과거 일선 교육현장에서 학폭이 은폐되던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학폭 사실을 보고받은 교육지원청은 학폭위를 연다. 피해자와 가해자 측 진술을 청취하고 학교의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각각 보호 및 징계 조치를 내린다. 다만 피해 학생 측이 학폭위 회부를 원치 않고 사안이 경미할 경우 학교장 재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학폭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맞신고’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렇다. 피해 학생이 방어 차원에서 완력을 사용한 것을 트집 잡거나, 학폭으로 볼 수 없는 과거 사례를 구실로 맞불을 놓는 것이다. 일부 가해 학생 측은 일단 맞신고한 후 피해자와 ‘협상’을 시도한다. ‘학폭위까지 가지 말자’ ‘신고를 취하해주면 우리도 취하하겠다’며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학폭으로 심신이 지친 데다, 가해자로 몰리기까지 한 피해 학생은 얼마나 억울하겠나. 이런 악의적 맞신고도 일종의 2차 가해로 봐야 한다.”

    “피해자는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원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3월 6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을 위한 현장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3월 6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을 위한 현장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학폭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엄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학폭 관련 사실을 가해 학생의 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는 기한을 현행 졸업 후 최장 2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게 뼈대다. 현재 학폭위 조치는 폭력의 심각성에 따라 1~9호로 나뉜다. 1호(서면사과), 2호(피해 학생 접촉 및 보복 행위 금지), 3호(교내 봉사)는 생기부에 기재돼도 졸업과 동시에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 5호(특별교육 이수·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는 졸업 후 2년간 기록 보존이 원칙이지만 심의를 거쳐 졸업 즉시 삭제될 수 있다. 8호(전학)는 졸업 후 예외 없이 2년간 보존됐다 삭제되고, 9호(퇴학)는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는다. 학폭 가해 사실이 졸업 후 10년간 생기부에 남을 경우 가해자는 상급 학교 진학이나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생기부에 학폭 가해 사실을 장기간 기재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가 학폭 대책의 핵심이다. 가해 학생의 학폭 사실을 생기부에 오랫동안 기재하고, 대학 입시에까지 불이익을 준다고 해서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취지인 듯한데, 당장 대입에 연연하지 않는 가해 학생도 적잖다. 불이익이 커지면 가해 학생 측은 징계 조치에 지금보다 더 격렬히 반발할 것이다. 아예 학폭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말이다.”

    가해 학생이야 학폭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마련 아닌가.

    “문제는 가해 학생 측이 징계 자체를 거부해 행정, 법적 절차가 길어지면 피해 학생의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1호 서면사과 처분만 받아도 가해 학생 측이 불복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학폭 미투’ 등으로 한 번 가해자로 낙인찍히면 끝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학폭위도 4호 처분 이상 징계를 내리길 주저한다. 만약 생기부 기재 기간이 졸업 후 10년으로 늘어나면 학폭위는 어지간한 학폭엔 1~3호 처분을 내릴 것이다. 이럴 경우 가해 학생을 선도하는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엄벌 기조가 거꾸로 피해 학생 측의 신고를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도 피해 학생의 부모 상당수가 ‘다른 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신고를 망설이는 실정이다.”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진정 원하는 조치는 무엇인가.

    “가해자 측의 진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다. 가해자 엄벌보다 당장 피해자가 치유받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령 피해 사실을 빨리 인정받아야 전문가의 트라우마 상담과 ‘인정 결석’ 조치 등을 받을 수 있다. 비교적 경미한 사안의 경우 학폭위까지 가지 않고,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를 택할 수도 있다. 학폭 신고 중 60%가량이 학교장 자체 해결로 마무리된다. 가해 학생이 잘못을 제대로 뉘우치고 피해 학생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경우 고려할 만한 조치다.”


    “학폭 피해 대응, 화내지 말고 사실관계 파악해야”

    자녀가 학폭 피해를 당했을 경우 부모 등 보호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노 변호사는 “감정적 대응을 지양하고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자녀가 학폭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감정적으로 격앙되기 쉽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파악하지 않은 채 신고부터 하거나, 반대로 ‘네가 얼마나 못나게 굴면 친구한테 당했느냐’고 자녀를 나무라기도 한다. 결코 감정을 앞세우거나 비난하지 말고, 자녀가 언제 어떤 학폭을 당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이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장 슬프고 화나더라도 부모가 피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자녀를 도울 수 있다.”

    반대로 자녀가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 어찌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다. 정말 학폭을 저질렀는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런 노력 없이 무턱대고 피해자 측에 연락해 사과하겠다고 하면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자녀가 뭘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받기 십상이다. 그리고 피해 학생에게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원만한 해결의 첫걸음이다. 잘못이 분명한데도 ‘이건 학폭이 아니다’라면서 자녀를 두둔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선 절대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타일러도 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가해 학생은 반성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꼴이 된다. 학폭 가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지연시키면 이번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처럼 결국 후과가 자녀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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