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이란 최고지도자로 거론되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차남이다. X(옛 트위터) 캡처
혁명수비대와 유대 관계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전문가 회의가 화상으로 최고지도자 선출을 논의 중이고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도, 이란 정권이 최종 결과를 정확히 언제 발표할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파르스 통신은 전문가 회의 최종 대면회의가 강화된 보안 조치에 따라 하메네이 장례식과 시신 매장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메네이 시신은 그의 고향이자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에 묻힐 예정이다.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 시신 매장에 앞서 수도 테헤란에서 대규모 영결식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라흐바르를 선출하는 데는 통상 몇 달이 걸리지만 이번에는 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특수한 상황이라 후계자 선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 선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89년 6월 3일 초대 라흐바르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이튿날 곧바로 전문가 회의를 열어 당시 대통령이던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한 전례가 있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난 직후 안보 불안이 고조된 상황이라 최고지도자 선출을 서둘렀던 것이다.
모즈타바는 숨진 부친과 마찬가지로 이란 강경 보수파를 대변해왔다. 특히 혁명수비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서방의 이란 전문가들은 차기 라흐바르가 되려면 혁명수비대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이나 국방부를 거치는 정규군과 달리 라흐바르로부터 직접 지휘∙통제를 받는 혁명수비대는 그 규모가 15만~19만 명에 달하는 정예 군대이며 휘하에 100만 명이나 되는 바지시 민병대까지 거느리고 있다. 게다가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의 70~80%를 좌지우지해왔다.
하메네이의 자녀 6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는 현재 이란 종교 중심지인 콤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찌감치 혁명수비대에 들어가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경험으로 혁명수비대 최고위급 장성들과 친분을 쌓았고. 이후 콤에서 이란 고위 성직자들로부터 신학을 배우며 이들과도 강한 유대를 맺었다.
“그늘에 가려진 주연 배우”
2000년대 초 최고지도자실에서 일한 모즈타바는 아버지를 대신해 ‘그림자 실세’로 활동했다. 특히 2005년 대선에서 혁명수비대 출신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당선하는 데 물밑에서 기여했다. 그는 2009년 대선 때도 아마디네자드의 재선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모즈타바는 혁명수비대와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으며 이란 정계에서 강경 보수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이란 인터내셔널은 “모즈타바가 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의 사실상 지도자이고, 혁명수비대 내부 정보기관의 막대한 임면권을 행사해왔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모즈타바에게 제재 조치를 내리면서 그가 사실상 최고지도자를 대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모즈타바는 2024년 5월 하메네이가 후계자로 낙점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후계자 물망에 오른 바 있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중동과 세계질서 센터’의 알리 파톨라 네자드 소장은 “하메네이는 오랫동안 아들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다”며 “모즈타바는 ‘그늘에 가려진 주연 배우’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모즈타바를 후계자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모즈타바가 후계자가 될 경우 세습 논란이 증폭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흐바르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권력 세습은 이란공화국을 세운 1979년 이슬람 혁명 정신에 위배된다. 이슬람 혁명은 팔레비왕조를 축출하면서 세습통치를 종식했다는 의미가 있는데, 권력을 세습한다면 왕정체제와 다름없게 된다. 하메네이가 왕위를 물려주듯이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할 경우 팔레비왕조의 통치를 불법 군주제라고 비난했던 호메네이의 철학에도 어긋난다. 중동 전문 언론매체 ‘암와즈’의 모하마드 알리 샤바니 분석가는 “최고지도자가 세습된다는 것은 그 체제가 죽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부와 정보기관 등은 그동안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지지하고, 성직자 상당수도 찬성 입장을 보여왔다.
이런 가운데 이란 새 지도자는 하메네이보다 핵무기 개발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향후 신정체제 붕괴에 위협을 느낀 새 지도자가 국민의 반정부시위를 더욱 가혹하게 진압할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인 믹 멀로이 전 국방부 차관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국민의 봉기를 촉구한 것은 신정체제를 수호하려는 새 지도부에게 명백한 실존적 위협이며, 시위가 벌어질 경우 하메네이의 후계자는 이를 이전보다 더욱 잔혹하게 진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하메네이 사망은 이란 국민이 그들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위대한 기회”라면서 이란 국민의 신정체제 전복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란 전문가들은 이란 신정체제가 하메네이 사망 이후 완전히 뒤집히는 시나리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3월 1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정부 지지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를 추모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트럼프 군사·외교 투 트랙 전략
현재 이란에는 대안세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권이 분열된 데다, 야권 지도자는 대부분 수감되거나 가택연금 상태라서 하메네이 유고 상황을 노릴 반정부 세력이 없다. 게다가 이란 국민이 경제난 때문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긴 했어도 이들을 단일대오로 이끌며 조직화할 수 있는 반체제 단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팔레비왕정의 마지막 왕세자였던 레자 팔레비는 신정체제가 무너지면 본인이 권력을 잡겠다는 의지를 비쳤지만 이란에서 정치적 기반은 사실상 전무하다.이란 전문가들은 하메네이가 평소 자신의 순교를 단순한 죽음이나 패배가 아닌, ‘정의의 승리’로 간주해왔다고 지적했다. 아라시 레이시네자드 미국 터프츠대 조교수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순교 정치’라는 제목의 글(2월 24일자)에서 “하메네이에게 항복은 자신의 권력과 신정체제 붕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메네이 사망은 저항의 결과로 재해석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발리 나스르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도 “하메네이는 자신이 순교자가 될 것을 예상했다”며 “하메네이는 새 지도자가 자신의 순교를 통해 신정체제 수호를 더욱 강력하게 내세우면서 미국 공세에 맞설 것으로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새 지도부와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3일 “하메네이만큼 나쁜 인물이 권력을 장악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국민을 위해 이란을 바로잡을 사람이 집권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처럼 기존 정권 구성원 중 미국에 유화적인 인물이 최소한 과도적으로 하메네이를 대체할 최고지도자 자리를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미사일 능력 약화와 주요 지도부 및 군 수뇌부 타격이라는 목표를 상당 부분 달성했다고 판단할 경우 ‘작전 종료’를 선언하거나 이란과의 협상을 거쳐 상호 공격 중단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란이 향후 어떤 권력 체제를 구축하느냐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언급대로 군사작전을 계속하면서 이란 새 지도부와 대화도 고려하는 등 투 트랙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