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일행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2주기를 맞아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참배하고 있다.
소식통 “사망 가능성 매우 높다”
북한이 해명해야 할 것을 대신 설명해준 것인데, 이는 국정원이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국방부와 국정원 정보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이 모습을 감춘 40일 사이 평양 북쪽에 있는 특각에 머물며 건강을 회복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 위원장은 ‘그 나름의 정치’를 해왔다”고 덧붙인다. 고모부인 장성택 계열로 판정된 인물을 처형, 처벌하는 일과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 등 3인조의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깜짝 참석 등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나타난 지금 북한 전문가들은 관심을 그의 고모인 김경희에게로 옮기고 있다. 김경희가 장성택 처형 이후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12일 북한 조선중앙TV 기록 영화에 등장하면서 ‘건재’하다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이는 과거 영상을 다시 돌린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정통한 소식통들은 그가 김정은보다 더 심각한 유고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본다. 이들은 “아직은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첩보 수준의 이야기”라는 단서를 달고, “김경희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김경희는 남편과 달리 처형된 것은 아니다. 울화병이라고 할 수 있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 자연사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오랫동안 당뇨를 앓아와 체중이 많이 빠져 있었고, 남편이 처형된 다음에는 극심한 분노로 건강이 크게 나빠진 것이 분명하니, 병사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북한과 연결된 소식통들은 김경희 사후 주변 사람들이 김경희를 평양의 혁명열사릉에 모시자고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화를 내면서 ‘그곳에 묻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해 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혁명열사릉으로 김경희를 모시자고 한 사람에 대해 김 위원장은 처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은 김경희를 매장했는지 여부와 매장했다면 그곳이 어디냐는 것이다. 김경희의 매장 여부와 매장지에 대해서는 첩보도 없는 상태다. 김정은의 격노 때문에 북한은 죽은 김경희를 매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설명을 전한 소식통들은 김경희가 사용해온 거처가 두 군데였다고 말한다. 이들은 장성택 처형 이후 김경희가 두 거처에서 단 한 번도 나온 사실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장성택이 처형된 것은 지난해 12월 12일이니, 김경희의 행적은 10개월 사이 전혀 없는 셈이다. 소식통들은 장성택이 체포되기 전 김경희의 행적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7월 8일은 김일성 19주기였다. 그날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위 부위원장직에 있던 장성택, 내각 총리 박봉주,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인민군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장 장정남,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 인민보안부장 최부일 등을 이끌고 금수산태양궁전에 있는 김일성 미라를 참배했다. 그러나 김경희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경희의 동선을 추적해온 팀은 그날 김정은 위원장이 장성택 등을 이끌고 오기 전 김경희가 먼저 아버지 미라를 참배하고 돌아간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3일 국정원은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밝히기 전에 먼저 확보한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잠자코 있던 북한은 엿새 뒤인 12월 9일 ‘노동신문’ 등을 통해 “전날인 8일 장성택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체포됐고 실각했다”고 밝히며 체포 장면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그리고 12월 13일자 노동신문 등을 통해서는 “전날인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바로 그를 처형했다”고 밝혔다.
김일성 20주기 추도식에도 불참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09년 공개한 1960년대 초반 김일성과 김정일(왼쪽), 김경희(오른쪽)의 모습. 김일성은 수상, 김정일은 김일성대 재학생, 김경희는 고급중학교 학생일 때 모습이다.
김경희는 1946년생이니 2013년에는 만 67세였다. 더욱이 당뇨를 앓아 수척해진 상태여서 남편 처형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공산이 크다. 남편이 처형되기 전 아버지와 오빠 미라를 찾아가 하소연한 뒤로 그는 더는 거처 밖으로 나온 사실이 없다. 장성택 처형 닷새 뒤인 12월 17일은 김정일 2주기였는데, 김경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이설주가 두 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7월 8일은 김일성 20주기였다. 이른바 ‘꺾어지는 해’의 추도식이었지만 김경희는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주요 탈북자를 접하는 한 소식통은 “김경희 사망은 북한에서도 비밀이다. 그가 숨졌다는 이야기는 극소수만 아는 것이라 쉬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이 북한의 불문율을 깨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경희는 김정일과 같은 어머니를 두고 있으니 북한에선 전형적인 백두혈통이다. 김정은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자란 고영희이니 그의 혈통은 반쪽짜리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백두혈통을 가진 이가 사망하면 모두 부고를 띄웠다. 그런데 혈통 면에서는 밀리는 김정은이 김경희 부고를 띄우지 않고 있다. 이는 장성택과 그 일파에 대한 김정은의 적개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장성택과 그 일파 처형으로 형성된 공포정치로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김경희는 죽은 것일까, 살아 있는 것일까. 오는 12월 17일은 김정일 탈상을 하는 3주기다. 그 추도식에도 김경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김경희 사망’ 혹은 ‘김경희 유고’ 소문이 남한은 물론 북한 사회에서도 퍼져나갈 공산이 크다. 대북소식통들은 이러한 이야기가 확산될 경우 북한 주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백두혈통 사망 부고를 띄우지 않았다면 그것은 북한에서도 ‘큰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