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월 31일 서울 한 카페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동아DB]
한 전 총리는 4월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당시 윤 당선인은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한 분”이라며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 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국무총리를 지낸 바 있다.
한덕수 후보자, 김앤장 고액 보수 논란
문제는 한 후보자가 공직 퇴임 후 김앤장에서 고문을 맡아 고액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한 후보자는 2018~2020년 매해 5억 원의 보수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3억 원을 수령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11월~2003년 7월에도 김앤장 고문을 맡아 1억5000만 원을 수령했다. 공직 퇴직 후 김앤장에서 19억5000만 원 이상 보수를 받은 것이다. 이 밖에도 한 후보자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에쓰오일 사외이사를 겸하며 8000만 원 보수를 받은 바 있다. 한 후보자는 2012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재산이 40억 원 가까이 증가해 현재 8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액 고문료와 부동산 값 상승이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한 후보자는 고문료 이슈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4월 5일 서울 종로구 국회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고액 연봉 논란이 있다”는 취재진 질문에 “그건 기자님 생각이고, 이 문제는 우리는 확실하다”고 답했다. 이어 “일단 (청문회 자료가) 제출되면 팩트를 기초로 해서 언론과 국회의원이 보고 질문 및 답변과 토론을 해 판단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혜 전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역량과 경륜, 지혜로 국정을 끌고 갈 수 있는 적임자로 내정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4월 5일 “법률가도 아닌 전직 고위 관료가 김앤장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국민이 궁금해한다”며 공세를 폈다. 민주당은 인사청문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검증의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역시 다음 날 CBS 라디오에서 “한 경기에서 심판 뛰다가 선수 뛰다가 연장전에 다시 심판으로 돌아가는 그런 경우”라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부터 줄줄이
김앤장 ‘회전문 인사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관련 방식의 인사가 매번 반복됐다(표 참조). 1999년 6월 법무부 차관을 마친 최경원 변호사가 김앤장에 합류한 후 같은 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후로도 박정규 전 민정수석, 한승수 전 국무총리,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회전문 인사를 거쳤다. 현 정부에서는 신현수 전 민정수석,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김앤장 출신이다. 정권은 바뀌더라도 김앤장 관련 인사는 매번 주요 공직을 맡은 것이다.당장 인수위에도 김앤장 출신이 포진했다. 인수위 수석대변인인 최지현 변호사,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맡은 박익수 변호사 등이 김앤장 출신이다. 차기 정권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는 박진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회전문 인사가 문제가 돼 낙마한 후보도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안 전 대법관은 변호사 전업 후 5개월간 16억 원을 벌어 ‘전관예우’ 의혹이 일었다. 안 전 대법관은 그해 5월 28일 “내 버팀목과 보이지 않는 힘이 돼준 가족과 나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버겁다”고 말하며 지명 엿새 만에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감사원장직에 내정됐던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법무법인에서 7개월간 7억7000만 원 보수를 수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러난 일도 있었다.
한 후보자가 김앤장에서 받은 고문료 액수는 안 전 대법관과 비슷하다. 다만 근무 기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해당 기간 비위 혐의 없이 임금에 합당한 노동력을 제공했는지에 따라 적절성 논란이 해소되거나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5월 5일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한 후보자의) 활동들을 얘기 들어보니까 해외 자본을 국내에 유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원하는 이런 활동을 했다고 한다. 결격 사유가 될 것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 당선인 측이 진보·보수 정권을 아우르며 공직을 맡은 인사를 총리 후보자로 임명해 통합 메시지를 던졌다”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형성 과정에 비위 혐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다룰 텐데, 이에 대해 적절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론스타 사건 재점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심의가 진행되던 2011년 11월 18일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론스타에 대한 징벌적 매각 명령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말하는 ‘재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이다. 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3000억 원에 사들인 뒤 2조 원 차액을 남기고 매각했다. 이에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가 금융당국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김앤장이 론스타를 변호했는데, 한 후보자는 김앤장 고문으로 있었다. 한 후보자는 “론스타 문제에 대해 국가, 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적은 있지만, 김앤장이라는 사적 직장에서 관여된 바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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