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선임된 임지훈 신임대표는 나이로만 보면 그야말로 ‘신예’다. 삼성그룹 같은 대기업이라면 갓 과장이 됐을 나이. 그런 젊은 대표에게 다음카카오의 키를 쥐게 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의 결정을 업계는 ‘승부수’ 또는 ‘도박’으로 해석한다. 회사가 밝힌 대로 최세훈-이석우 공동대표의 추천으로 발탁한 인사라지만, 도전에 주저함이 없는 김 의장의 과감한 결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그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김 의장은 왜 임 대표에게 승부를 걸었을까. 이에 대한 해석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김 의장의 창업 스토리와 임 대표의 삶의 궤적, 다음카카오의 공식 답변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정리된다. 미래 사업에 대한 통찰력, 속도감 있는 추진력이 그것이다.
임 대표,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의 DNA 갖춰
김 의장은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성공한 벤처기업인이다. 미래에 통할 독창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성공시키는 DNA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인사는 물론, 사업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임 대표는 김 의장의 DNA를 갖고 있다. 임 대표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NHN 기획실,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를 거쳐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을 지낸 뒤 2012년부터 케이큐브벤처스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케이큐브벤처스는 김 의장이 지분 100%를 가졌던 회사로, 3월 다음카카오가 그의 지분 100%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임 대표는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사업성 부문의 안목이 탁월하고 추진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수석심사역으로, 또 케이큐브벤처스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다수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적절한 투자로 기업을 키웠다.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를 발굴하고 투자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 밖에 핀콘, 레드사하라 스튜디오, 프로그램스, 두나무 등도 임 대표의 안목이 적중한 투자처다.
김 의장은 지금 다음카카오에 필요한 건 서비스의 가능성을 빠르게 판단하는 통찰력과 이를 제대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라고 봤고, 그 적임자가 임 대표였던 셈이다. 다음카카오 측도 “임지훈 대표는 시장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라며 “기존 공동대표의 능력도 크지만, 모바일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젊은 층으로의 세대교체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초창기 스타트업과 달리 다음카카오 정도의 회사라면 각종 부정적인 이슈를 적절하게 관리할 관록 또한 필요한데, 아직 젊은 임 대표가 사내외적 이슈와 온갖 갈등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게 대표적인 우려다.

실제로 다음카카오는 각종 사회적 이슈에 휘말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사안이 많다. 감청 문제를 놓고 수사기관과 맞선 뒤 불편해진 대정부 관계가 대표적이고, 카카오택시나 대리운전 사업의 경우 기득권 기업과 마찰이 예상된다. 내부적으로는 합병 후 아직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화학적 결합을 완성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 있다. 모두 일방통행보다 배려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인데 과연 임 대표가 경영이 아닌, 인재관리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관록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업계 한 전문가는 “네이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신규 서비스로 돈 버는 일 자체가 아니라, 성장할수록 커지는 외부 견제세력을 설득하는 문제였다”며 “다음카카오 또한 합병 이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터넷 전문가도 “사회와 갈등하는 문제를 풀려면 관록 있는 다양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야 하는데, 35세 젊은 CEO가 사업 자체 외에 각종 사회적 이슈까지 고려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임 대표는 9월 23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식대표로 선임될 예정이다. 최세훈-이석우 공동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분간 회사에 남아 각각 대외업무 및 재무관리업무를 맡기로 했다. 하지만 임 대표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 기존 공동대표의 거취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음카카오는 임 대표 체제 아래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출시에 더욱 속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10월에는 누적 호출 수 1200만을 돌파한 카카오택시에 ‘고급택시’ 서비스를 추가하고 본격적인 수익화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 밖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을 연결하는 종합 모바일 라이프 플랫폼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할 계획이다. 수사기관 감청 불응으로 미운털이 박힌 다음카카오가 반항적 이미지를 벗고 임 대표 내정을 계기로 젊고 빠른 색깔을 가진 기업으로 방향을 정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