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노란 천사’가 100년간 쌓아온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로 독일 국민의 전폭적 신뢰를 받아온 독일 자동차운전자클럽 ‘아데아체(ADAC)’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건은 아데아체 회원들이 선정하는 ‘독일인이 사랑한 올해의 차’ 투표 결과를 간부 한 명이 수년간 조작해왔음이 드러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여기에 회원 1880만 명 덕에 생긴 힘을 소수 임원이 암암리에 행사해왔고 내부 문제, 각종 품질평가와 관련한 비리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독일 사회가 큰 실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아데아체가 수여하는 상으로 치장해왔던 폴크스바겐,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등 독일 자동차기업 역시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생겼다.
‘노란 천사’ 추락 사건은 내부자의 언론 제보로 시작됐다. 1월 14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매년 초 아데아체가 수여하는 자동차상 겔베엥겔(노란 천사라는 뜻) 가운데 아데아체 회원들이 뽑는 ‘독일인이 사랑한 올해의 차’ 부문의 득표수가 조작됐다”고 보도했다. 시상식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겔베엥겔은 자동차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상으로, 올해 10회째다. 독일 국민 4분의 1을 회원으로 확보한 막강한 단체가 주는 상인 만큼 시상식에는 자동차업계 유력 인사가 대거 참석해왔다. 이 상을 수여한 자동차 모델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어 차량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받았고 자동차기업의 이미지도 높아졌다.
이 신문이 입수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자동차 모델 후보 200여 종 가운데 ‘올해의 차’로 선정된 폴크스바겐 골프는 실제 3409표를 얻었지만 조작을 통해 10배 많은 3만4299표로 둔갑했다. 전체 투표 참여자가 29만 명이라는 것도 거짓으로, 실제 투표 참여자는 7만6000명에 불과했다. 투표수를 조작한 장본인은 아데아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이자 회원잡지 ‘모토벨트’ 발행자인 미하엘 람슈테터(60)다.
자동차업계 오스카상 신뢰에 먹칠
보도가 나간 직후 아데아체 경영진은 람슈테터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조작설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눈앞에 닥친 시상식 준비로 바쁘다며 해명을 미뤘다. 1월 16일 시상식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그 자리에서 카를 오버마이어 아데아체 경영책임자는 “조작설은 비방”이며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언론의 수치”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시상식 다음 날 람슈테터는 경영진에게 e메일을 보내 득표수 조작을 자백하고 곧바로 사퇴했다. 그가 순위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내부 조사가 진행될수록 순위도 조작됐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졌다.
아데아체 경영진은 “조작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미심쩍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회원투표는 온라인과 우편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각각 서로 다른 곳에서 집계한 후 람슈테터 한 명에게만 보고됐다. 투표에 참여한 회원이 전체의 0.5%도 안 되는 속사정을 감추고 싶었던 그는 숫자를 그럴 듯하게 부풀려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통계를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며,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자료를 폐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명하려 해도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다만 2006년부터 총투표수 등 몇몇 숫자에 큰 변동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면 지금까지 수년간 통계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왜 ‘올해의 차’로 10년 동안 ‘독일 차’만 선정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득표수 조작 사건에는 아데아체와 독일 자동차업계의 상호이익이 맞물려 있다. 회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월간지 ‘모토벨트’는 아데아체 자회사 아데아체 출판사에서 발행하며 무료로 배송된다. 발행 부수도 1400만 부로 유럽 최대다. 자동차업계로부터 들어오는 엄청난 광고가 이 잡지를 먹여살린다. 업계도 이 잡지에 광고하면 곧바로 효과를 보는 장점이 있다. 람슈테터가 지난 16년 동안 이 잡지의 발행인이었다.
득표수 조작 사건에 이어 아데아체의 다른 부정도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원들은 긴급구조용 헬기를 업무용으로 혹은 사적으로 타고 다녔고, 어느 지역클럽 회장은 회비로 호화 빌라를 지은 후 임대 형식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매년 발표하는 자동차 고장 통계에서도 아데아체는 협력업체 차량에 관한 내용은 비공개로 했다. 유아 차량 시트, 타이어, 고속도로휴게소, 주차장, 차량 충돌 등 아데아체가 실시하는 수많은 품질 평가와 테스트도 조작 혐의가 짙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긴급출동 기술자들에게 바르타사 배터리를 팔라는 압력을 넣고 건당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 배터리는 동종 배터리보다 60유로 정도 더 비싸다. 이 모든 것은 공익을 표방하는, 정부지원금에 세금 혜택까지 받는 비영리법인 단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태로 밝혀진 아데아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사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1880만 회원을 보유한 이 클럽 총회에는 회장단 8명과 지역클럽 회장단 18명만 참여해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데, 총회는 비공개다. 이와 함께 직원들 불만도 터져 나왔다. “임원진이 너무 권위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파문의 당사자 람슈테터는 평소 버럭 하는 성격으로 직원들은 그를 ‘람보’라고 불렀다. 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직원 사이에서 페터 마이어 아데아체 회장에 대해서도 ‘권위적이고 뻔뻔스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권위적이고 뻔뻔스러운 경영진
독일 여론은 아데아체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한다. 경영 전문가는 “아데아체가 핵심 사업인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만 남기고 다른 영리사업은 분리 독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데아체 회원들은 이번 사태로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득표수 조작 사건 이후 회원 탈퇴가 평소보다 늘었지만, 탈퇴를 고려하는 회원은 7% 정도다. 아데아체 간부들의 부정에는 분개하지만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에는 만족과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회원인 데트레프 프랑케는 “30년 이상 회원이라 쉽게 떠나기는 힘들다. 개선하겠다고 하면 계속 머물면서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전 회원에서 탈퇴한 한스 틸레는 “다른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업체로 옮겼는데 만족한다”며 “규모나 명성보다 가격과 서비스를 비교해보라고 주변에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경찰보다 더 신뢰받았던 아데아체. 그 성공 요인은 질 좋은 서비스였다. 일요일 밤 영하 10도 추위에도 전화 한 통이면 천사처럼 달려오는 노란색 차량과 회색 작업복을 입은 친절한 기술자, 그리고 픽업, 견인, 렌터카가 전부 무료인 이 ‘노란 천사’의 타락에 독일인은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여기에 회원 1880만 명 덕에 생긴 힘을 소수 임원이 암암리에 행사해왔고 내부 문제, 각종 품질평가와 관련한 비리가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독일 사회가 큰 실망과 분노에 휩싸였다. 아데아체가 수여하는 상으로 치장해왔던 폴크스바겐,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 등 독일 자동차기업 역시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생겼다.
‘노란 천사’ 추락 사건은 내부자의 언론 제보로 시작됐다. 1월 14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매년 초 아데아체가 수여하는 자동차상 겔베엥겔(노란 천사라는 뜻) 가운데 아데아체 회원들이 뽑는 ‘독일인이 사랑한 올해의 차’ 부문의 득표수가 조작됐다”고 보도했다. 시상식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겔베엥겔은 자동차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상으로, 올해 10회째다. 독일 국민 4분의 1을 회원으로 확보한 막강한 단체가 주는 상인 만큼 시상식에는 자동차업계 유력 인사가 대거 참석해왔다. 이 상을 수여한 자동차 모델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어 차량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받았고 자동차기업의 이미지도 높아졌다.
이 신문이 입수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자동차 모델 후보 200여 종 가운데 ‘올해의 차’로 선정된 폴크스바겐 골프는 실제 3409표를 얻었지만 조작을 통해 10배 많은 3만4299표로 둔갑했다. 전체 투표 참여자가 29만 명이라는 것도 거짓으로, 실제 투표 참여자는 7만6000명에 불과했다. 투표수를 조작한 장본인은 아데아체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이자 회원잡지 ‘모토벨트’ 발행자인 미하엘 람슈테터(60)다.
자동차업계 오스카상 신뢰에 먹칠
아데아체 스캔들의 주인공 미하엘 람슈테터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그러나 시상식 다음 날 람슈테터는 경영진에게 e메일을 보내 득표수 조작을 자백하고 곧바로 사퇴했다. 그가 순위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내부 조사가 진행될수록 순위도 조작됐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졌다.
아데아체 경영진은 “조작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미심쩍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회원투표는 온라인과 우편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각각 서로 다른 곳에서 집계한 후 람슈테터 한 명에게만 보고됐다. 투표에 참여한 회원이 전체의 0.5%도 안 되는 속사정을 감추고 싶었던 그는 숫자를 그럴 듯하게 부풀려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통계를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으며,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자료를 폐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명하려 해도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다만 2006년부터 총투표수 등 몇몇 숫자에 큰 변동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면 지금까지 수년간 통계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왜 ‘올해의 차’로 10년 동안 ‘독일 차’만 선정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득표수 조작 사건에는 아데아체와 독일 자동차업계의 상호이익이 맞물려 있다. 회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월간지 ‘모토벨트’는 아데아체 자회사 아데아체 출판사에서 발행하며 무료로 배송된다. 발행 부수도 1400만 부로 유럽 최대다. 자동차업계로부터 들어오는 엄청난 광고가 이 잡지를 먹여살린다. 업계도 이 잡지에 광고하면 곧바로 효과를 보는 장점이 있다. 람슈테터가 지난 16년 동안 이 잡지의 발행인이었다.
득표수 조작 사건에 이어 아데아체의 다른 부정도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원들은 긴급구조용 헬기를 업무용으로 혹은 사적으로 타고 다녔고, 어느 지역클럽 회장은 회비로 호화 빌라를 지은 후 임대 형식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매년 발표하는 자동차 고장 통계에서도 아데아체는 협력업체 차량에 관한 내용은 비공개로 했다. 유아 차량 시트, 타이어, 고속도로휴게소, 주차장, 차량 충돌 등 아데아체가 실시하는 수많은 품질 평가와 테스트도 조작 혐의가 짙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긴급출동 기술자들에게 바르타사 배터리를 팔라는 압력을 넣고 건당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 배터리는 동종 배터리보다 60유로 정도 더 비싸다. 이 모든 것은 공익을 표방하는, 정부지원금에 세금 혜택까지 받는 비영리법인 단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태로 밝혀진 아데아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사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1880만 회원을 보유한 이 클럽 총회에는 회장단 8명과 지역클럽 회장단 18명만 참여해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데, 총회는 비공개다. 이와 함께 직원들 불만도 터져 나왔다. “임원진이 너무 권위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파문의 당사자 람슈테터는 평소 버럭 하는 성격으로 직원들은 그를 ‘람보’라고 불렀다. 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직원 사이에서 페터 마이어 아데아체 회장에 대해서도 ‘권위적이고 뻔뻔스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권위적이고 뻔뻔스러운 경영진
독일 여론은 아데아체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한다. 경영 전문가는 “아데아체가 핵심 사업인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만 남기고 다른 영리사업은 분리 독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데아체 회원들은 이번 사태로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득표수 조작 사건 이후 회원 탈퇴가 평소보다 늘었지만, 탈퇴를 고려하는 회원은 7% 정도다. 아데아체 간부들의 부정에는 분개하지만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에는 만족과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회원인 데트레프 프랑케는 “30년 이상 회원이라 쉽게 떠나기는 힘들다. 개선하겠다고 하면 계속 머물면서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전 회원에서 탈퇴한 한스 틸레는 “다른 차량 수리 긴급출동 서비스업체로 옮겼는데 만족한다”며 “규모나 명성보다 가격과 서비스를 비교해보라고 주변에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경찰보다 더 신뢰받았던 아데아체. 그 성공 요인은 질 좋은 서비스였다. 일요일 밤 영하 10도 추위에도 전화 한 통이면 천사처럼 달려오는 노란색 차량과 회색 작업복을 입은 친절한 기술자, 그리고 픽업, 견인, 렌터카가 전부 무료인 이 ‘노란 천사’의 타락에 독일인은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