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리톨 대학 학생회관 건물 앞의 대학생들.
케임브리지는 대학 도시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 비교해 방세가 꽤 비싼 편이다. 방 1개를 빌려 자취생활을 하는 폴은 50만원을 한 달 방세로 내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 15시간을 일해 한 달에 버는 돈은 60만원 정도. 방세를 내고 나면 기본적인 식비도 부족하다. 그래도 같은 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른 친구와 비교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다. 몇몇 친구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땅한 일자리도 없어
케임브리지는 인구 10만명에 그치는 대학 도시라 학생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 폴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부럽기만 하다. 이 친구는 학교에서 재정 지원을 자주 받아 학기 중에는 일을 하지 않고 공부한다. 폴은 상대적 박탈감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폴처럼 영국 대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공부하고 일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일간지 ‘더 타임스’의 자매지인 ‘더 타임스대학신문’이 최근 30개 대학에 재학 중인 200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 대학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한 결과 학기 중에 일을 하는 대학생이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분의 1이 일주일에 평균 11시간에서 15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16시간에서 20시간을 일하는 학생도 24%나 됐다. 1997년 5월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뒤 그 해 9월부터 대학생에게 등록금을 납부하게 했다. 또 대학생에 대한 정부의 생활비 지원을 폐지했다. 이때부터 공부하면서 일하는 학생의 비율이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 40%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상당수 학생들의 생활은 곤궁하기만 하다.
10명 중 3명꼴로 일주일에 방세를 제외하고 쓰는 용돈이 겨우 8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돈으로는 식사를 해결하고 책 한 권을 사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영국의 평균 물가는 서울과 비교해 약 2배 비싸다. 18살부터 24살까지의 실업자가 일주일에 받는 수당이 약 8만7000원, 25살이 넘은 실업자가 11만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많은 대학생이 쓰는 용돈이 실업자 수당보다 적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구나 10% 정도는 일주일에 2만원도 채 되지 않는 용돈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선술집이나 맥도널드 같은 가게에서 일하고, 1시간에 1만원 정도를 받는다. 어쩌다 운이 좋아 교수의 연구를 도와주거나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면 보수가 괜찮지만 이런 기회는 아주 제한돼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전체 대학생의 4분의 1이 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에 입학하면 학생들은 부모한테서 독립하고, 이를 위해 다른 지방에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재정적으로 곤궁해진 뒤 독립 비중이 줄어들어 대학생의 25%가 부모집에서 살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전경
대학 1학년생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한 중년의 어머니는 “딸을 집에서 쫓아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직장인처럼 통학 하는 게 어쩐지 보기 좋지 않다”며 “딸아이가 대학교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고, 대부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보다 아직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학생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68%의 학생이 정부가 장기저리로 빌려주는 학자금 융자를 받아 공부하고 있고, 또 절반 정도는 부모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돈을 임시변통하고 이것도 부족해 학기 중에 일하는 학생들도 많다.
전체 4분의 1 부모집에서 기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업 전경.
케임브리지에서 발간되는 대학신문 ‘더 바서티’의 최근 보도를 보면 학생들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케임브리지 재학생의 상당수가 방세를 제외하고 용돈으로 일주일에 적게는 16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을 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전국 대학생 가운데 이 정도 용돈을 쓰는 사람은 10% 남짓이다. 특히 해마다 6월 초 시험이 끝나면 각 단과대학에서 축제를 개최한다. 웬만한 축제 참가비가 10만원이 넘는다. 유명한 한 단과대학의 경우 40만원 정도를 내면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파리를 방문, 최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관광을 하기도 한다. 또는 자그마한 실개천 캠강에서 밤중에 떼를 지어 뱃놀이를 하며 젊음을 불태우는 장면도 흔하다. 이런 학생들이 하루 이틀에 쓰는 돈이 웬만한 대학생의 일주일 용돈보다 더 많다.
문제는 이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06년 가을에 입학하는 학생은 지금보다 최고 3배 정도 많은 약 600만원의 학비를 내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학기 중에 일을 하는 학생의 비율이 더 늘어나게 될 게 분명하다. 물론 명문대학은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 대해 전국학생연맹의 맨디 텔포드 회장은 “일반인은 대학생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팔자 편하게 앉아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1997년부터 등록금 납부가 시작된 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일하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나 영국이나 대학생활이 낭만과 동일시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