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제당그룹 이재현부회장과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진검 승부를 펼친다? 두 사람이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전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무슨 얘기인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이런 입방아를 찧으며 3세 승계를 준비하고 있는 두 사람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병철 전회장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영권을 3남인 이건희 현 회장에게 물려주었다. 그 결과 아버지 눈 밖에 났던 장남 맹희씨는 ‘비운의 황태자’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장손 재현씨는 97년 12월 삼성과의 지분 정리를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서 제일제당그룹을 내실있는 기업으로 일궈나가고 있다.
그는 올 3월 드림라인 주총에서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다. 제일제당은 기간통신망 및 인터넷 사업자인 드림라인의 1대 주주. 그의 드림라인 회장 취임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드림라인을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제일제당은 그룹 내에 엔터테인먼트 사업군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 사업을 드림라인과 연계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도 인터넷 사업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용씨는 전공이 인터넷이다. 박사학위 논문도 e(전자)-비즈니스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미 업계에는 삼성의 인터넷 사업에서 재용씨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1월11일 삼성이 인터넷 무료 전화 서비스 업체 새롬기술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도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이고, 3월1일자로 삼성SDS에서 분리할 예정인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유니텔의 대표이사를 재용씨가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재용씨는 현재 학생일 뿐”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재용씨의 첫사업은 인터넷 관련 사업이 될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재현부회장과 이재용씨의 ‘진검 승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물론 이재현부회장과 재용씨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터넷의 서로 다른 분야여서 직접적인 경쟁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분야의 승리자가 21세기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이재현부회장과 재용씨의 경쟁을 ‘진검 승부’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싶다.
인터넷 정보통신 부문은 이재현부회장이나 재용씨뿐 아니라 다른 재벌 3세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부문. LG그룹 구본무회장은 최근 데이콤 경영권까지 인수, 정보통신 부문을 강화했다. 한솔엠닷콤(구 한솔PCS) 조동만부회장도 최근 e-비즈니스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인터넷쪽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코오롱그룹 이웅렬회장은 인터넷 정보통신 벤처투자를 그룹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최근에는 ‘서류없는 회의’를 선언하는 등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세 경영인들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 경제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인터넷, 벤처, e(전자)-비즈니스로 옮겨가는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아울러 인터넷과 벤처에 대한 감각은 아무래도 젊은 오너들이 앞설 수밖에 없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물론 인터넷 정보통신에 대한 이들의 한결같은 관심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동안 한국 재벌이 보여온 ‘미 투(me too) 주의’의 재판이 아닌가 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엄격한 사업성 검토도 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미 투 주의’로 이런 사업 분야에 뛰어든다면 과거처럼 실패하기 십상이고, 결국은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러나 정보통신이 21세기 신산업이라는 점에서 3세들의 이에 대한 관심 자체는 일단 바람직스럽다는 반응. 청와대 경제수석실 관계자는 “문제는 어떻게 올바른 방향과 전략을 세우는가 하는 점이지만 현재로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어쨌든 재벌 3세 시대는 이처럼 인터넷과 함께 개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사업은 재벌 3세에 게는 도전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재현부회장이나 재용씨의 경우에서 보듯 인터넷 사업 주도를 통해 경영 능력을 검증받는다면 3세 승계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세 승계는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미완의 형태’다.
LG와 코오롱그룹이 다른 그룹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수성(守成)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것은 권력의 세계에서나 기업의 세계에서나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무리없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두 그룹은 각각 고 구인회회장→구자경명예회장→구본무회장, 고 이원만회장→이동찬명예회장→이웅렬회장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3세 승계를 했다.두 그룹의 3세 승계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무고(無故) 승계. 선친의 유고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총수 자리에 오른 다른 2, 3세의 경우와 달리 ‘제왕학 교육’ 등 철저한 후계 수업을 거쳐 대권을 물려받았다는 얘기다. ‘준비된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한 곳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그룹. 두산은 박승직 창업주에 이어 2대 박두병회장(73년 작고)을 거쳐 81년 박용곤 회장이 취임함으로써 3세 시대를 맞았다. 박용곤회장은 96년말 바로 아래 동생인 박용오부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기고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 전반에 걸친 자문역을 맡고 있는 상태.
두산의 3세 승계에서 특이한 점은 72년부터 81년까지 전문경영인 정수창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아 과도기를 거쳤다는 점. 이는 73년 박두병회장의 타계 당시 장자인 박용곤회장이 젊어 충분한 경영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의 대권 승계는 SK그룹 등 2, 3세 회장이 젊었을 때 선친이 타계하는 경우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3세들이 후계 수업을 받으며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곳으로 삼성의 위성그룹을 들 수 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제일제당그룹의 이재현부회장을 비롯해 이병철→고 이창희전회장(차남)→이재관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새한그룹, 이병철→이인희고문(장녀)→조동혁-동만-동길 부회장 삼형제의 한솔그룹이 대표적이다. 또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삼성에서 독립한 5녀 이명희씨의 외아들 정용진 경영기획실장도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반면 현대그룹의 3세들은 이제야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수준. 이들은 창업주인 정주영명예회장이 최근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열을 쏟는 등 직접 경영을 챙기는 상황에서 2세인 정몽구-몽헌 회장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취하고 있어 노출을 극력 꺼리고 있다.
현재 현대 계열사에서 일하는 3세로는 현대자동차 구매실장(이사)으로 재직중인 의선씨와 기아자동차 기조실 이사로 있는 일선씨가 있다. 의선씨는 정몽구회장의 외아들이고, 일선씨는 정주영명예회장의 4남 고 몽우씨의 장남. 의선씨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일본계 상사 지사에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은 뒤 작년 말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재벌 3세들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실 등 공통점도 많다. 우선 훌륭한 교육배경을 들 수 있다. 대부분 미국 일본 등 선진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했거나 현재 유학중이다. 물론 이들이 외국 유학에서 배웠을 법한 선진 경영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일부 재벌 2세들이 여전히 ‘황제 경영’을 답습하다 그룹 해체로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
이미 경영권을 물려받은 3세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공격 경영’과 권위주의 파괴. 구본무회장은 취임 하자마자 “2005년까지 300조원의 매출을 달성, 국내외에서 정상의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하면 서 영토 확장 의지를 다졌다. 아울러 형식적인 회의를 없애고 실속을 강조했다.
이웅렬회장도 취임과 동시에 ‘하나뿐인 최고’를 모토로 매출액보다 이익 중심의 경영 체질을 확립하고 정보통신 금융 유통 등 유망산업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걸친 확대 공격 투자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회장은 아울러 동남아를 거점으로 제2 코오롱그룹을 건설, 2000년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그룹으로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또 취임 이후 직원들과 함께 생맥주 파티를 즐기는 등 직원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 경영 방침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상당 부분 궤도 수정을 당했다. 코오롱도 작년 말 신세기통신 지분을 SK에 팔았고, LG그룹도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사업을 현대에 넘겼다. LG는 대신 데이콤 경영권을 확보, 정보통신 부분을 그룹의 전략사업으로 키운다는 방침.
3세 승계에 부정적인 일반의 분위기도 재벌 3세들이 넘어야 할 공동의 과제. 3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SK 최태원회장이 SK그룹 회장을 맡지 않고 전문경영인인 손길승회장이 ‘대리 경영’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전경련 유한수전무도 “2세들의 경우 창업자와 함께 기업 성장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승계가 이뤄졌으나 3세들의 경우는 다르다”고 인정했다.
3세 승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상속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능력없는 2, 3세의 무조건 경영권 승계로 인한 폐해가 막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재벌의 부실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무능한 재벌 총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상속 과정의 불투명성은 삼성그룹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잘 알려진 대로 재용씨는 95년 아버지에게서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아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남은 46억8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해서 지금은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한 ‘거부’가 됐다. 이 과정에 그는 상장 직전의 삼성 계열사 주식을 싼 값에 인수, 상장후 이를 비싸게 되파는 재테크 수법을 충분히 활용했다.
정부도 이런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기 위해 작년 정기국회에서 상속세법을 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평가. 윤종훈공인회계사는 “최근 재벌들이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하고 있어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속 및 증여세제를 전면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재벌 2, 3세 경영자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중론이다. 물론 과거 재벌 2세들도 선친으로부터 나름대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인 경영 능력 검증 과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대주주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상장회사에 사외이사를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이런 객관적인 차원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김상조교수(한성대 무역학부)는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다수의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가 존재하고, 최고경영자의 잘못된 의사 결정에 대한 구제 소송제도가 완벽하게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승계한다면 굳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재벌 3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대두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알려진 대로 이병철 전회장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영권을 3남인 이건희 현 회장에게 물려주었다. 그 결과 아버지 눈 밖에 났던 장남 맹희씨는 ‘비운의 황태자’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장손 재현씨는 97년 12월 삼성과의 지분 정리를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서 제일제당그룹을 내실있는 기업으로 일궈나가고 있다.
그는 올 3월 드림라인 주총에서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다. 제일제당은 기간통신망 및 인터넷 사업자인 드림라인의 1대 주주. 그의 드림라인 회장 취임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드림라인을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제일제당은 그룹 내에 엔터테인먼트 사업군을 보유하고 있어 이들 사업을 드림라인과 연계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도 인터넷 사업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용씨는 전공이 인터넷이다. 박사학위 논문도 e(전자)-비즈니스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미 업계에는 삼성의 인터넷 사업에서 재용씨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1월11일 삼성이 인터넷 무료 전화 서비스 업체 새롬기술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도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이고, 3월1일자로 삼성SDS에서 분리할 예정인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유니텔의 대표이사를 재용씨가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재용씨는 현재 학생일 뿐”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재용씨의 첫사업은 인터넷 관련 사업이 될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재현부회장과 이재용씨의 ‘진검 승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물론 이재현부회장과 재용씨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터넷의 서로 다른 분야여서 직접적인 경쟁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신사업 분야의 승리자가 21세기 최후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이재현부회장과 재용씨의 경쟁을 ‘진검 승부’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싶다.
인터넷 정보통신 부문은 이재현부회장이나 재용씨뿐 아니라 다른 재벌 3세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부문. LG그룹 구본무회장은 최근 데이콤 경영권까지 인수, 정보통신 부문을 강화했다. 한솔엠닷콤(구 한솔PCS) 조동만부회장도 최근 e-비즈니스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인터넷쪽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코오롱그룹 이웅렬회장은 인터넷 정보통신 벤처투자를 그룹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최근에는 ‘서류없는 회의’를 선언하는 등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세 경영인들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 경제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인터넷, 벤처, e(전자)-비즈니스로 옮겨가는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아울러 인터넷과 벤처에 대한 감각은 아무래도 젊은 오너들이 앞설 수밖에 없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물론 인터넷 정보통신에 대한 이들의 한결같은 관심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동안 한국 재벌이 보여온 ‘미 투(me too) 주의’의 재판이 아닌가 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엄격한 사업성 검토도 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미 투 주의’로 이런 사업 분야에 뛰어든다면 과거처럼 실패하기 십상이고, 결국은 국민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러나 정보통신이 21세기 신산업이라는 점에서 3세들의 이에 대한 관심 자체는 일단 바람직스럽다는 반응. 청와대 경제수석실 관계자는 “문제는 어떻게 올바른 방향과 전략을 세우는가 하는 점이지만 현재로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어쨌든 재벌 3세 시대는 이처럼 인터넷과 함께 개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사업은 재벌 3세에 게는 도전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재현부회장이나 재용씨의 경우에서 보듯 인터넷 사업 주도를 통해 경영 능력을 검증받는다면 3세 승계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3세 승계는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미완의 형태’다.
LG와 코오롱그룹이 다른 그룹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수성(守成)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것은 권력의 세계에서나 기업의 세계에서나 모두 통용되는 말이다. 무리없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두 그룹은 각각 고 구인회회장→구자경명예회장→구본무회장, 고 이원만회장→이동찬명예회장→이웅렬회장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3세 승계를 했다.두 그룹의 3세 승계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무고(無故) 승계. 선친의 유고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총수 자리에 오른 다른 2, 3세의 경우와 달리 ‘제왕학 교육’ 등 철저한 후계 수업을 거쳐 대권을 물려받았다는 얘기다. ‘준비된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한 곳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그룹. 두산은 박승직 창업주에 이어 2대 박두병회장(73년 작고)을 거쳐 81년 박용곤 회장이 취임함으로써 3세 시대를 맞았다. 박용곤회장은 96년말 바로 아래 동생인 박용오부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기고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 전반에 걸친 자문역을 맡고 있는 상태.
두산의 3세 승계에서 특이한 점은 72년부터 81년까지 전문경영인 정수창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아 과도기를 거쳤다는 점. 이는 73년 박두병회장의 타계 당시 장자인 박용곤회장이 젊어 충분한 경영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의 대권 승계는 SK그룹 등 2, 3세 회장이 젊었을 때 선친이 타계하는 경우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3세들이 후계 수업을 받으며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곳으로 삼성의 위성그룹을 들 수 있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 제일제당그룹의 이재현부회장을 비롯해 이병철→고 이창희전회장(차남)→이재관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새한그룹, 이병철→이인희고문(장녀)→조동혁-동만-동길 부회장 삼형제의 한솔그룹이 대표적이다. 또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삼성에서 독립한 5녀 이명희씨의 외아들 정용진 경영기획실장도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반면 현대그룹의 3세들은 이제야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수준. 이들은 창업주인 정주영명예회장이 최근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 정열을 쏟는 등 직접 경영을 챙기는 상황에서 2세인 정몽구-몽헌 회장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취하고 있어 노출을 극력 꺼리고 있다.
현재 현대 계열사에서 일하는 3세로는 현대자동차 구매실장(이사)으로 재직중인 의선씨와 기아자동차 기조실 이사로 있는 일선씨가 있다. 의선씨는 정몽구회장의 외아들이고, 일선씨는 정주영명예회장의 4남 고 몽우씨의 장남. 의선씨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일본계 상사 지사에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은 뒤 작년 말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재벌 3세들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실 등 공통점도 많다. 우선 훌륭한 교육배경을 들 수 있다. 대부분 미국 일본 등 선진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했거나 현재 유학중이다. 물론 이들이 외국 유학에서 배웠을 법한 선진 경영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일부 재벌 2세들이 여전히 ‘황제 경영’을 답습하다 그룹 해체로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
이미 경영권을 물려받은 3세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공격 경영’과 권위주의 파괴. 구본무회장은 취임 하자마자 “2005년까지 300조원의 매출을 달성, 국내외에서 정상의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하면 서 영토 확장 의지를 다졌다. 아울러 형식적인 회의를 없애고 실속을 강조했다.
이웅렬회장도 취임과 동시에 ‘하나뿐인 최고’를 모토로 매출액보다 이익 중심의 경영 체질을 확립하고 정보통신 금융 유통 등 유망산업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걸친 확대 공격 투자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회장은 아울러 동남아를 거점으로 제2 코오롱그룹을 건설, 2000년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그룹으로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또 취임 이후 직원들과 함께 생맥주 파티를 즐기는 등 직원들과의 거리감을 없애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 경영 방침은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상당 부분 궤도 수정을 당했다. 코오롱도 작년 말 신세기통신 지분을 SK에 팔았고, LG그룹도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사업을 현대에 넘겼다. LG는 대신 데이콤 경영권을 확보, 정보통신 부분을 그룹의 전략사업으로 키운다는 방침.
3세 승계에 부정적인 일반의 분위기도 재벌 3세들이 넘어야 할 공동의 과제. 3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SK 최태원회장이 SK그룹 회장을 맡지 않고 전문경영인인 손길승회장이 ‘대리 경영’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전경련 유한수전무도 “2세들의 경우 창업자와 함께 기업 성장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승계가 이뤄졌으나 3세들의 경우는 다르다”고 인정했다.
3세 승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상속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능력없는 2, 3세의 무조건 경영권 승계로 인한 폐해가 막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재벌의 부실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무능한 재벌 총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상속 과정의 불투명성은 삼성그룹 이건희회장 아들 재용씨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잘 알려진 대로 재용씨는 95년 아버지에게서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아 증여세 16억원을 내고 남은 46억8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해서 지금은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한 ‘거부’가 됐다. 이 과정에 그는 상장 직전의 삼성 계열사 주식을 싼 값에 인수, 상장후 이를 비싸게 되파는 재테크 수법을 충분히 활용했다.
정부도 이런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차단하기 위해 작년 정기국회에서 상속세법을 개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평가. 윤종훈공인회계사는 “최근 재벌들이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하고 있어 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상속 및 증여세제를 전면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재벌 2, 3세 경영자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중론이다. 물론 과거 재벌 2세들도 선친으로부터 나름대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인 경영 능력 검증 과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대주주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 상장회사에 사외이사를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이런 객관적인 차원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김상조교수(한성대 무역학부)는 “대주주로부터 독립된 다수의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가 존재하고, 최고경영자의 잘못된 의사 결정에 대한 구제 소송제도가 완벽하게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3세가 경영권을 승계한다면 굳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재벌 3세 시대가 본격적으로 대두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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