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잉어 양식업자인 박재영(61) 씨는 수많은 법원 판결문, 각종 사실조회 서류, 진정서, 내용증명서를 보따리째 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2002년부터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어장에서 비단잉어를 양식했던 박씨가 2006년부터 5년간 서울시 산하 SH공사와 양어장 이주 보상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이면서 쌓인 것들이다. 그러는 사이 자신이 기르던 10만여 마리의 고급 비단잉어를 대부분 잃었다. 그는 “돈을 떠나 분통해서 계속 대응하고 있다”며 가슴을 쳤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H공사는 2006년 9월 건설교통부 토지수용 계획(2005-476)에 따라 양어장 부지의 수용 절차를 진행했다. SH공사는 비단잉어 이주에 따른 지급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 감정평가를 실시했다. 이주비용을 의결하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J감정평가법인(이하 J법인)에 감정을 의뢰했고, J법인은 다시 전남대 해양기술학부에 전문감정 용역을 맡겼다.
전남대는 2007년 4월부터 6월까지 세 차례 양어장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했다. 이 과정까진 큰 문제가 없었다. 박씨도 “다른 양어장 부지를 수소문하느라 바빴을 때”라고 했다. 그러나 2007년 7월 전남대가 갑자기 비단잉어 전문감정평가 용역 철회 의사를 박씨에게 통보하면서, 양어장 이주를 둘러싼 길고 긴 갈등이 시작됐다. 전남대가 7월 3일 박씨에게 보낸 철회 사유 통보서에 따르면, 전남대는 ‘현장조사 등을 토대로 비단잉어의 단가와 폐사율에 대해 (J법인에) 자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비단잉어의 일반 생태, 양식방법에 대한 자문만을 언급해 J법인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전남대가 밝힌 대로라면, 전문용역 기관에 감정을 의뢰한 J법인이 전남대의 자문 결과 일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남대는 박씨 양어장에 있는 비단잉어의 최종 수량(성어 6000, 종어 50, 치어 10만, 금붕어 200마리)을 J법인에 보고했다는 내용도 첨부해 박씨에게 보냈다. 이에 박씨는 7월 5일과 13일, 8월 5일 세 차례에 걸쳐 J법인과 SH공사, 그리고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양어장 이주비를 확정하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내용증명을 보내 철회 사유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다.
폐사율 소송 진행 중에 강제 집행
하지만 박씨는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는 사이 8월 23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이주비 1억1286만 원의 결정을 내렸다. 피해손실 예상액이 생각보다 적다고 판단한 박씨는 곧바로 전남대가 평가 자문을 철회했음에도 이주비가 결정된 사실관계를 전남대 측에 다시 물었다. 전남대는 9월 12일 회신 문서를 통해 ‘박씨의 비단잉어 현존가치(2006년 9월 기준)가 113억 원이며, 이에 따른 이주 예상 피해금액은 34억2600만 원으로 감정 평가해서 J법인에 제출한 뒤 평가용역 철회를 통보했다’고 전해왔다. 전남대는 비단잉어가 환경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해 현존가치에서 어종당 30~35%의 폐사율을 적용, 피해 금액을 산출했다.
전남대에서 판단한 34억여 원과 J법인의 자문을 받아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결정한 이주비 1억1286만 원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나자, 박씨는 2007년 9월 SH공사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제2 행정부)에 손실보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2008년 4월 원고인 박씨와 피고인 SH공사 합의 아래 비단잉어 ‘재감정전문기관’으로 부경대 수산과학연구소를 지정했다. 이어 법 절차상 전문기관의 자문평가 내용을 검토해 반영하는 일반 감정법인으로 M감정법인(이하 M법인)을 지정했다. 박씨와 SH공사는 감정평가 용역비를 2500만 원씩 나눠 부담했다. 이후 5월 부경대 측은 일주일간 양어장을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뒤 6월 10일 M법인에 감정용역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기재된 토지 수용시점(2006년 9월) 기준 비단잉어 현존 가치는 약 106억 원. 전남대가 평가한 113억 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부경대가 자문 내용을 보낸 2개월 후 M법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비단잉어의 가치는 12억6000만 원. 전문용역 기관인 부경대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일단 재판부는 2008년 12월 비단잉어 값어치에 대해 M법인의 평가를 인정, SH공사가 이주보상비 3억1400여만 원(12억6000만 원에 폐사율 30~35% 적용 기준)을 박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두 차례나 전문감정기관(각 대학)의 자문 결과가 최종감정 결과와 다르게 나타나자 박씨는 손실보상금 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던 2008년 9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감정평가 내용을 처음 제공한 J법인의 감정사 A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A씨를 사인부정사용 및 부정사용사인행사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2009년 9월 징역 1년을 선고하고 A씨를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A씨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제출한 서류 중 현존량 가치와 폐사율을 전남대 감정 결과보다 낮춰 수정한 부분에 대해 ‘H교수의 동의 없이 인장을 날인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A씨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판결대로라면, 박씨가 갖고 있는 감정평가 과정의 ‘의문’을 법원도 일부 수긍한 셈이다. A씨 항소심 판결문에서도 재판부는 ‘피고 사건 범행은 H교수와 자문평가법인의 감정 내용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동시에 보상 당사자인 박씨의 이해관계에도 심대한 영향을 준다’고 판시했다.
이런 사이 갈등은 더욱 커져 강제집행이라는 또 다른 다툼으로 이어졌다. 박씨의 비단잉어가 이주 강제집행 과정에서 대부분 폐사한 것이다. 2008년 9월 4일 SH공사는 손실보상금 재판 과정에서 양어장 비단잉어 이주를 강제로 집행했다. 박씨는 “M법인이 비단잉어 감정서를 8월 30일 법원에 제출한 지 4일 만에 느닷없이 양어장을 강제 철거했다”며 “철거 당시엔 주무관청인 양천구청 관계자도 참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천구청이 SH공사 행정대집행 계고서와 영장발급 적법 여부에 대한 법제처 유권해석을 받아 박씨에게 통보한 서류.
이와 관련해 양천구는 지난해 SH공사의 행정대집행 계고서와 영장발급 적법 여부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 해석을 받아 박씨에게 전달했다. 법제처는 양천구의 질의에 대해 “행정청(양천구청)이 제3자로 하여금 대집행을 하는 경우라도 대집행영장의 문서번호, 자진이주의무기한, 대집행일자 등은 행정청이 직접 기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수한 의혹 법원의 최종 판단은?
강제집행 후 철거 전문업체에 의해 충북의 한 양어장으로 이전된 박씨의 비단잉어는 곧바로 대부분 폐사했다. 박씨는 “일반 건설 철거용역 인력을 동원해 무단 포획함으로써 대부분 폐사했다”고 전했다. 한편 강제집행 과정에서 SH공사 직원 3명(해임)은 당시 철거에 나선 업체로부터 1440만 원을 수뢰한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박씨의 손실보상금 재판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 계류된 상황. 그사이 본 소송과는 별도로 SH공사는 박씨를 상대로 2009년 1월 비단잉어 보관료 상환소송을 제기했다. 강제집행 뒤 비단잉어를 보관하는 데 1억2293만 원이 들었다는 게 보관료 상환소송의 청구 취지. 이에 맞서 박씨도 2009년 10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박씨는 “부경대가 2007년 8월 기준으로 (성장가능성 추산) 산정한 비단잉어 가치 387억 중 감소한 개체수를 고려해 산출한 가치는 218억이며, 여기서 강제집행으로 90%가 폐사해 최소 196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이 중 일부인 12억 원을 SH공사가 배상하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강제집행 피해에 대해 불법성이 있다’며 박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12부(재판장 박희승)는 지난해 10월 15일 ‘SH공사의 불법행위로 비단잉어 약 90%가 폐사했다’며 ‘SH공사는 박씨에게 11억35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비단잉어 가치는 2008년 손실보상금 소송 당시 법원이 인정한 M법인 감정가 12억6000만 원을 인정했다. SH공사의 보관료 청구는 기각했다. SH공사는 곧바로 보관료 상환소송에 대해 항소했다.
박씨는 “고기도 안 죽고 서로 좋을 수 있었다”며 “환경에 민감한 고기임을 알면서도 공사용 포클레인을 동원하고, 양어장 둑을 무너뜨려 물을 빼내 산소 부족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개했다. 비단잉어 가치에 대해서도 “왜 J법인 A씨가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까지 감정 결과를 낮췄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방인 SH공사 측은 박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SH공사 보상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전한 잉어에 대해선 소유자 책임이 있으며, 고기도 90%가 폐사한 게 아니라 30% 이내 범위”라고 반박했다. 강제집행 서류 적법 여부에 대해서도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구청으로부터 적법하게 위임받은 권한”이라고 못 박았다.
5년간의 지루한 다툼. 결과적으로 비단잉어는 살리지 못하고 무수한 의혹만 남았다. 박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고등법원 항소심은 대법원의 손실보상금 청구소송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법원은 최종적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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