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국산 KF-21 전투기가 공중기동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국산 KF-21 성능은 뛰어나지만…
2023년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은 KF-21은 내년 공중 전용 모델인 블록1 40대가 일선에 배치되기 시작한다. 이어서 다목적 모델인 블록2 80대도 도입될 예정이다. KF-21이 대체하는 한국 공군 F-5E/F 모델은 이미 상당수가 퇴역한 상태다. 따라서 공군은 최대한 빨리 KF-21을 확보해 실전에 투입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전력인 KF-21 전투기가 자칫 ‘깡통’이 될 판이다. 전투기에 탑재할 미사일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KF-21은 현재 한국군이 사용하는 AIM-120 계열 중거리공대공미사일과 AIM-9M/X 계열 단거리공대공미사일 운용이 당분간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 정책상 외국에서 아직 개발 단계인 항공기에는 미국산 무장 통합 승인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부터 한국 공군에 배치되는 KF-21 전투기는 미국에서 ‘개발 완료’ 확인을 받은 뒤에야 미국산 무장 통합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빨라도 2030년까지는 KF-21에서 미국산 무장 운용이 어려운 것이다.
이에 KF-21은 개발 과정에서 유럽과 협력해 유럽산 중단거리공대공미사일을 통합했다. 중거리용 ‘미티어’와 단거리용 ‘IRIS-T’다. 유럽 6개국이 공동개발 및 생산하는 미티어는 현존 최강 중거리공대공미사일로 꼽힌다. 한국군이 사용 중인 AIM-120B/C 계열의 사거리가 100~130㎞인 데 반해, 미티어 사거리는 최대 300㎞에 달한다. 덕티드 로켓 모터를 탑재한 덕에 종말단계에서도 속도 감소 없이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IRIS-T는 독일이 개발한 단거리공대공미사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 데뷔했다. 이 미사일은 25㎞급 사거리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동성을 지녔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미사일의 지대공 버전을 운용 중인데, 현재까지 격추 성공률 100%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스펙을 보면 한국군이 미티어와 IRIS-T를 KF-21의 주력 공대공 무장으로 채택한 것은 잘한 선택이다.
문제는 도입량이다. KF-21은 동체 하단에 미티어 4발을 반(半)매입식으로, 주익 하단에 IRIS-T 2~4발을 파일런 장착 방식으로 탑재한다. 40대가 도입되는 KF-21 블록1에 공대공미사일을 가득 실으려면 미티어와 IRIS-T를 각각 160발씩은 사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전쟁이 터지면 미사일을 얼마나 쓸지 모르기 때문에 여분의 탄약도 반드시 사둬야 한다.

KF-21에 탑재되는 유럽산 공대공미사일 ‘미티어’(왼쪽)와 ‘IRIS-T’. GETTYIMAGES·위키피디아
러시아-우크라이나 공중전 2년 이상 지속
당초 공군은 KF-21 전력화에 앞서 2023년 “미티어와 IRIS-T 미사일을 도합 900여 발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의 ‘전시 탄약소요’ 보고서를 합동참모본부에 제출했다. 모델별 도입 수량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공군은 미티어 600발과 IRIS-T 300발을 도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투기에는 중거리미사일과 단거리미사일을 2 대 1 비율로 탑재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900발도 실제 소요에는 훨씬 못 미치는 물량일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구매 계약이 체결된 것은 미티어 100발과 IRIS-T 50발, 도합 150발에 불과하다.합참은 “공중전은 전쟁 초기에만 집중되니 사흘 치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국내 기술로 개발해 조달한다”는 취지로 공군이 요청한 미사일 도입량을 대폭 줄였다. 국내 기술로 개발해 조달한다는 공대공미사일은 중거리형이 2038년, 단거리형이 2035년은 돼야 완성될 예정이다. 내년부터 KF-21 전투기가 일선 배치되기 시작해도 대부분 공대공미사일이 없는 ‘깡통’ 상태로 운용될 판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중전은 개전 초에만 집중된다”는 말은 사실일까. 공중전은 말 그대로 ‘공중에 있는 비행체로 공중에 있는 적대적 물체를 요격하는 전투’를 뜻한다. 적대적 물체에는 전투기는 물론 헬기, 미사일, 드론 등이 포함된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년 넘게 하루에 적게는 수십 대, 많게는 수백 대 장거리 자폭 드론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지대공·공대공미사일을 엄청난 속도로 소진하면서 오래전부터 미사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미래 전쟁이 엄청난 양의 드론과 저가형 순항미사일이 동원되는 물량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미사일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9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최근 스티븐 파인버그 부장관 주도로 ‘군수품 생산 촉진 위원회’를 발족해 미사일 생산량을 4배 이상 늘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파인버그 부장관은 매주 주요 방산업체 임원들에게 전화해 미사일, 특히 지대공·공대공미사일 증산을 닦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군이 5월 조종 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드론 기술 및 생산 설비를 받아 대규모 드론 공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뉴스1
공대공미사일 확충 나선 미국과 유럽
미국 AIM-120 ‘암람’ 중거리공대공미사일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에는 연간 최대 생산량이 1000발 정도였다. 미국 당국은 지난해 암람 생산량을 2배로 늘린 데 이어, 올해는 다시 전년 대비 2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미국은 일본과 유럽 등에 암람 생산을 의뢰하기까지 했다. AIM-9X 단거리공대공미사일의 경우 2022년 1400발이 생산됐지만 올해는 연말까지 2500발이 생산될 예정이다. 생산량을 더 늘리기 위한 공장 증축도 이뤄지고 있다.유럽은 2022년까지만 해도 한 해 100발도 안 되던 IRIS-T 미사일 생산량을 올해 5배까지 늘렸다. 연간 수십 발이 생산되던 미티어 미사일도 올해 들어 증산을 위한 설비 확충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은 공대공미사일뿐 아니라 지대공·함대공미사일 생산도 늘리는 추세다. 유럽 각국이 대폭 증액한 국방예산을 본격 집행하는 내년부터 공대공미사일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와 비교하면 유럽의 공대공미사일 생산량은 최대 5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처럼 세계 주요 국가는 공대공미사일 확보 경쟁에 나섰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신형 전투기 거래를 진행 중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장거리 자폭 드론 생산 기술과 설비를 받아와 한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공습 능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계획보다 공대공미사일 구매량을 대폭 늘려야지 오히려 줄여선 안 된다.
한국군의 전시 대비 탄약, 특히 전투기용 탄약 비축량은 매우 부족하다. 거의 매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는 사안이기도 하다. 한국군은 “탄약 종류마다 많으면 일주일, 적은 것은 사흘 치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도 탄약 보유량과 수송·분배 등 보급 능력을 고려해 임의로 설정한 통제보급률(CSR)에 따른 수치다. 변수가 넘쳐나는 실전에선 하루이틀이면 탄약이 바닥날 우려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심각한 안보 위협에도 미사일 전력 강화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분야는 또 있다. 바로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이다. 당장 국민 보호보다 ‘무기 국산화’에만 치중한 결과다. 한국군은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는 ‘종말단계 하층방어’ 중심의 MD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북핵이 완성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20년 전부터 추진된 KAMD가 완성되려면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공격을 벌일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갖춘 지 한참 됐음에도 한국은 제대로 된 MD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미사일 방어망 구축도 시급
북한은 2010년대 초반 다양한 대구경 방사포와 근거리 탄도미사일을 대량 배치해 수도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군 안팎에선 이스라엘제 요격 시스템인 아이언돔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아이언돔은 한반도 전장 환경에 맞지 않는다”며 LAMD(Low Altitude Missile Defense)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거리 70㎞·요격고도 10㎞인 아이언돔은 90% 넘는 요격 성공률을 보인다. 당장 대량 배치가 가능할 뿐 아니라 요격미사일 1발 가격도 1억 원 정도라서 경제성도 좋은 편이다. 반면 한국형 단거리함대공미사일 ‘해궁’을 기반으로 개발되는 ‘한국형 아이언돔’ LAMD는 사거리 10㎞·요격고도 5㎞ 미만에 발당 예상 가격도 5억~10억 원에 달한다. 예정대로 개발이 이뤄져도 실전 배치는 2030년 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개발·배치가 너무 늦다는 전문가들 비판에 한국군은 2022년 LAMD 시험발사 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사진 속 물체는 LAMD가 아니라 함대공미사일 ‘해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기술 자립과 신성장동력 개발, 일자리 창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무기 국산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민의 안전보장이라는 지상 과제를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미사일 같은 핵심 무기체계라면 더욱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