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년 말, 외교안보 분야 전·현직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의 송년회 자리가 이어졌다. 대화의 주된 화제는 인사 문제, 어김없이 등장하는 양념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었다. 누구는 3인방 중 한 사람과 가까워 승승장구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중 또 다른 인물과 대학시절 맺은 인연을 발판 삼아 승진 이동할 것이라는 식의 설왕설래. 어제 모임과 오늘 모임이 다르지 않은 데자뷔의 연속이다.
#2 ‘진실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국회 주변에서는 과연 누가 이러한 메시지를 기획하고 있는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 안팎에서 지목하는 인물은 3인방 중 한 사람인 정호성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이 임기 초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박 대통령 명의로 공개되는 연설문과 담화문은 반드시 정 비서관의 검토를 거치게 돼 있고, 이를 대통령 본인이 직접 자기 언어로 만드는 것이 3년간 일관된 프로세스였다는 이야기다.
#3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자신이 물러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요 이슈로 떠오른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해당 부처에 고강도 조직 개편을 주문했고, 그에 따라 ‘그림’을 그려서 보고했으나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경질 사유는 따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문제가 진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는 설명. 흥미로운 부분은 이 과정을 진행한 인물이 해당 분야 수석보좌관이 아니라 이재만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었다는 회고다. 조직 개편을 주문한 쪽도, 제출받은 쪽도 모두 이 비서관이었고 정작 수석보좌관과는 제대로 상의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단연 정호성 비서관이다. 청와대 부속실은 역대 정부 모두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문고리’를 쥔 부서였다. 조직과 인사 문제는 이재만 비서관이 맡고 있다는 게 정설. 총무비서관은 본래 청와대 안살림을 챙기는 자리지만 그의 소임은 그 정도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핵심 부처 개편 문제 등에 관한 ‘VIP 지시’가 이 비서관을 통해 전달됐다는 증언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 정부 출범 초기 제2부속비서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했던 안봉근 비서관 정도만이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홍보를 맡으면서 물리적 거리가 다소 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 사람이 하는 일이 10여 년 전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을 보좌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좌진 직급 순으로 따지자면 2012년 대통령선거 직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춘상 보좌관을 선임으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순이었다. 그러나 이춘상 보좌관이 전체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고, 보고나 지시 역시 주로 의원 본인과 진행했다는 것. 이때의 4인은 상하관계라기보다 의원 중심의 동심원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당시 의원실에서 이춘상 보좌관은 주로 국방위원회 등 상임위원회 업무를 담당했고, 이재만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당대표 업무를 포함해 전반적인 정책 문제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호성 비서관은 정무 판단과 메시지 관리, 안봉근 비서관은 의원을 수행하며 일정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외에 의원실에서 비서 업무를 담당했던 이들 중 일부가 지금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들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정치권 인사들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서도 박한 평가를 듣기 쉽지 않다. 여의도 시절 가장 평판이 좋았던 인물은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이다. 누구에게나 깍듯이 대하는 점잖은 성격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볼 수 없었다는 것. 이재만 비서관은 깐깐한 완벽주의 성격, 정호성 비서관은 냉정하리만큼 분석적인 스타일이었다는 회고가 주로 나온다. 다혈질 기질이 있었다는 안봉근 비서관이 예외적으로 느껴질 정도. 한 여의도 인사의 촌평이다.
“참모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신선하고 날카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해 주군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스타일과, 후보가 방향을 제시하면 오로지 그에 맞춰 전략·전술만 구성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지켜본 3인방은 철저히 후자 쪽이고, 그러한 기능에 특화된 이들이다. 윗분의 뜻을 관철하고 집행하는 차원에서라면 A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독창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함께 일할 수 있었다고 본다.”
2012년 대선 과정의 사례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렌즈 가운데 하나다. 이 시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과 관련해 캠프에서 진행된 토론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는 이를 되돌리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최종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국방 분야 핵심 참모가 모인 회의에 대해, 한 참석자는 “수십 년 경력의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와중에, 배석자로 참여했던 3인방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고 회고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3년간 시간을 보낸 지금은 이러한 기류가 한층 강화됐으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면 이들 세 사람과 개인적인 인연이 깊은 인사들은 “차라리 논의가 마무리된 뒤 따로 의견을 개진할지언정,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꺼내놓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안보 분야만 보자면 세상을 떠난 이춘상 보좌관이 국방위원회 업무를 오래 담당해 정책 역량이 뛰어났을 뿐, 지금의 3인방은 거리가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 박 대통령 본인이 이들의 정책적 관여를 놔둘 스타일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기억해둘 것은 2016년 현재 정부 각 부처에서 대통령에게 제출하는 정책 보고서가 대부분 정호성 비서관이 담당하는 부속실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외곽 자문그룹이나 외부조직의 비공식 의견도 같은 경로로 제출된다는 것 역시 전직 인사 대부분이 인정하는 바다. 요컨대 이들 측근 그룹이 보고와 지침이 오르내리는 길목에 서 있다는 뜻. 또 다른 박근혜 정부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 친견용으로 작성되는 보고서가 정부 전체로 따지면 하루 50~100개다. 분량은 대부분 A4 1~2매로 간략하지만 한 줄 한 줄 복잡한 함의가 담겨 있음은 불문가지다. 꼼꼼한 성격의 박 대통령은 이를 모두 밑줄 그어가며 숙독하고,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궁금한 부분을 따진다. 관저에서 밤새도록 보고서를 읽는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 읽을 수 있는 보고서 수는 한정적이고, 무엇을 먼저 읽고 결정할 것인지를 누군가 판단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현재 3인방이 맡고 있는 임무라는 점에 청와대와 정부 안팎에 이견이 없다. 제출 시점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무실이나 관저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후와 비중을 판단해 순서를 정하는 임무가 ‘문고리’의 핵심 기능이라는 뜻이다. 앞서 전직 관계자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주제의 경우 단일 사안이라 해도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시각의 보고서가 올라온다. 경합하는 의견을 대통령 본인이 모두 숙지해 판단을 내리는 정부는 없다. 참모진이 일차적으로 이를 종합해 쟁점을 정리하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보좌진의 정책적 견해나 관점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2012년 대선에 관여했던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선거 과정에서 3인방이 깊이 관여 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이나 캠프에서 ‘이러저러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선거는 후보가 제시한 방향과 원칙대로 치른다. 당 의견에 후보를 맞출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 게 주로 이들의 몫이었다는 것. 박근혜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들은 이러한 행동 패턴이 집권 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인사든 정책이든, 대통령이 뜻한 바를 관철하는 일이야말로 3인방이 자임하는 핵심 임무였다는 뜻이다. 이전 정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인사나 정책결정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이슈다. 제아무리 공정하려 애써도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기 마련이다. 대통령 본인에게 거부당했다는 걸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중간의 누군가가 ‘장난’을 쳤다는 불만을 품게 되고, 언젠가 이를 꺼내 들어 공격 소재로 삼으려 벼른다. 정권이 바뀌면 실제로 잘못이 있든 없든 전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피해가기 쉽지 않다.”
국회 주변에서는 3인방을 둘러싼 시중의 설왕설래가 수면 위로 떠오를 시점으로 총선 이후 7~8월을 꼽는다. 공천과 선거가 마무리돼 여당이 더는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현직 정부와 선을 그어가며 독자적 공간을 차지하려는 이들이 나타나리라는 것. 박근혜 정부의 경우 이들이 꺼내 흔들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이른바 ‘3인방 문제’라는 데 대해서도 이견을 찾기 어렵다. 2016년 한 해, 3인방이 여전히 뜨거운 이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2 ‘진실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논란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국회 주변에서는 과연 누가 이러한 메시지를 기획하고 있는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 안팎에서 지목하는 인물은 3인방 중 한 사람인 정호성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이 임기 초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박 대통령 명의로 공개되는 연설문과 담화문은 반드시 정 비서관의 검토를 거치게 돼 있고, 이를 대통령 본인이 직접 자기 언어로 만드는 것이 3년간 일관된 프로세스였다는 이야기다.
#3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자신이 물러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요 이슈로 떠오른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가 해당 부처에 고강도 조직 개편을 주문했고, 그에 따라 ‘그림’을 그려서 보고했으나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경질 사유는 따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문제가 진짜 이유였다고 생각한다는 설명. 흥미로운 부분은 이 과정을 진행한 인물이 해당 분야 수석보좌관이 아니라 이재만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었다는 회고다. 조직 개편을 주문한 쪽도, 제출받은 쪽도 모두 이 비서관이었고 정작 수석보좌관과는 제대로 상의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통령비서실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박근혜 대통령을 의원 시절부터 보좌해온 이들 3인의 이름은 여전히 관가 뒷이야기의 핵심 소재다.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기간 급부상했다 이제는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지만, 분야와 부처를 가릴 것 없이 당국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늘 이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비서진일 따름’이라고 선을 그어도 ‘청와대만 바라보고 사는’ 당국자들의 시선은 요지부동. 지난해 가을 이후 국회 정보위원회를 달궜던 ‘청와대의 국정원 인사 개입 파동’이 그 대표적 사례다(‘주간동아’ 1016호 ‘국정원장은 3인방과 전쟁 중?’ 기사 참조).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단연 정호성 비서관이다. 청와대 부속실은 역대 정부 모두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문고리’를 쥔 부서였다. 조직과 인사 문제는 이재만 비서관이 맡고 있다는 게 정설. 총무비서관은 본래 청와대 안살림을 챙기는 자리지만 그의 소임은 그 정도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핵심 부처 개편 문제 등에 관한 ‘VIP 지시’가 이 비서관을 통해 전달됐다는 증언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 정부 출범 초기 제2부속비서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했던 안봉근 비서관 정도만이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홍보를 맡으면서 물리적 거리가 다소 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 사람이 하는 일이 10여 년 전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을 보좌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좌진 직급 순으로 따지자면 2012년 대통령선거 직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춘상 보좌관을 선임으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순이었다. 그러나 이춘상 보좌관이 전체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고, 보고나 지시 역시 주로 의원 본인과 진행했다는 것. 이때의 4인은 상하관계라기보다 의원 중심의 동심원에 가까웠다는 이야기다.
당시 의원실에서 이춘상 보좌관은 주로 국방위원회 등 상임위원회 업무를 담당했고, 이재만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당대표 업무를 포함해 전반적인 정책 문제를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호성 비서관은 정무 판단과 메시지 관리, 안봉근 비서관은 의원을 수행하며 일정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외에 의원실에서 비서 업무를 담당했던 이들 중 일부가 지금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들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정치권 인사들의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에게서도 박한 평가를 듣기 쉽지 않다. 여의도 시절 가장 평판이 좋았던 인물은 사망한 이춘상 보좌관이다. 누구에게나 깍듯이 대하는 점잖은 성격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볼 수 없었다는 것. 이재만 비서관은 깐깐한 완벽주의 성격, 정호성 비서관은 냉정하리만큼 분석적인 스타일이었다는 회고가 주로 나온다. 다혈질 기질이 있었다는 안봉근 비서관이 예외적으로 느껴질 정도. 한 여의도 인사의 촌평이다.
“참모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신선하고 날카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해 주군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스타일과, 후보가 방향을 제시하면 오로지 그에 맞춰 전략·전술만 구성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지켜본 3인방은 철저히 후자 쪽이고, 그러한 기능에 특화된 이들이다. 윗분의 뜻을 관철하고 집행하는 차원에서라면 A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독창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함께 일할 수 있었다고 본다.”
어느 보고서가 먼저 올라갈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이명박 정부 청와대 핵심에서 일했던 한 전직 인사는 “최고권력자의 측근 그룹이 위험한 경우는 오히려 자신의 어젠다를 관철하려고 할 때”라며 “3인방의 활동 폭이 지금도 기능적 보좌에만 머물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어느 정부든 ‘문고리’가 권력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게이트키핑(Gate Keeping)에 있고, 그 과정에서 측근 그룹이 자신들의 생각을 얼마나 투영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2012년 대선 과정의 사례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렌즈 가운데 하나다. 이 시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과 관련해 캠프에서 진행된 토론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는 이를 되돌리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최종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 국방 분야 핵심 참모가 모인 회의에 대해, 한 참석자는 “수십 년 경력의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와중에, 배석자로 참여했던 3인방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고 회고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3년간 시간을 보낸 지금은 이러한 기류가 한층 강화됐으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반면 이들 세 사람과 개인적인 인연이 깊은 인사들은 “차라리 논의가 마무리된 뒤 따로 의견을 개진할지언정,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꺼내놓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안보 분야만 보자면 세상을 떠난 이춘상 보좌관이 국방위원회 업무를 오래 담당해 정책 역량이 뛰어났을 뿐, 지금의 3인방은 거리가 있었다는 것. 무엇보다 박 대통령 본인이 이들의 정책적 관여를 놔둘 스타일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기억해둘 것은 2016년 현재 정부 각 부처에서 대통령에게 제출하는 정책 보고서가 대부분 정호성 비서관이 담당하는 부속실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외곽 자문그룹이나 외부조직의 비공식 의견도 같은 경로로 제출된다는 것 역시 전직 인사 대부분이 인정하는 바다. 요컨대 이들 측근 그룹이 보고와 지침이 오르내리는 길목에 서 있다는 뜻. 또 다른 박근혜 정부 전직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 친견용으로 작성되는 보고서가 정부 전체로 따지면 하루 50~100개다. 분량은 대부분 A4 1~2매로 간략하지만 한 줄 한 줄 복잡한 함의가 담겨 있음은 불문가지다. 꼼꼼한 성격의 박 대통령은 이를 모두 밑줄 그어가며 숙독하고,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궁금한 부분을 따진다. 관저에서 밤새도록 보고서를 읽는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 읽을 수 있는 보고서 수는 한정적이고, 무엇을 먼저 읽고 결정할 것인지를 누군가 판단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현재 3인방이 맡고 있는 임무라는 점에 청와대와 정부 안팎에 이견이 없다. 제출 시점에 따라 기계적으로 집무실이나 관저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선후와 비중을 판단해 순서를 정하는 임무가 ‘문고리’의 핵심 기능이라는 뜻이다. 앞서 전직 관계자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주제의 경우 단일 사안이라 해도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시각의 보고서가 올라온다. 경합하는 의견을 대통령 본인이 모두 숙지해 판단을 내리는 정부는 없다. 참모진이 일차적으로 이를 종합해 쟁점을 정리하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보좌진의 정책적 견해나 관점이 부지불식간에 반영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아무리 공정하려 애써도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실무 부처나 장관의 고유한 판단보다 청와대의 직접 지침과 지시가 압도적인 무게를 갖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만기친람(萬機親覽)형 국정운영’이 강화될수록 참모진의 구실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실무 부처 당국자는 “상가(喪家)에 조화를 보내는 것조차 대통령의 결재를 받을 정도라면, 제아무리 뱃심 좋은 장관이라도 독자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의 관심 방향에 정통한 측근 보좌진과 상시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장관들에게 중요해진 이유”라고 말했다.2012년 대선에 관여했던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선거 과정에서 3인방이 깊이 관여 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이나 캠프에서 ‘이러저러한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선거는 후보가 제시한 방향과 원칙대로 치른다. 당 의견에 후보를 맞출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 게 주로 이들의 몫이었다는 것. 박근혜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들은 이러한 행동 패턴이 집권 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인사든 정책이든, 대통령이 뜻한 바를 관철하는 일이야말로 3인방이 자임하는 핵심 임무였다는 뜻이다. 이전 정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인사나 정책결정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이슈다. 제아무리 공정하려 애써도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기 마련이다. 대통령 본인에게 거부당했다는 걸 수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중간의 누군가가 ‘장난’을 쳤다는 불만을 품게 되고, 언젠가 이를 꺼내 들어 공격 소재로 삼으려 벼른다. 정권이 바뀌면 실제로 잘못이 있든 없든 전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피해가기 쉽지 않다.”
국회 주변에서는 3인방을 둘러싼 시중의 설왕설래가 수면 위로 떠오를 시점으로 총선 이후 7~8월을 꼽는다. 공천과 선거가 마무리돼 여당이 더는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현직 정부와 선을 그어가며 독자적 공간을 차지하려는 이들이 나타나리라는 것. 박근혜 정부의 경우 이들이 꺼내 흔들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가 이른바 ‘3인방 문제’라는 데 대해서도 이견을 찾기 어렵다. 2016년 한 해, 3인방이 여전히 뜨거운 이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