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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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표정과 목소리에까지 반응하는 말 울음소리

[이종림의 사이언스 랩] 5500년 전부터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감정 변화 인지한 결과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6-03-11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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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울음소리는 저음과 고음이 동시에 겹친 ‘이중 발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챗GPT 생성 이미지·이종림 제공 

    말 울음소리는 저음과 고음이 동시에 겹친 ‘이중 발성’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챗GPT 생성 이미지·이종림 제공 

    ‘말의 해’를 맞아 말의 사회적 지능을 다시 보게 만드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말이 낮은 음과 높은 음을 동시에 내는 '이중 발성(biphonation)'을 사용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말 울음소리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개체 특성과 감정 상태를 담은 사회적 신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의 의사소통은 소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동작과 얼굴 표정, 목소리 톤, 체취 등 감각적인 단서를 종합해 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이 다양한 관찰로 밝혀지고 있다.

    성대 진동과 ‘후두 휘파람’의 조합

    인류가 말을 길들이기 시작한 건 약 5500년 전이며, 오늘날 가축 말 주류 계통이 널리 확산한 시점은 약 42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말은 이동 수단이자 가축으로서 오랜 세월 인간 곁을 지켰지만, 정작 이들이 어떻게 고음의 울음소리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체구가 큰 동물일수록 낮은 소리를 내는 데 비해, 말은 큰 몸집에서 날카로운 고음을 낸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대와 오스트리아, 프랑스 공동 연구진은 이 ‘예외적인 고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험으로 추적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공동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엘로디 플로리안 만델브리퍼 코펜하겐대 생물학과 부교수는 10여 년 전 말 울음소리 스펙트로그램(소리의 주파수 성분을 시각화한 그래프)을 분석하다가 하나의 울음소리에서 고주파와 저주파가 동시에 겹쳐 나타나는 ‘두 겹의 소리’ 패턴을 포착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그 두 가지 소리에 대한 의문을 명확히 풀고자 말의 후두를 내시경으로 관찰했다. 

    낮은 음이 날 때는 성대가 규칙적으로 진동했지만, 높은 음이 날 때는 성대 진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성대 위쪽 구조가 안쪽으로 모이면서 공기 통로가 좁아졌다. 이어 적출한 후두 조직에 공기를 흘려보내 발성을 재현하자, 고음은 후두의 좁은 틈을 지나는 공기 흐름이 만든 공기역학적 ‘후두 휘파람(laryngeal whistle)’으로 생성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여기에 공기 대신 음속이 더 빠른 헬륨을 후두 조직에 흘려보내자, 저주파 대역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고주파 대역은 뚜렷하게 높아졌다. 이는 말이 내는 고음이 공기역학적 ‘휘파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결국 말 울음소리는 성대 진동을 통한 저음과 후두 휘파람에 의한 고음이 동시에 겹친 이중 발성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도 교감하는 말

    말의 발성 원리가 밝혀졌다고 해서 울음소리의 ‘의미’까지 해석된 것은 아니다. 말은 왜 굳이 이중 발성으로 울고, 울음소리의 미세한 결 차이는 어떤 사회적 상황이나 감정 상태를 담고 있을까. 최근 말의 행동·인지 연구는 말이 인간 신호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맥락과 감정 신호를 함께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먼저 말은 사람의 제스처를 따를 때 사회적 단서까지 함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실험에서는 말 앞에 먹이통 2개를 놓고 한쪽에만 먹이를 숨긴 뒤 2명이 각각 다른 통을 가리키게 했다. 이때 한 사람은 먹이를 숨기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고, 다른 사람은 그 순간 등을 돌려 시야가 차단된 상태였다. 이후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 다른 통을 가리키자, 말은 먹이 숨기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의 신호를 더 자주 따랐다. 연구진은 말이 사람의 시선과 주의 상태 같은 관찰 단서를 본 뒤 누가 정보를 알고 있는지 가늠해 더 신뢰할 만한 신호를 따랐을 개연성을 제시했다.

    말이 사람 감정을 파악하는 방식은 복합적이다. 사람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에 담긴 정서 정보가 서로 어긋나면 말의 시선 방향과 긴장 행동, 생리 반응이 달라지는 ‘기대 위반’이 나타난다. 즉 표정과 목소리가 긍정 또는 부정의 한 가지 방향으로 맞아떨어지지 않고 불일치할 때 말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말이 표정과 목소리를 함께 고려해 반응을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후각 단서까지 더하면 말이 사람의 감정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이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무서운 영상과 즐거운 영상을 각각 보여준 뒤  체취를 채집해 말에게 노출했다. 그 결과 공포 조건의 체취에서 놀람 반응과 심박 지표 변화가 나타났고, 사람과의 신체 접촉이 줄어드는 경향도 관찰됐다.

    말의 인지 능력은 문제해결 상황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낯선 먹이 장치를 제시했을 때 일부 말은 시행착오 끝에 먹이를 꺼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혁신적 문제해결’ 행동을 보였다. 개체에 따라 접근 전략이 달랐고, 성공 여부와 해결 시간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황에 따라 말의 반응과 전략이 갈린다는 점에서 한 가지 패턴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회적 특성은 사람과 함께 살아온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고대 DNA를 바탕으로 한 유전체 연구들은 말이 길들여진 뒤 이동에 유리한 체형뿐 아니라, 사람 곁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기질에도 선택 압력이 작용했을 개연성을 시사한다. 즉 오늘날 사람을 잘 따르는 말은 인간 곁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그런 성향이 반복적으로 선택된 결과일 수 있다.

    해당 연구를 이끈 루도비크 올란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툴루즈대 분자고고학 교수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고대 말 유전체를 시대별로 살펴보면 과거엔 드물던 특정 유전자 변이가 어느 시점부터 빠르게 퍼져 해당 변이를 가진 개체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구간이 보인다”며 “사육 환경에서 사람을 덜 두려워하고 덜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향이 관리와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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