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드론이 3월 16일(이하 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국제공항 인근에 자리한 연료 탱크를 타격해 화염이 치솟고 있다. 뉴시스
중동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각종 분쟁과 전쟁, 테러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UAE는 안전한 국가로 여겨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국가였던 UAE는 최근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최대 피해국이 되고 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인 UAE는 ‘세계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면서 번영을 구가해왔지만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보다 UAE 공격 더 많아
2월 28일(이하 현지 시간) 전쟁 발발 이후 UAE는 이란의 보복 공격 대상이 됐다. 이란은 수도 아부다비에서 남쪽으로 32㎞에 떨어진 알다프라 미군 공군기지를 비롯해 두바이 금융지구, 두바이국제공항, 푸자이라 석유 수출 터미널, 두바이 제벨알리 항구, 아부다비의 루와이스 정유공장, 아마존 데이터센터, 두바이 고급 호텔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림 알 하시미 UAE 국제협력 담당 국무장관은 4월 19일 미국 ABC에 출연해 전쟁 발발 이후 40일 동안 이란으로부터 550여 발의 탄도·순항미사일, 2200여 대의 드론 공격을 받았고 표적의 90%가 민간 인프라였다고 밝혔다.UAE를 상대로 한 이란의 공격 규모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걸프 국가들보다 훨씬 컸다. 심지어 이란은 주적인 이스라엘보다 UAE를 더 많이 공격했다. 공습경보가 일상이 됐고, 많은 외국인이 떠났다. 외국 자본도 대거 이탈하면서 은행 등 금융시장도 활력을 잃었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들어 호텔 대부분이 비어 있을 정도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수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물류에도 문제가 생겼다. 자칫하면 금융·관광·물류의 허브라는 국가 위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란이 UAE를 집중 타격한 이유는 ‘아브라함 협정’의 핵심 참여국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아랍 주요국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다. UAE는 2020년 아랍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이어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UAE와 이스라엘은 각각 텔아비브, 아부다비에 대사관을 개설했고 직항 항공 노선도 신설했다. 유대계 자본이 두바이에 대거 유입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란은 그동안 UAE가 이슬람을 배신했다고 비난해왔다.
영토 분쟁도 양국 갈등 배경이다. UAE는 호르무즈해협 입구에 위치한 아부무사와 대툰브, 소툰브 등 3개 섬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란은 1971년 영국이 걸프 지역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3개 섬을 장악한 이후 현재까지 실효 지배를 해왔다. 양국은 종교와 정치체제를 놓고도 대립했다. UAE는 1979년 팔레비왕정을 쫓아내고 집권한 이란 신정체제 세력이 시아파 신앙과 혁명 이념을 전파하려는 것을 경계했다. UAE는 또 예멘 내전에서 수니파 세력을 지원하며 시아파인 후티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과 대리전을 벌였다.
“UAE는 이란에 실존적 이념 위협”

UAE의 토후국이자 경제 중심지인 두바이는 미국-이란 전쟁 이후 중동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위상이 무너지고 있다. GETTYIMAGES
이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란의 공습으로 지금까지 안전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중동의 금융, 물류, 관광 등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UAE의 국가 브랜드가 상당히 훼손됐기 때문이다.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란은 세계경제의 주요 중심지인 UAE를 타격해 서구와 중동 전역에 강한 심리적 충격을 주려고 했다”면서 “신정체제를 유지하려는 이란으로선 UAE처럼 서구식 번영을 구축해온 중동 국가들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UAE 내에선 이란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빈 자이드 나하얀 할리파 UAE 대통령은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부상당한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해 “UAE의 적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우리는 아름답고 본보기가 되는 국가지만 쉬운 먹잇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국을 공격한 이란을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UAE는 최근 이란 여권 소지자의 입국과 경유를 전면 금지하고, 자국 거주 이란인들의 비자도 취소하는 조치를 내렸다. UAE의 기업가이자 작가인 미샬 알 게르가위는 “이번 전쟁은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란은 관용적인 이웃을 잃었다”고 밝혔다. UAE 정부 관리들은 “양국 관계의 진정한 신뢰 회복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빈 자이드 나하얀 할리파 UAE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5일 아부다비 카사르 알와탄 대통령궁에서 회담하고 있다. 뉴시스
UAE가 달러 확보에 나선 것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유와 가스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외국인 투자 자금까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UAE는 이미 사모 방식의 채권 발행을 통해 40억 달러(약 5조9000억 원)를 확보했으며, 최근 바레인과도 54억 달러(약 8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UAE의 외환보유액은 2700억 달러(약 397조8700억 원) 수준으로 중동 지역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UAE의 국부펀드도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 수준이다. 다만 국부펀드 자금은 대부분 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에 묶여 있는 장기 투자자산이다.
UAE는 부국이지만 환율 방어와 수입 대금 결제, 단기 외채 상환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미국달러라는 현찰이 필요하다. 국부펀드들이 보유한 장기 투자자산은 전쟁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 현금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UAE가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필요할 때 언제든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인 미국달러를 신속하게 끌어다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 금융시장에 줄 수 있다. 금융정보기업 S&P 글로벌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은행권 전체에서 최대 3070억 달러(약 452조49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금이 이탈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으로선 UAE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에 ‘안전장치’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1일 CNBC와 전화 통화에서 UAE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것”이라며 “그들은 우리의 든든한 동맹이며 알다시피 지금은 비정상적인 시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