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울산의대 소아심장과 교수
제 식구 감싸기는 그만 자신에게 메스를 대라!
최근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교사 정보는 교육 소비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다. 한 개인과 국가의 미래는 교육의 어깨에 달렸고, 부모는 교사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며 같은 맥락에서 의료 정보 공개를 생각했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도 건강과 생명을 맡길 의사에 대해 알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대학병원 의사는 지인들로부터 좋은 의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또 담당의사 실력이 훌륭한지, 지금 받는 치료가 올바른지에 대한 문의도 비일비재하다. 모든 환자가 최상의 진료를 원하지만 주치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명의 시리즈’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나오지만, 이조차 허점이 많다. 의료인에 대한 이런 불신은 몇몇 이유에서 기인한다. 환자들이 의료전문가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각종 의료계 비리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는 탓이 크다. 심지어 성폭행을 일삼은 인면수심의 의사가 받은 징계 결과도 알려진 바가 없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책임은 의사뿐 아니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도 있다. 현재 의료계의 뜨거운 쟁점은 ‘리베이트 쌍벌제’다. 어떤 상황에서든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의협은 이 법안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준 제약회사만 처벌하고, 받은 의사는 처벌하지 말라는 것인가. 의협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는 위기다. 쌍벌제 법안 외에도 수많은 현안이 쌓여 있다. 그중 몇 개만 나열하면 이렇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의료서비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보험 수가, 고가의 신약 및 장비로 인한 의료비 급증에 못 미치는 의료보험 재정, 한의학과 현대의학으로 이원화된 의료제도, 사이비 의료의 범람, 모순투성이 의학전문대학원제도 등. 무엇보다 ‘의사집단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이기적인 범죄집단’이라는 정부와 국민의 왜곡된 시각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편견이 깔린 상황에서 어느 문제 하나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도덕성부터 재무장해야 한다. 정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의사로만 구성된 의협 윤리위원회에 맡겨서도 안 된다. 민관합동으로 공공성, 투명성, 독립성이 보장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해 검증작업을 거쳐 결과를 국민에게 명명백백히 공개해야 한다.
미국은 주마다 독립기구인 의사면허국이 있다. 여기서는 해당 주 소속 모든 의사에게 2~5년마다 진료 허가증을 내주고 활동 결과를 주민들에게 알린다. 인터넷 사이트인 ‘Texas Medical Board Newsletter’를 보면 모든 사람에게 정보가 공개돼 있다. 징계를 받은 의사 이름, 면허번호, 지역, 불법 또는 비윤리적 행위의 구체적 기술, 벌금 액수, 면허 정지 또는 취소 기간, 윤리교육 명령 여부 등을 소상히 확인할 수 있다.
징계를 받은 의사의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항의는 애초 엄두도 낼 수 없다. 모든 심의절차가 원칙과 규정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징계사유도 다양하다. 간단한 언어폭력부터 마약복용까지, 매 사안에 대한 징계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고 꼼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뿐 아니라 의사의 학력, 경력, 업적, 가입단체, 전공분야 등도 상세히 알 수 있어 환자가 손쉽게 원하는 의사를 찾을 수 있다. 기관의 심의위원회는 각종 의료인 절반, 변호사 절반, 그리고 정부 관리, 시민단체, 기업 대표 등 다양한 인물로 구성된다.
우리도 이런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지금처럼 의사끼리 감시하는 것은 제 식구 감싸기를 면하기 어렵다. 진화론에서 살아남은 종은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라고 했다.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모두 보장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의사단체와 정부가 결단을 내릴 때다.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의사단체의 강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인숙 울산의대 소아심장과 교수 ispark@amc.seoul.kr
김철환 인제대 가정의학과 교수
의료인 철저한 윤리의식 국민이 지켜본다
필자는 친척 가운데 의사가 많다. 4촌 이내만 봐도 6명이 현직 의사다. 의대 시절부터 군의관, 전공의, 의대 교수를 거치며 많은 의사와 함께 일하고 교류해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주변을 보면 고상하고 실력 있고 환자를 위해 희생하는 좋은 의사가 많은데, 언론에서는 나쁜 의사 일색이다. 부동산 투기, 마약, 성범죄 등 각종 비리에 의사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의사가 의협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협의 최초 징계는 2002년에 있었다. 당시 의협 윤리위원회는 “의약분업을 주도해 의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와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에게 각각 2년, 1년의 ‘회원 권리 정지처분’을 내렸다. 온갖 비리에도 조용하던 의협이 두 교수를 처음으로 징계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원권리 정지처분 무효확인 소송 및 명예훼손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한 뒤 2004년 대법원으로부터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회원 권리 정지를 철회하라”는 최종판결을 얻었다. 이로 인해 의협은 두 교수에게 배상금과 소송비용 수천만 원을 지급해야 했다. 대한민국 의사는 법적으로 의협 회원이 돼야 하고, 연 수십만 원의 회비도 내야 한다. 그러니 의협이 싫다고 탈퇴할 수도, 회비를 안 낼 수도 없다. 그렇게 거둔 돈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거나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쓰고 있다.
어떤 조직이건 자정능력이 없으면 외부로부터 공격과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금의 검찰과 경찰이 그런 상황이다. 스스로 문제를 고치지 못하니 외부에서 개입한 것이다. 의협의 지난 수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초기에 그만두더니, 현 수장은 돈세탁 혐의로 시민단체의 고발에 직면해 있다.
1억 원이라는 거액이 개인구좌로 입금되고, 문제가 되니 돌려주는 일을 눈감아줄 국민이 있을까. 의협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특정 정당을 지원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원했다가 그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새 정부와 관계가 어색했던 적도 있다. 의협은 좋은 의료정책을 정치권에 홍보하거나 의사의 권익을 높이는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면허제도를 통해 의료에서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은 의사들이 국민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탈법행위를 하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의 독점적 권한에 준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행동이 없으면 의협의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의협을 비롯한 다양한 의사 단체의 임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비하하거나 정부와 시민단체가 문제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의사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누리는 혜택은 말하지 않는다. 의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감정을 잠시 잊고서 발언을 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사회주의제도라고 색깔론을 펴기도 하고, 의료보험 수가 때문에 의료기관이 모두 망하게 됐다는 등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주장을 편다. 과연 우리 의료제도가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현재 의사들은 우월한 지위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건강은 경제와 함께 전 국민의 관심사다. 국민은 자신들의 건강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사를 완벽히 믿지는 못한다. 의사의 권고가 타당성이 있는지, 숨겨진 의도는 없는지 의심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큰 병원,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몰린다. 그러니 국민의료 디딤돌인 1차 의료는 약화되고,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소병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되는 것이다.
한국 의사들은 미국 의사들의 수입과 진료 수준, 삶의 질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미국 의사들이 이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왕진을 다녔던 역사도 알아야 한다. 그들도 시행착오와 인내를 거쳐 현재의 권리와 혜택, 신뢰를 얻었다.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은 자유방임적 의료제도로 많은 미국인과 기업이 고통받는 현실이다. 국민의료법이 통과됐지만 미국이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한국 의사들이 사회주의 의료라 폄하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는 보편적 복지의 중심축이 됐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이후 병원산업이 더욱 번창했고, 국민과 의사가 그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의료제도와 의료문화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이 그렇듯 의료제도도 개선할 점이 많다. 진찰료를 비롯한 보험 수가는 원가의 80% 수준이다. 원칙대로 진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도 있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어 양심껏 진료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의협이 소리 높여 주장해도 별 소득이 없다. 의협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희생과 반성을 거쳐 의협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집단이 되길 바란다.
김철환 인제대 가정의학과 교수 fmmother@freechal.com
제 식구 감싸기는 그만 자신에게 메스를 대라!
최근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교사 정보는 교육 소비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다. 한 개인과 국가의 미래는 교육의 어깨에 달렸고, 부모는 교사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며 같은 맥락에서 의료 정보 공개를 생각했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도 건강과 생명을 맡길 의사에 대해 알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대학병원 의사는 지인들로부터 좋은 의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또 담당의사 실력이 훌륭한지, 지금 받는 치료가 올바른지에 대한 문의도 비일비재하다. 모든 환자가 최상의 진료를 원하지만 주치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명의 시리즈’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나오지만, 이조차 허점이 많다. 의료인에 대한 이런 불신은 몇몇 이유에서 기인한다. 환자들이 의료전문가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각종 의료계 비리의 전말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는 탓이 크다. 심지어 성폭행을 일삼은 인면수심의 의사가 받은 징계 결과도 알려진 바가 없다.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책임은 의사뿐 아니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도 있다. 현재 의료계의 뜨거운 쟁점은 ‘리베이트 쌍벌제’다. 어떤 상황에서든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위법이다. 하지만 의협은 이 법안을 반대한다.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준 제약회사만 처벌하고, 받은 의사는 처벌하지 말라는 것인가. 의협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는 위기다. 쌍벌제 법안 외에도 수많은 현안이 쌓여 있다. 그중 몇 개만 나열하면 이렇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의료서비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보험 수가, 고가의 신약 및 장비로 인한 의료비 급증에 못 미치는 의료보험 재정, 한의학과 현대의학으로 이원화된 의료제도, 사이비 의료의 범람, 모순투성이 의학전문대학원제도 등. 무엇보다 ‘의사집단은 자정능력을 상실한 이기적인 범죄집단’이라는 정부와 국민의 왜곡된 시각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편견이 깔린 상황에서 어느 문제 하나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도덕성부터 재무장해야 한다. 정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의사로만 구성된 의협 윤리위원회에 맡겨서도 안 된다. 민관합동으로 공공성, 투명성, 독립성이 보장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해 검증작업을 거쳐 결과를 국민에게 명명백백히 공개해야 한다.
미국은 주마다 독립기구인 의사면허국이 있다. 여기서는 해당 주 소속 모든 의사에게 2~5년마다 진료 허가증을 내주고 활동 결과를 주민들에게 알린다. 인터넷 사이트인 ‘Texas Medical Board Newsletter’를 보면 모든 사람에게 정보가 공개돼 있다. 징계를 받은 의사 이름, 면허번호, 지역, 불법 또는 비윤리적 행위의 구체적 기술, 벌금 액수, 면허 정지 또는 취소 기간, 윤리교육 명령 여부 등을 소상히 확인할 수 있다.
징계를 받은 의사의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항의는 애초 엄두도 낼 수 없다. 모든 심의절차가 원칙과 규정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징계사유도 다양하다. 간단한 언어폭력부터 마약복용까지, 매 사안에 대한 징계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고 꼼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뿐 아니라 의사의 학력, 경력, 업적, 가입단체, 전공분야 등도 상세히 알 수 있어 환자가 손쉽게 원하는 의사를 찾을 수 있다. 기관의 심의위원회는 각종 의료인 절반, 변호사 절반, 그리고 정부 관리, 시민단체, 기업 대표 등 다양한 인물로 구성된다.
우리도 이런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 지금처럼 의사끼리 감시하는 것은 제 식구 감싸기를 면하기 어렵다. 진화론에서 살아남은 종은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라고 했다.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모두 보장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의사단체와 정부가 결단을 내릴 때다.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의사단체의 강한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인숙 울산의대 소아심장과 교수 ispark@amc.seoul.kr
김철환 인제대 가정의학과 교수
의료인 철저한 윤리의식 국민이 지켜본다
필자는 친척 가운데 의사가 많다. 4촌 이내만 봐도 6명이 현직 의사다. 의대 시절부터 군의관, 전공의, 의대 교수를 거치며 많은 의사와 함께 일하고 교류해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주변을 보면 고상하고 실력 있고 환자를 위해 희생하는 좋은 의사가 많은데, 언론에서는 나쁜 의사 일색이다. 부동산 투기, 마약, 성범죄 등 각종 비리에 의사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의사가 의협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협의 최초 징계는 2002년에 있었다. 당시 의협 윤리위원회는 “의약분업을 주도해 의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와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에게 각각 2년, 1년의 ‘회원 권리 정지처분’을 내렸다. 온갖 비리에도 조용하던 의협이 두 교수를 처음으로 징계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원권리 정지처분 무효확인 소송 및 명예훼손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한 뒤 2004년 대법원으로부터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회원 권리 정지를 철회하라”는 최종판결을 얻었다. 이로 인해 의협은 두 교수에게 배상금과 소송비용 수천만 원을 지급해야 했다. 대한민국 의사는 법적으로 의협 회원이 돼야 하고, 연 수십만 원의 회비도 내야 한다. 그러니 의협이 싫다고 탈퇴할 수도, 회비를 안 낼 수도 없다. 그렇게 거둔 돈을 이런 식으로 낭비하거나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쓰고 있다.
어떤 조직이건 자정능력이 없으면 외부로부터 공격과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금의 검찰과 경찰이 그런 상황이다. 스스로 문제를 고치지 못하니 외부에서 개입한 것이다. 의협의 지난 수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초기에 그만두더니, 현 수장은 돈세탁 혐의로 시민단체의 고발에 직면해 있다.
1억 원이라는 거액이 개인구좌로 입금되고, 문제가 되니 돌려주는 일을 눈감아줄 국민이 있을까. 의협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특정 정당을 지원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원했다가 그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새 정부와 관계가 어색했던 적도 있다. 의협은 좋은 의료정책을 정치권에 홍보하거나 의사의 권익을 높이는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면허제도를 통해 의료에서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은 의사들이 국민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탈법행위를 하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의 독점적 권한에 준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행동이 없으면 의협의 자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의협을 비롯한 다양한 의사 단체의 임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현재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비하하거나 정부와 시민단체가 문제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의사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누리는 혜택은 말하지 않는다. 의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감정을 잠시 잊고서 발언을 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사회주의제도라고 색깔론을 펴기도 하고, 의료보험 수가 때문에 의료기관이 모두 망하게 됐다는 등 국민 감정과 동떨어진 주장을 편다. 과연 우리 의료제도가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현재 의사들은 우월한 지위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건강은 경제와 함께 전 국민의 관심사다. 국민은 자신들의 건강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사를 완벽히 믿지는 못한다. 의사의 권고가 타당성이 있는지, 숨겨진 의도는 없는지 의심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국민들은 더 큰 병원,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몰린다. 그러니 국민의료 디딤돌인 1차 의료는 약화되고,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소병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되는 것이다.
2002년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의약분업 정책 철폐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필자는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의료제도와 의료문화를 바꾸는 운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이 그렇듯 의료제도도 개선할 점이 많다. 진찰료를 비롯한 보험 수가는 원가의 80% 수준이다. 원칙대로 진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도 있고,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어 양심껏 진료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의협이 소리 높여 주장해도 별 소득이 없다. 의협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희생과 반성을 거쳐 의협이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집단이 되길 바란다.
김철환 인제대 가정의학과 교수 fmmother@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