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집단과 조직을 중시하고 디지털형 인간은 개인과 자아를 중시한다. 자기의 실익과 별반 상관이 없음에도 단지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후보집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조직의 쓴맛’ 운운하거나 ‘무슨 향우회’ ‘무슨 동문회’ ‘무슨 군대’ 등에 목숨거는 사람들도 대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은 집단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 한다.
둘째, 아날로그형 인간이 정규대원이라면, 디지털형 인간은 게릴라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명령과 위계에 익숙하고 철저하게 임무완수형이다. 그러나 지시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 하려 들지 않는다. 반면 디지털형 인간은 자율과 연대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한다. 때로 시키지 않은 일을 벌여서 상사나 주위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셋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수성(守成)에 힘쓰고 디지털형 인간은 모험합작을 즐긴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지키기에 힘쓴다. 물론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법이긴 하다.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의 모토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다. 그러면서 낯선 것도 마음만 맞으면 자신의 것과 결합시킨다.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 즉 모험합작을 하는 것이다.
넷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여닫이문이고 디지털형 인간은 회전문이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닫혀 있는 채로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은 항상 스스로를 열어둔 채 누군가가 들어오도록 유인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타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다섯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욕구(needs) 충족형이고 디지털형 인간은 욕망(desire) 추구형이다. 같은 자동차를 타더라도 아날로그형 인간은 단지 사람의 발을 대신하는 운반도구로서 차를 타지만 디지털형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운반해주는 도구로서 차를 탄다.
여섯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은 안된다”고 말하고 디지털형 인간은 “~도 된다”고 말한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매사에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는 식이다.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은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힘들긴 하지만 해볼 만하다는 식이다.
일곱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붙박이형이고 디지털형 인간은 장돌뱅이형이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정주민(sedentary)이다. 꼼짝하려 들지 않는다. 컴퓨터를 써도 데스크톱만을 고집한다.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은 유목민(nomad)이다. 이것 저것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찾아 계속 움직인다. 컴퓨터를 써도 노트북이나 PDA를 주로 사용한다.
여덟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디지털형 인간은 낯선 것을 즐긴다. 아날로그형 인간은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 늘 하던 일만 고집하고 늘 만나던 사람을 만난다. 디지털형 인간은 운전을 하다가도 길이 막히면 낯선 길로 과감히 들어선다. 늘 하던 일보다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길 즐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한다.
아홉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지구력에 의존하고 디지털형 인간은 상상력에 의존한다. 아날로그형 인간의 생존방식은 오래 버티기다. 그러면서 남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식이다. 반면에 디지털형 인간의 생존방식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지점에서 먼저 출발하기다. 상상력의 수준을 달리해서 격차를 두는 것이다.
열째, 아날로그형 인간은 차이를 두려워하고 디지털형 인간은 다름을 즐거워한다. 아날로그형 인간에게 다름은 ‘왕따’의 조건일 따름이지만 디지털형 인간에게 차이는 존중받을 근거다. 디지털시대에는 다름, 곧 차이가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날로그형 인간인가 아니면 디지털형 인간인가. ‘총선’ 바람과 ‘벤처’ 바람이 엇갈려 불고 있는 이 봄날에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