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변화는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부모와 자식 간 소송으로도 확인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는 것’을 조건으로 부동산을 줬는데, 아들이 제대로 부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실제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했다고 주장하면서 집을 돌려달라고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원고는 피고의 아버지로, 2003년 12월 23일 부자가 한집에 동거하며 아들이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는 것을 조건으로 아들인 피고에게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을 넘긴다는 내용의 증여계약을 체결했다. 아들은 부모와 동거하면서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고 불이행으로 인한 계약해제 등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않고 즉시 원상회복의무를 이행하다는 내용의 ‘수증자 부담사항 이행각서’를 아버지에게 작성해줬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부모는 주택 2층, 아들은 1층에 거주했는데 결국 송사가 벌어진 것이다.
하급심 판단은 원고 측 승이었다. 이 사건의 증여계약은 피고가 부모인 원고와 원고의 아내를 충실히 부양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민법 제561조가 정한 ‘부담부 증여’에 해당하는데, 피고가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지 않았기에 원고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법 제974조에 따라 아들은 당연히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의 증여계약을 별도로 체결하면서 충실한 부양을 조건으로 한 이유는 아들에게 민법에서 정한 일반적인 정도를 넘어선 부양을 원한 것이기에 약속이 꼭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아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부모가 노령에 병환으로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아들은 부모에게 일정액의 돈을 준 것 외에 한집에서 식사도 같이 안 하는 등 별다른 부양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고, 더욱이 부양 방법에 관해 자신의 견해가 관철되지 않자 원고에게 패륜적인 말과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효도의 문제는 도덕에 관한 것일 뿐, 법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과거에는 부모 자식 간 계약서를 쓰는 것 자체가 낯설고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하물며 부모가 조건을 달아 재산을 넘겨주는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주위에서 쉽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권리주체이기에 얼마든지 계약을 체결하고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요즘 결혼하는 부부 중에는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가져온 재산을 지키는 것은 물론, 생활비나 가사를 공동부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이룬 후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직은 거부감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이혼하고 재혼하는 부부가 많아지면서 그 유용성과 효율성을 살펴 미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부모들 사이에 “재산을 자녀들에게 미리 다 나눠주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어떻게든 재산을 지니고 있어야 향후 자신의 이익을 바라고 한 번이라도 부모를 더 찾는다”는 말이 회자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불변의 도리일 것 같은 효도조차 이해관계로 변질돼가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하물며 시위 현장에서 마주치는 ‘어버이’와 ‘엄마’의 모습은 또 어떤가. 여러모로 마음이 쓸쓸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