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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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코드 ‘민주주의’… 시민 마음 하나로 묶은 탄핵 집회 '선결제'

익명 기부자들 “생업으로 함께 못하지만 작은 힘 보태고 싶어”… 미국서도 ‘선결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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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4-12-15 16: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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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커피숍에 선결제 상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경진 기자]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커피숍에 선결제 상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경진 기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주문 코드는요?”

    “민주주의요.”

    12월 14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손님과 커피숍 직원이 나눈 대화다. 커피숍 직원은 손님에게 음료 가격을 안내하는 대신 ‘주문 코드’를 물었다. 손님은 “민주주의”라고 답하며 돈을 내지 않고 아메리카노를 받아 갔다. 익명의 한 시민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음료를 내어달라’며 해당 커피숍에 아메리카노 100잔을 미리 결제해 뒀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열린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는 과거와 달리 익명의 기부자가 참가자들을 위해 집회 장소 인근 가게의 음료와 음식 등을 ‘선결제’하는 문화가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가게에 일정 금액을 먼저 결제하고 이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이 게시글을 본 집회 참여자들이 선결제된 가게를 찾아 음료 등을 무료로 받는 식이다. 선결제는 집회 참여 인원이 가장 많았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뿐만 아니라 대전 은하수네거리 일대, 대구 1호선 중앙로역 일대, 부산 1호선 서면역 일대, 광주 금남로 일대 등 윤 대통령 탄핵 집회가 열린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분식집에 붙어 있는 선결제 안내문. [임경진 기자]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분식집에 붙어 있는 선결제 안내문. [임경진 기자]

    선결제 상품의 종류와 금액도 다양했다. 김밥 500줄, 파이 1400개, 순댓국 100그릇 등 음식 선결제부터 피로회복제와 종합감기약 등 비처방의약품 선결제까지 있었다. 한 시민은 서울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 커피숍에서 500만 원어치 음료를 선결제한 영수증을 SNS에 인증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는 전국의 선결제 정보를 한 익명의 시민이 실시간으로 모아 정리한 ‘선결제 지도’에는 14일 오전 10시 45분 기준으로 총 562건의 선결제 주문이 등록돼 있었다. 상품이 모두 소진돼 선결제 지도에서 빠진 주문까지 포함하면 총 선결제 주문 건수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결제에 나선 시민들은 선결제에 동참한 이유에 대해 “집회에 직접 나가지는 못하지만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 여의도 인근 커피숍에서 음료 100잔을 선결제한 20대 여성 성모 씨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3번 이상 참여했는데도 생업으로 인해 집회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국회 앞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빚지는 마음이었다”며 “생업을 제치고 집회에 나간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고교생 이모 씨는 “응원봉을 들고 콘서트를 가야 할 또래 친구들이 추운 날씨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고맙고 미안했다”며 “멀리서나마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음료 25잔을 선결제했다”고 전했다.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분식집 앞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선결제 김밥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임경진 기자]

    12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분식집 앞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선결제 김밥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임경진 기자]

    ‌집회 현장에서 선결제된 음식을 무료로 먹은 시민들은 감사를 표했다. 여의도 인근 커피숍에서 선결제된 차를 마시고 있던 송모 씨(27·여)는 “생판 모르는 사람 덕분에 따뜻한 음료를 들고 집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며 “요즘 사회가 각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선결제에 동참하는 것을 보며 한국인의 정을 다시 깨우치게 됐다”고 말했다. 선결제된 김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던 이모 씨(74·여)는 “집회에 나왔다가 김밥집에 줄을 선 사람에게 물어보니 김밥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고 알려 줬다”며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사주다니, 하나가 된 국민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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