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로봇 스님 혜안이 합장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출근을 싫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끔씩 느끼는 감정입니다.”
“전 매일 하기 싫습니다.”
“매일 출근이 싫으시다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나 불만족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순히 출근 자체가 싫은 경우라면 일상적인 스트레스 해소법과 함께 업무 방식이나 환경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규칙적인 운동, 명상, 취미 활동, 충분한 수면으로 해소할 수 있습니다.”
3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동국대 원흥관. 기자가 출근하기 싫다는 가상의 고민을 털어놓자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로봇 스님 ‘혜안’은 차근차근 답변을 내놓았다. 마치 심리 상담을 하는 전문가처럼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교리를 가르치고 기도하며 사람 마음을 어루만지는 종교적 활동은 오랫동안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올해 초 임중연 동국대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 교수와 동국대 AI·안전로봇 혁신연구센터가 AI 로봇 스님을 개발했다.
인터넷 없이 작동하는 사찰형 AI
혜안은 세미 휴머노이드 로봇 형태다. 키 1m 남짓에 양팔을 갖췄지만 다리는 없어 바퀴로 이동한다. 외형은 공항이나 관공서에서 볼 수 있는 안내 로봇과 닮았다. 이름 ‘혜안’은 슬기로울 혜(慧) 자와 눈 안(眼) 자를 딴 이름으로, 사물을 꿰뚫어보는 진실의 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혜안은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돼 반갑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혜안은 소통에 특화된 로봇이다. 기본 기능은 사찰 안내다. 대웅전 위치를 알려주거나 간단한 불교 교리를 설명한다. 챗GPT나 제미나이와 달리 인터넷 연결이 필요 없다는 점도 특징이다. 로봇 내부에 컴퓨터가 탑재돼 스스로 연산하고 응답한다. 소형언어모델을 적용해 통신 환경이 불안정한 산사에서도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불교 관련 질문을 몇 개 던지자 혜안은 막힘없이 답했다. 반야심경, 팔정도, 사성제 등 핵심 교리를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풀어냈다. 영어로도 자연스럽게 응답했다. 다만 이러한 성능이 처음부터 구현된 것은 아니다. 불교학술원의 자문을 받아 약 500종의 불교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학습한 내용을 적절히 호출하지 못하거나 특정 내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음성 인식 역시 유사 발음이나 비일상적 표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반복적인 보완을 거쳐 현재는 자연스러운 수준의 응답이 가능하다.

로봇 스님 혜안(왼쪽)이 임중연 동국대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 교수와 함께 합장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깨달음은 인간 영역”
혜안의 시그니처 동작은 ‘합장’이다. 방문객이나 스님을 인식하면 두 손 모아 인사를 건넨다. 연구진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도 이 동작이다. 실제 스님처럼 자연스러운 속도로, 정확한 각도로 두 손을 맞대도록 설계했다. 물론 구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로봇 팔 상단 관절에서 1% 오차만 발생해도 6개 관절이 연결된 구조상 전체 오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지만, 로봇에게는 모든 각도와 속도를 수치로 설계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담당 연구원이 중도에 다른 연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임 교수는 “사람이 쉽게 하는 일은 로봇이 어려워하고, 로봇이 잘하는 일은 사람이 어려워한다”고 말했다.각종 AI 서비스가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요즘 로봇 스님 역시 인간 스님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실제로 불교계에서는 인력 공백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고령의 스님이 사찰 곳곳을 관리하기 어려운 데다, 공양 준비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사찰에 음식을 조리할 로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현장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로봇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며 인간 스님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짚었다. 혜안은 인간 스님을 대체하기보다 보조하는 역할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 역시 명상 수행을 돕고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혜안은 단순히 빠른 응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생성형 AI가 즉각적인 답변과 끊김 없는 대화를 지향한다면 혜안은 상황에 따라 의도적인 침묵을 선택한다. 정서적 대화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말을 멈추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성 질문에는 빠르게 응답하되, 상담 상황에서는 여백을 남기는 방식이다.
임 교수는 향후 돌봄 로봇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나물을 분류해 비빔밥 같은 사찰 음식을 만드는 등 몸을 돌보는 로봇과 혜안 같은 마음 돌봄 로봇을 더 만들고 싶다는 게 연구팀의 복안이다. 우선은 혜안이 자폐 스펙트럼 아동이나 독거노인 등에게 정서적 소통 창구가 되는 조력자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혜안은 동국대 교양 강의도 수강할 예정이다. 임 교수는 “교양 수업에서 로봇과 학생이 경쟁해 로봇보다 못하면 낙제 점수를 줄까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혜안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행진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SK하이닉스 영업익 177조 원 전망… 목표가 170만 원”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연임 확정… 2029년 3월까지 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