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한 컨테이너 물류보관 창고에서 일광공영 측이 숨겨놓은 방산 관련 각종 서류를 찾아냈다. 경기 과천시 주암동 국군기무사령부(뒤).
권력은 반드시 비대화를 꿈꾼다
합수단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일반인이 구할 수 없는 군의 2, 3급 비밀문서가 어떻게 이 회장에게 흘러들어갔느냐다. 특히 장성급 인사들의 신원정보와 각종 무기체계 획득 사업 정보,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 내부 동향에 관한 140여 건의 내부 자료는 이 회장과 군의 연결고리를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자료 내용으로 가늠할 때, 역대 정부를 거치는 동안 군 인사에까지 깊숙이 관여해왔다는 이 회장에게 정보를 제공한 당사자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합수단은 자료를 역추적한 결과 5월에 이르러 이 회장에게 돈을 받고 군사기밀 100여 건을 누출한 혐의로 기무사 소속 군무원 변모 씨와 김모 씨를 구속했다. 변씨는 일광공영의 보안을 감독하는 실무자로 2006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거의 10년간 이 회장에게 군 내부 자료를 빼다 준, 이 회장의 수많은 정보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보안을 감독하고 통제해야 할 당사자가 거꾸로 정보를 유출하는 경로가 된 것이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 한 육군 예비역 중장은 필자에게 “합참에서 장성으로 근무할 당시 이규태 회장에게 불리한 정책을 결정했다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장이 군 내부 의사결정 구조뿐 아니라 진급과 보직에 대한 남다른 지식으로 걸림돌이 되는 고위 장교들에게 집요하게 보복을 가했다는 이야기다. 덧붙여 그는 “이 회장이 다음번 인사를 예측하면 거의 들어맞았다”며 군 인사에까지 개입한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국방부 산하기관장 인사까지 간여하는 광폭 행보였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의 정보력은 많은 사람을 줄 세우는 권력이었다. 구속된 기무사 요원이 푼돈이 아쉬워서 그 많은 기밀을 이 회장에게 빼돌린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혹한 진급과 보직 경쟁에 내몰린 군 당국 인사들에게 이 회장은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고 출세의 지름길을 알려주는 구원자였다. 이런 이 회장의 능력이 기무사 요원 포섭까지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전임 기무사령관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연예기획사 대표 자리를 제공하는 식으로 보답했다. 기무사와 이 회장의 유착관계를 의심케 하는 이 일은 단순한 정보 제공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0년 이 회장이 불곰사업에서 횡령·배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Elbit)사가 일광공영과 맺은 무기중개 계약을 해지하자, 이 회장은 대표직을 부하직원 명의로 바꿔 다시 무기중개업체 등록을 신청했다.
당시 기무사는 보안 측정을 통해 일광공영이 자격을 회복하도록 지원했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그해 10월 계약을 해지한 엘빗사에 서신을 보내 ‘일광공영은 방사청 규정에 의해 커미션 에이전트로서 적법한 자격 검토를 거쳐 등록했다’며 ‘우리는 귀사가 에이전트와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해 진행 중인 사업이 계획대로 원만하게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서신이 이후 일광공영이 무기중개업을 계속할 근거로 작용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대 사령관은 무조건 정계 진출?
이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당시 방사청장은 해군 출신 변무근 씨였다. 최근 합수부는 변씨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소식통은 “당시 기무사와 방사청으로 이어지는 국방 무기 획득의 핵심 라인을 이 회장이 이미 짚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여기서도 기무사는 이 회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뜻이다.
비리를 예방하고 보안을 강화해야 할 기무사 관계자들이 왜 유독 이 회장과 일광공영에 유착했을까. 이는 단순히 일부 직원의 일탈행위일 뿐일까. 그러나 이 회장이 전직 기무사령관을 영입하고 장기간에 걸쳐 일광공영이 곤란에 처할 때마다 기무사가 구원자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하급 군무원의 개인 범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비대화하려는 권력의 속성을 지닌 기무사에게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기무사는 권력과 정치를 향해 집요하게 행보를 이어왔다. 2003년 기무사령관을 마친 문두식 중장. 바로 이듬해에 고향인 전라도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후임으로 2005년 사령관을 마친 송영근 중장.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 진영에 합류하더니 비례대표로 당선해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사령관을 마친 김영한 중장. 이 회장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클라라가 소속돼 있던 일광공영 계열 엔터테인먼트업체 폴라리스와 폴라리스엠넷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8년 사령관을 마친 허평환 중장. 2012년 국민행복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고, 총선뿐 아니라 대통령선거 도전까지 선언한 바 있다. 2010년 사령관을 마친 김종태 중장. 현 정권의 텃밭인 경상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 밖에 기무사령부의 고위 장성 출신 상당수는 유수한 방위산업체에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
그간 정치권과 기업에 진출한 기무사 출신 인사들의 약진은 실로 경이적이다. 군 내부에서도 4000명이 넘는 거대조직에 장교들 동향을 관찰하는 기무사의 권위는 무소불위라 할 수 있다. 중장이 사령관인 기무사의 대령급 이상 직위자 수는 대장이 사령관인 육군의 야전사령부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기무사는 보안, 방첩, 일반 정보의 기능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데다 간헐적으로 대통령에게 단독보고를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움켜쥔 존재다.
‘신원조회’라는 명분으로 청와대가 군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 역시 사실상 기무사가 청와대에 제공하는 인사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군 내부 사정에 어두운 정치권력이 군을 장악하고자 하는 조바심에 내몰릴 때, 기무사의 장교 인사자료는 달콤한 유혹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 장교에 대한 음해나 모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군 내부 좌익분자 색출이라는 공안의 논리를 앞세우는 정권 친위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쿠데타 방지’ 의미 잃자 외부로 임무 확장
이렇듯 탄탄한 권력을 기반으로 기무사는 역대 정권의 국방개혁에서도 자유로웠다. 1993년 하나회라는 군 내 사조직을 척결한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본산이던 기무사 개혁에 착수해 장성 수를 대폭 감축했지만, 1년 만에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기무사를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로 통폐합하는 국방개혁안을 마련했지만 조직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무산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기무사 개혁에 착수했으나 재빠른 변신으로 개혁안을 무력화하고 거꾸로 군 사이버사령부 창설안을 입안해 조직 확장을 시도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결실을 본 사이버사령부 창설은 기무사 세력 확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에 국방부 소속으로 귀결됐다.
이러한 외풍을 겪으며 기무사는 정권을 초월해 조직을 보호하면서 그 권력의 기반을 관리하는 데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게 됐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헤아려 국정 중심 과제에 한 걸음 먼저 다가가고 폭넓은 정보력으로 국정의 윤활유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이재수 사령관 시절 기무사가 ‘병영문화 혁신안’을 구상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야전지휘관들 의견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국방부 병영문화 혁신안보다 기무사가 먼저 아이디어를 종합한 것이다. 원래 이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부서를 뛰어넘는 수준의 기민함이다.
이렇게 보면 기무사는 어느새 군사 쿠데타 방지라는 대(對)전복 임무, 군내 방첩 및 수사라는 본래 임무를 넘어 한마디로 ‘못하는 일이 없는’ 만능 부서로 거듭난 셈이다. 군사 쿠데타 저지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명분만으로는 존재 의미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업무 영역이 외부로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기무사의 업무 확장이 경직된 관료주의 폐해를 숙명처럼 안고 있는 국방 조직에 긍정적인 자극제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인들 사이에는 일탈 행위를 한 일부 기무사 간부에 대해 기무사가 은폐나 관대한 처분으로 제 식구 감싸기에 앞장섰던 기억이 박혀 있다. 상당수 군인은 “기무와 헌병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군에는 비리가 없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실무자들은 무기중개상을 관리하고 비리를 예방하는 대신 거꾸로 그 하수인이 되고, 고위직들은 권력과 돈을 향한 집요한 지향성을 보여준 기무사의 오늘은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수시로 개혁의 외풍을 겪은 기무사 내부에 도덕과 명예보다 일신의 안전과 영달을 추구하고자 하는 체념적 풍토가 자리 잡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능케 한다. 어쩌면 지금의 기무사에는 감정적 매질보다 건강한 비판과 격려가 절실하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다.
엄청난 해외 병력 파견이라는 예외적 숙명을 안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어느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기무사 같은 대규모 군 방첩조직을 운용하는 경우는 없다. 기무사가 북한 등 대적(對敵) 정보를 수집하는 다른 군 정보조직보다 규모가 방대하다는 사실은 아직도 군사정권 시기의 제도적 관성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현대 민주주의 발전 추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뿌리를 캐내야 진짜 개혁이다
먼저 전근대적인 권력의 속성을 일소하고 군 발전에 기여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이미지 자체를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환으로 장교들에 대한 기무사의 존안자료, 즉 신원자료를 폐기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교들의 경우 기무 외에도 감찰, 헌병 같은 감시조직에 의해 범죄정보가 이중 삼중으로 점검되고 있다. 이러한 중복 기능 난립이 기밀 유출이나 기무사의 권력화한 이미지 같은 부작용으로 나타난다면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위산업체에 대한 보안 측정도 핵심 부분만 존치하고 일반적인 방위사업 업무는 외부 기관에 위탁하거나 위임하는 것 역시 대안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보기관이 무기중개상 인허가에 관여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까닭이다. 이러한 제도개혁이 기무사 개혁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합수단은 오히려 이를 실현할 기회일 수도 있다. 구조적 비리는 당사자를 징치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낳은 뿌리를 캐내는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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