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풍습에 ‘보쌈’이라는 게 있다. 비슷하게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 중동 등지에서도 신부를 유괴해 결혼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로 여성의 노동력이 중시되던 농경사회에서 비싼 ‘신부대’를 치러야 결혼할 수 있는 사회상과 맞물려 생겨났다.
그런데 인도 동부 비하르 주에서는 이와 반대로 10대 중·후반의 남성을 유괴해 딸과 강제로 결혼시키는 ‘신랑 유괴’가 성행하고 있다. 총을 비롯한 온갖 무기로 무장한 신부 측 사람들이 어둑해질 무렵 한적한 길에서 신랑 후보를 유괴해 집으로 끌고 온다. 그리고 그를 협박해 10대 초반의 어린 딸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게 한 뒤 신랑 집에 전갈을 넣는 것. ‘당신의 아들을 우리가 데리고 있는데 이미 우리 딸과 결혼시켰으니 결혼에 동의하면 집으로 보내주겠으나, 동의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식이다. 보통은 귀한 아들이 볼모로 잡힌 처지니 싫든 좋든 동의할 수밖에 없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 아들을 되찾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조사해보면 대부분 브라만 사제의 집전 하에 격식을 제대로 갖춰 결혼식을 올린 상태다. 결혼증명서까지 제출해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했으니, 아들을 유괴당한 쪽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 결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비하르 주 사람들은 아직도 브라만 사제가 집전하고 불의 신 ‘아그니’가 참석한 결혼식을 신성하다고 믿는 것은 물론, 이혼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기둥뿌리 뽑히는 지참금 관행 여전
비하르 주는 치안이 불안하고 공권력이 미약해 유괴를 비롯한 각종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결혼 목적의 유괴가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2009년 1, 2월에 76건씩 기록했던 결혼 유괴가 3월부터 100건을 넘어섰고, 7월엔 163건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꾸준히 매달 120~130건이 발생하고 있다. 인구 8300만여 명인 비하르 주에서 이 정도면 적지 않은 수치다. 더구나 이 통계는 경찰에 신고한 건수만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신랑 유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유괴가 특히 많이 일어나는 비하르 주 나우다 지역의 한 유지는 시사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마을 결혼의 90% 이상은 신랑 유괴로 이뤄진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하르 주에서 신랑 유괴가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부 유괴와 같은 이유다. 즉 남성이 내야 하는 신부대가 부담스러운 지역에서 여성을 유괴해 결혼했듯, 신부 지참금이 과다한 인도에서는 남성을 유괴하는 일이 빈번한 것. ‘다우리’라 부르는 신부 지참금은 인도에서도 비하르가 포함된 북부지역에서 특히 과다하다. 웬만한 가정의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평생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 하나 시집보내려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렇게 거액을 들여 딸 혼사를 치르다 보니, 아들 결혼 때 그 이상으로 받아내기 위해 기를 쓴다.
다우리는 결혼 전이나 후에도 여성에게 족쇄다. 결혼 전엔 집안의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부모와 남자 형제에게 죄인이 된다. 결혼 후엔 풍족하게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 가족들에게 죄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선 신랑 측에서 사업자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다우리를 요구한다. 결혼 시 만족할 만한 액수의 다우리를 받지 못한 신랑 가족들은 신부를 압박하며 계속 돈을 요구하다가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기도 한다. 보고된 신부 살해 건수만 한 해에 6787건(2005년 인도 정부기관 통계)에 달한다. 인도의 인권 관련 단체에서는 이보다 2~3배 많다고 추정한다.
이런 다우리 풍속 탓에 일단 신랑을 인질로 잡고 결혼식까지 마친 다음 다우리 협상을 벌이면, 일반적인 중매결혼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마음에 드는 청년을 사위로 맞이할 수 있다. 혼약이 돼 있지 않은 신랑 후보 중 반듯한 청년을 찾으려다 보니 유괴당하는 남성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또 유괴를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아들을 점점 더 어린 나이에 결혼시키려고 안달이다. 안 그래도 조혼 풍습이 있는 인도 촌락에서는 열 살이 갓 넘은 아이가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린 부부는 결혼한 상태로 각자의 집에서 지내다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남편 집에서 함께 산다.
어린 남학생들 “학교 가기 두려워”
그런데 신랑을 유괴해 결혼하면 훗날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신부에게 신랑 가족들이 보복을 하지는 않을까? 다우리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고 죽이기까지 하는 마당에 신랑을 유괴해 적은 액수의 다우리로 결혼한 신부가 혹 고통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신랑 유괴 결혼은 다우리로 인한 신부의 고통까지 해결해준다. 애초 신랑을 유괴할 때 완력과 총 같은 무기를 동원하고 브라만 사제와 경찰, 법원 등의 공무원을 매수해야 한다. 즉, 신랑을 유괴해 딸을 결혼시킨 것 자체가 ‘힘 있는 집안’이라는 상징이다. 강력한 배경을 가진 신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더 무서운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신랑 가족의 두려움 때문에 신부는 오히려 더 편한 시집살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비하르에서 신랑 유괴가 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될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엄연한 범죄인 신랑 유괴를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도 사람이 많다. 특히 북인도 지방에서 다우리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신랑 유괴를 그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결혼 당사자들에게 유괴 결혼은 중매 결혼과 다를 바 없다. 신랑이 유괴되고 협박, 회유를 당했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치는 일은 거의 없다. 신랑과 신부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한다는 점에서 중매 결혼과 같다.
나날이 늘어나는 신랑 유괴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게 비하르 주의 현실이다. 어린 남학생들이 학교 가기가 두렵다고 호소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이 다우리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버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노동력과 출산 능력을 중요시함으로써, 여성을 지참금을 챙겨 시집보내야 할 정도의 짐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인도 동부 비하르 주에서는 이와 반대로 10대 중·후반의 남성을 유괴해 딸과 강제로 결혼시키는 ‘신랑 유괴’가 성행하고 있다. 총을 비롯한 온갖 무기로 무장한 신부 측 사람들이 어둑해질 무렵 한적한 길에서 신랑 후보를 유괴해 집으로 끌고 온다. 그리고 그를 협박해 10대 초반의 어린 딸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게 한 뒤 신랑 집에 전갈을 넣는 것. ‘당신의 아들을 우리가 데리고 있는데 이미 우리 딸과 결혼시켰으니 결혼에 동의하면 집으로 보내주겠으나, 동의하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식이다. 보통은 귀한 아들이 볼모로 잡힌 처지니 싫든 좋든 동의할 수밖에 없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내 아들을 되찾으려는 경우도 있지만, 조사해보면 대부분 브라만 사제의 집전 하에 격식을 제대로 갖춰 결혼식을 올린 상태다. 결혼증명서까지 제출해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했으니, 아들을 유괴당한 쪽에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 결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비하르 주 사람들은 아직도 브라만 사제가 집전하고 불의 신 ‘아그니’가 참석한 결혼식을 신성하다고 믿는 것은 물론, 이혼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전통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기둥뿌리 뽑히는 지참금 관행 여전
비하르 주는 치안이 불안하고 공권력이 미약해 유괴를 비롯한 각종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결혼 목적의 유괴가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2009년 1, 2월에 76건씩 기록했던 결혼 유괴가 3월부터 100건을 넘어섰고, 7월엔 163건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꾸준히 매달 120~130건이 발생하고 있다. 인구 8300만여 명인 비하르 주에서 이 정도면 적지 않은 수치다. 더구나 이 통계는 경찰에 신고한 건수만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신랑 유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유괴가 특히 많이 일어나는 비하르 주 나우다 지역의 한 유지는 시사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마을 결혼의 90% 이상은 신랑 유괴로 이뤄진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하르 주에서 신랑 유괴가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부 유괴와 같은 이유다. 즉 남성이 내야 하는 신부대가 부담스러운 지역에서 여성을 유괴해 결혼했듯, 신부 지참금이 과다한 인도에서는 남성을 유괴하는 일이 빈번한 것. ‘다우리’라 부르는 신부 지참금은 인도에서도 비하르가 포함된 북부지역에서 특히 과다하다. 웬만한 가정의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평생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 하나 시집보내려면 기둥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렇게 거액을 들여 딸 혼사를 치르다 보니, 아들 결혼 때 그 이상으로 받아내기 위해 기를 쓴다.
다우리는 결혼 전이나 후에도 여성에게 족쇄다. 결혼 전엔 집안의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부모와 남자 형제에게 죄인이 된다. 결혼 후엔 풍족하게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 가족들에게 죄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선 신랑 측에서 사업자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다우리를 요구한다. 결혼 시 만족할 만한 액수의 다우리를 받지 못한 신랑 가족들은 신부를 압박하며 계속 돈을 요구하다가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기도 한다. 보고된 신부 살해 건수만 한 해에 6787건(2005년 인도 정부기관 통계)에 달한다. 인도의 인권 관련 단체에서는 이보다 2~3배 많다고 추정한다.
이런 다우리 풍속 탓에 일단 신랑을 인질로 잡고 결혼식까지 마친 다음 다우리 협상을 벌이면, 일반적인 중매결혼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마음에 드는 청년을 사위로 맞이할 수 있다. 혼약이 돼 있지 않은 신랑 후보 중 반듯한 청년을 찾으려다 보니 유괴당하는 남성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또 유괴를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아들을 점점 더 어린 나이에 결혼시키려고 안달이다. 안 그래도 조혼 풍습이 있는 인도 촌락에서는 열 살이 갓 넘은 아이가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린 부부는 결혼한 상태로 각자의 집에서 지내다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남편 집에서 함께 산다.
어린 남학생들 “학교 가기 두려워”
그런데 신랑을 유괴해 결혼하면 훗날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신부에게 신랑 가족들이 보복을 하지는 않을까? 다우리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았다고 죽이기까지 하는 마당에 신랑을 유괴해 적은 액수의 다우리로 결혼한 신부가 혹 고통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신랑 유괴 결혼은 다우리로 인한 신부의 고통까지 해결해준다. 애초 신랑을 유괴할 때 완력과 총 같은 무기를 동원하고 브라만 사제와 경찰, 법원 등의 공무원을 매수해야 한다. 즉, 신랑을 유괴해 딸을 결혼시킨 것 자체가 ‘힘 있는 집안’이라는 상징이다. 강력한 배경을 가진 신부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더 무서운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신랑 가족의 두려움 때문에 신부는 오히려 더 편한 시집살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비하르에서 신랑 유괴가 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될 법도 하다.
그래서인지 엄연한 범죄인 신랑 유괴를 관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도 사람이 많다. 특히 북인도 지방에서 다우리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신랑 유괴를 그 반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결혼 당사자들에게 유괴 결혼은 중매 결혼과 다를 바 없다. 신랑이 유괴되고 협박, 회유를 당했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치는 일은 거의 없다. 신랑과 신부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한다는 점에서 중매 결혼과 같다.
나날이 늘어나는 신랑 유괴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게 비하르 주의 현실이다. 어린 남학생들이 학교 가기가 두렵다고 호소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이 다우리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버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노동력과 출산 능력을 중요시함으로써, 여성을 지참금을 챙겨 시집보내야 할 정도의 짐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