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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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총장도 코드 인사? 사라지는 직선제

교육부 ‘국립대 선진화 방안’ 압력에 대부분 포기…‘죽음’으로 지켜낸 부산대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8-31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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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총장도 코드 인사? 사라지는 직선제
    태풍 경보가 내린 8월 25일. 부산대 장전캠퍼스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대학본부 돌계단에는 흰 국화다발이 젖지 않게 포장돼 놓여 있었다. 8월 17일 이 학교 국문과 고현철(54) 교수가 사망한 지점이었다. 고인은 “총장은 직선제 약속을 이행하라”고 외친 후 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했다. 당일 오전 총장직선제 폐지 반대 시위에 자신의 아내와 참여하고 몇 시간 후였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전자공학과)이 침통하게 말을 꺼냈다.

    “말수가 적고 문학에만 몰두하던 분이었습니다. 평소 정치적 견해를 강하게 드러내지도 않았고요. 아무도 죽음을 예감하지 못했죠. 다만 투신하기 며칠 전 단식농성을 하던 제게 전화로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불의에 둔감해진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던진 것 같습니다.”

    학교 총책임자인 총장은 없었다. 이 학교 김기섭 총장은 고인 사망 당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총장직선제 시행 공약을 번복해 교수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은 후였다.

    8월 21일 영결식이 치러진 분향소에는 학생 한 명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문하러 온 사회학과 2학년 이모(20) 씨는 “학교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 교수님 사망을 계기로 총장선거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교수는 유서에 ‘학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져 있다’며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고 썼다. 그가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수호하려 한 총장직선제란 무엇인가.

    직선제 폐지하면 5점, 안 하면 0점



    대학 총장도 코드 인사? 사라지는 직선제
    총장직선제는 교수와 교직원들이 투표해 최다득표한 총장 후보 1~2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이 후보들의 신원을 검증하고 적합한 인물 한 명을 뽑아 임용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최종 재가한다. 단 학교마다 선거인단 구성은 조금씩 다르다.

    이 제도는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도입됐다. 이전까지 국립대 총장은 학내 투표 없이 교육부 내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했다. 87년 단과대학이던 국립 목포대에서 최초로 직선제 학장을 선출했다. 이후 2008년에는 40개 국공립대가 총장직선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직선제의 단점도 드러났다. 선거가 과열되면서 금품수수나 교수 사회 파벌 조성 같은 폐해가 나타났고 무리한 공약이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직선제 폐해 논란이 일었지만 대학가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총장직선제의 단점을 보완해 유지하자는 쪽이 대세였다.

    하지만 정부는 직선제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국립대 선진화방안’ 제2단계를 추진하면서 ‘총장직선제 개선’을 제시했다. ‘대학의 교육역량강화 사업’ 지원 대학 선정 및 ‘구조개혁 중점 추진 국립대학 지정’에서 총장직선제 개선을 5% 반영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김유경 경북대교수회 부의장(사학과)은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면 5점, 폐지하지 않으면 0점을 부여했다. 0.1~0.2점에 당락이 바뀌는 경쟁에서 5점 차이는 치명적이었다”고 밝혔다.

    국립대 가운데 경북대, 목포대, 부산대, 전남대는 각 학교 교수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교육부의 총장직선제 폐지에 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거부했다. 이 4개교는 2012년 4월 정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 사업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전년도 같은 사업에서는 1~6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학교들이다. 김유경 부의장은 “정부가 사업 지원비를 미끼로 대학에 횡포를 부렸다”며 “자본에 멍든 대학은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요구에 굴복해야 했다. 국립대 선진화가 아니라 퇴행적 조치”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총장직선제 폐지 압박’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2013년 10월 교육부는 각 국립대에 공문을 보내 ‘2013년도 대학 교육역량강화 사업에서 총장직선제 개선 관련 규정을 실질적으로 유지하지 않는 국립대에는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거나 환수할 예정임을 밝힌 바 있다’며 ‘총장직선제 개선을 위한 자체 규정 등 제·개정을 미완료한 대학은 올해 내 조속히 완료하라’고 했다.

    결국 모든 국립대가 총장직선제 관련 학칙을 개정해 사실상 직선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부산대만 최근 사퇴한 김기섭 총장까지 직선제로 선출해왔다. 부산대를 제외한 국립대는 일명 ‘총장간선제’를 시행했다. 편의상 간선제라 부르지만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쓰는 용어가 아니며 일부 대학은 ‘공모제’라 부르기도 한다. 간선제는

    50인 이하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를 별도로 꾸려 투표를 통해 총장 후보 1~2위를 결정한다. 이후 임용 제청 등의 과정은 직선제와 같다. 하지만 간선제를 채택한 국립대도 총장 선임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방통대)는 8월 26일 현재 총장 자리가 각각 12개월, 17개월, 11개월째 공석이다. 이 대학들은 모두 총장간선제를 시행했지만 교육부가 후보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경북대의 경우 김사열 생명과학부 교수, 공주대는 김현규 경영학과 교수, 방통대는 류수노 농학과 교수가 1위 후보로 낙점됐다. 하지만 세 후보 모두에 대해 교육부는 별다른 사유 없이 ‘적절치 않다’며 임용 제청을 거부했다. 세 교수는 서울행정법원에 ‘총장 임용 제청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김사열 교수는 1심에서 승소했고, 김현규 교수는 1·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며, 류수노 교수는 1심에서 승소, 2심에서 패소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김사열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승소는 당연한 결과”라며 “총장 후보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왜 교육부가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에 대해 교육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행정기관(교육부)의 내부적인 의사결정이므로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대학 총장도 코드 인사? 사라지는 직선제
    교육부의 총장 후보 퇴짜 놓기

    교수 사회 내부에서는 교육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이유를 제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다. 세 후보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이나 시민단체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교수회장은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들을 거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추측일 뿐이어서 행정소송 외에는 교육부의 결정을 공식 반박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의혹은 한국체대(한체대) 총장 선거에서도 제기됐다. 한체대는 2013~2014년 총 4번이나 교육부로부터 임용 제청을 거부당했다. 교육부는 거부 사유를 고시하지 않았다. 5번째로 새누리당 김성조 전 의원을 총장 후보로 세웠다. 육현철 한체대 교수평의회 의장(사회체육학과)은 “(김성조 전 의원이) 체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교가 총장선거로 진통을 겪자 교수들이 고심 끝에 영입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 여론에 부딪쳤지만 올해 초 한체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묻지 마’식 총장 임용 제청 거부는 현 정부에서 집중 발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총 14건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가 있었다. 2006년 1건, 이명박 정부 때 5건, 현 정부(약 2년 7개월)에서 8건이다. 교수들이 “박근혜 정부가 대학 총장마저 코드 인사를 단행한다”고 성토하는 이유다.

    총장 없는 대학은 발전 원동력을 잃고 있다. 김유경 부의장은 “총장 공석 사태가 지속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에 돌아간다”며 “총장 직무 대리인이 있지만 학내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기엔 역부족이다. 대학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총장이 없으면 강력한 리더십이 부재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윤규상 공주대 총학생회장은 “학교가 여러 국책사업의 지원을 받지 못해 학생들이 받는 혜택이 크게 줄었다”며 “연구지원금 규모가 축소됐고 일부 장학금도 취소돼 학생 복지의 질이 떨어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총장직이 공석이라 각종 예산 유치권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고도 이런 상황에 처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간선제는 ‘로또식 추첨’이란 비판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국립대들은 간선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국립대 교수 다수는 “현행 간선제는 대학을 파행으로 몰고 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간선제는 별도로 꾸려진 총추위가 후보를 정한다. 총추위는 최대 50명으로 교수, 교직원, 학부생 및 대학원생 대표, 학외 인사 등으로 구성된다.

    총추위는 대표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총추위는 선거 당일 아침에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비밀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선관위는 총추위 정족수의 3~4배수를 뽑고 일일이 전화로 연락해 위원회 참여 의사를 묻는다. 전화를 받고도 위원직을 고사하는 경우가 많아 시간과 인력이 배로 든다. 평소 선거에 무관심하던 사람이나, 특정 후보 지지자가 위원직을 수락하는 경우도 있다. 정민걸 공주대 교수회장(환경교육학과)은 “현행 공모제는 ‘로또식 추첨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 회장은 “초등학교 회장선거도 이렇게 뽑지는 않는다. 직선제 시행 당시에는 선거인단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후보들을 미리 파악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현재는 아침에 ‘깜짝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투표권을 얻는 식이다. 따라서 총장 후보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펼쳐야 할지 모르고, 선거에 대한 학내 관심도는 떨어져 오히려 편향된 투표 결과가 나올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회장은 “정부가 총장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학교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의도다. 규모가 큰 국립대의 경우 직선제 선거인단이 1000명이 넘는데 1000명 이상과 50명 이하 선거인단이 뽑은 후보 중 누가 더 대표성을 띠겠는가. 당연히 전자다. 직선제 폐지는 대학 내 결집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총장직선제의 경우 선거가 과열돼 학내 연구 분위기를 해치는 등 단점이 나타났다. 교육부가 대학을 휘두르려는 의도가 아니다”라면서 “대학 구성원들이 총장선거에 관심 없는 것도 간선제의 폐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총장선거제도로 대학 재정을 압박할까.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8월 2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국립대 운영 성과 제고와 선진형 대학을 위해 재정 사업과 교육부 정책을 연계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판례가 있다”고 언급했다. “총장직선제를 시행하는 대학에 재정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적법하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총장직선제 찬성 진영은 교육부 정책을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 3항에 따르면 ‘대학의 장 후보자 선정’은 ‘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하거나 ‘해당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선정’하도록 돼 있는데, 정부가 총장선거 방식과 재정지원을 연관시키는 것은 법을 무시한 행위라는 주장이다.

    부산대 교수회는 고현철 교수의 죽음을 계기로 총장직선제를 끝까지 사수하겠다는 각오다. 부산대 교수회는 대학본부와 총장직선제 실현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8월 21일 고인의 영결식에 여러 교수단체(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함께 참여해 “직선제를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학생들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부산대, 강원대, 경북대, 부산교대, 전남대 총학생회는 8월 24일 부산대 본부 앞에 모여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각에서는 “교육부는 시간 끌기를 하며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재호 교수회장은 “지금 대학 민주주의의 위기는 사회 전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며 “대학은 지성의 마지막 보루다. 권력의 부정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로 퍼질 것이다. 권력에 예속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지키는 대학의 힘을 보여주겠다. 고난은 각오하고 있다”며 의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 총장도 코드 인사? 사라지는 직선제
    ▼사립대 총장, 재단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도▼

    “최소한의 투표라도 있었으면…”

    사립대들도 총장선거로 진통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사립대는 교수들의 투표 없이 재단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단이 학교 운영에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어 교수들이 적극 반발하기 어렵다. 연세대는 재단 측에서 내놓은 ‘18대 총장 선출안’에 대해 교수평의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태석 연세대 교수평의회 부의장(법학전문대학원)에 따르면 18대 총장 선출안에는 교수들의 인준 투표가 폐지돼 있다. 기존 선출 방식은 이사회에서 총장 후보를 뽑으면 교수들이 인준 투표로 가부를 결정했다. 윤 부의장은 “인준 투표마저 없으면 교수들이 총장 선출에 대해 전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며 “교수평의회는 이사회 안건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대해 이사회는 9월 7일 마지막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교 재단인 동국대도 총장선거에 대한 논란이 크다. 지난해 12월 김희옥 전 총장이 “조계종이 사퇴를 종용했다”고 발표하고 사퇴하자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진 보광 스님이 총장이 됐다. 한만수 동국대 교수협의회장(국문과)은 “동국대 이사회는 13명 중 9명이 조계종 인사다. 교육 전문가가 아닌 스님이 이사회의 과반수이고 대학 운영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희대는 설립자인 고(故) 조영식 박사의 차남인 조인원 총장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총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희대 교수의회가 교수들의 찬반 투표 방안을 재단 이사회 측에 건의했지만 총장 선출 규정의 변경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동의대 교수)은 “현재 사립대는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총장을 임명하는 폐단이 심하다”며 “정부가 대학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대학법인을 평가하는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이사장은 “법인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시행해야 사립대도 더욱 민주적인 방향으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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