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밥솥이 터졌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런데 서비스센터 사람들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내 실수로 사고가 난 건지, 아니면 밥솥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죠. 나중에 LG전자에 다니는 친구가 ‘그 밥솥이 리콜 대상이었다’고 말해 비로소 사실을 알았어요.”
제주도에 사는 주부 이모씨(32)는 요즘 뉴스에서 압력밥솥 폭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난 1월 겪은 끔찍한 사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임신 9개월이던 이씨는 평소처럼 압력밥솥에 쌀을 안쳐둔 채 옆에 서서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솥이 폭발하며 증기와 밥알이 솟아오른 것. 삽시간에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은 이씨는 충격을 받아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당시 이씨가 사용한 솥은 2003년 2월 구입한 LG전자의 P-M시리즈 압력밥솥. 최근 잇따라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모델이다. 2003년 7월부터 제작결함으로 인한 리콜이 실시되고 있었지만 이씨는 사고 뒤에도 한동안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리점에 연락처 알렸는데도 리콜 통보 못 받아
최근 LG전자가 이 압력밥솥의 결함을 밝히며 소비자들에게 5만원을 지급하는 ‘보상적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상 밥솥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3월 사이에 생산된 P-M시리즈 6만1889대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4월 사이에 제조된 P-Q시리즈 8310대 등 총 7만199대. 5월 들어 이 모델들의 폭발사고가 빈발한 탓이다.
LG전자 관계자는 “P-M시리즈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P-Q시리즈는 올 5월 초부터 이미 리콜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확산되고 있다. 제조사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보상적 리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LG전자가 리콜 초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리콜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피해를 당한 이씨는 “사고 당시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혹시 내 실수로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이었다”며 “밥솥 폭발 원인이 제품 자체 결함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허탈했다”고 털어놓았다.
LG전자가 ‘5만원 보상 리콜’을 발표하기 전인 5월19일 밥솥 폭발사고를 겪은 경기 포천시 신동면 정모씨(30)도 “서비스센터 사람들이 리콜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떻게든 적당히 무마하려는 듯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가 난 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자 사과는커녕 대뜸 “모델명이 뭐냐? 지금 다른 곳에서 수리 중이라 늦겠다”고 하더니 2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집에 도착했다는 것. 그동안 정씨는 사고 원인조차 모른 채 꼼짝없이 서비스를 기다려야 했다. 정씨는 2003년 4월 밥솥을 사면서 대리점에 주소와 연락처까지 남겼지만 사고가 날 때까지 리콜에 대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갓 두 달 된 아이는 밥솥 터지는 소리에 놀라 경기를 일으켰어요. 그런데 느릿느릿 집에 와서 제품을 수거해가고는 그걸로 끝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정씨는 LG전자 측이 오후쯤 전화를 걸어와 직접 대리점에 와서 다른 밥솥을 가져가라고 했다며 “내 잘못으로 밥솥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가서 다른 걸 받아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5월17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경남 창원시 대방동의 황모씨(28)도 LG계열사 판매점에서 밥솥을 사면서 구매기록을 남겼지만 리콜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리콜을 받았지만 그것이 리콜인지조차 몰랐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제가 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네티즌 ‘진실한 나’는 다음 게시판에 “작년에 LG전자에서 불쑥 전화가 와 압력밥솥의 내부 솥을 더 좋은 것으로 바꿔주겠다며 솥을 교체해갔다. 다음에도 취사할 때마다 터질 것 같은 소리가 나서 LG에 전화를 했더니 아무 말 없이 또 부속품을 갈아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리콜을 한 거였다. 이 제품을 쓰기가 너무 무서운데 아예 바꿀 수는 없나”라는 글을 올렸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은 자발적 리콜을 실시할 경우 사업자가 ‘제품 결함의 내용, 결함으로 인한 위험 및 주의사항’ 등을 소비자와 유통업자에게 알리도록 돼 있다.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2곳 이상의 중앙일간지 1면에서 5면 사이에 내용을 실어 소비자와 유통업자들이 리콜 사실을 알고 적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LG 측은 이러한 소비자보호법상의 조항을 모두 지켰다고 강변하지만, 상당수 소비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
리콜 진행 중에도 홈쇼핑서 문제의 밥솥 판매
심지어 리콜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대형 홈쇼핑을 통해 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도 있다. 올 4월 I홈쇼핑에서 LG전자 P-M시리즈 압력밥솥을 구입했다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정모씨(35)는 “당시 이 밥솥은 쇼핑몰의 추천상품 코너에 올라와 있었고, 제품 결함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듣고 혹시나 싶어 서비스센터에 문의해보니 리콜 대상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리콜이 진행 중이었다는데, 어떻게 문제 있는 상품이 버젓이 팔리게 내버려뒀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나”라며 분노했다. 그 시기에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을 알리는 ‘추천상품’ 코너에 이 제품이 올라 있었다면 정씨 외에도 리콜 시작 뒤 문제가 있는 밥솥을 구입한 이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LG전자 관계자는 “리콜을 시작한 뒤 유통업체에 바로 이를 통보했고, 중앙일간지에 광고도 냈다. 전국의 서비스센터 기사들에게는 다른 가전제품을 수리하러 가정을 방문할 때라도 꼭 밥솥을 살펴서 리콜 대상 모델이면 내솥 교체를 유도하라는 특별교육을 시켰다. 직원들까지 총동원해 리콜 사실을 적극 홍보했는데 ‘숨기려고 하다 사태가 확산됐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제조물 책임법 관련 소송 전문 변호인인 백현기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리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LG 사건의 경우에도 제조사의 부주의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서라면 엄청난 소송에 휘말렸을 것”이라며 “이제 우리 제조사들도 소비자들을 두려워하고 제품 결함이 나타났을 경우 이를 숨기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도에 사는 주부 이모씨(32)는 요즘 뉴스에서 압력밥솥 폭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난 1월 겪은 끔찍한 사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임신 9개월이던 이씨는 평소처럼 압력밥솥에 쌀을 안쳐둔 채 옆에 서서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솥이 폭발하며 증기와 밥알이 솟아오른 것. 삽시간에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은 이씨는 충격을 받아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당시 이씨가 사용한 솥은 2003년 2월 구입한 LG전자의 P-M시리즈 압력밥솥. 최근 잇따라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모델이다. 2003년 7월부터 제작결함으로 인한 리콜이 실시되고 있었지만 이씨는 사고 뒤에도 한동안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리점에 연락처 알렸는데도 리콜 통보 못 받아
최근 LG전자가 이 압력밥솥의 결함을 밝히며 소비자들에게 5만원을 지급하는 ‘보상적 리콜’을 실시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상 밥솥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3월 사이에 생산된 P-M시리즈 6만1889대와 2002년 11월부터 2003년 4월 사이에 제조된 P-Q시리즈 8310대 등 총 7만199대. 5월 들어 이 모델들의 폭발사고가 빈발한 탓이다.
LG전자 관계자는 “P-M시리즈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P-Q시리즈는 올 5월 초부터 이미 리콜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이 제품을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확산되고 있다. 제조사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보상적 리콜’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LG전자가 리콜 초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리콜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피해를 당한 이씨는 “사고 당시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혹시 내 실수로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이었다”며 “밥솥 폭발 원인이 제품 자체 결함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허탈했다”고 털어놓았다.
LG전자가 ‘5만원 보상 리콜’을 발표하기 전인 5월19일 밥솥 폭발사고를 겪은 경기 포천시 신동면 정모씨(30)도 “서비스센터 사람들이 리콜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떻게든 적당히 무마하려는 듯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가 난 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자 사과는커녕 대뜸 “모델명이 뭐냐? 지금 다른 곳에서 수리 중이라 늦겠다”고 하더니 2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집에 도착했다는 것. 그동안 정씨는 사고 원인조차 모른 채 꼼짝없이 서비스를 기다려야 했다. 정씨는 2003년 4월 밥솥을 사면서 대리점에 주소와 연락처까지 남겼지만 사고가 날 때까지 리콜에 대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갓 두 달 된 아이는 밥솥 터지는 소리에 놀라 경기를 일으켰어요. 그런데 느릿느릿 집에 와서 제품을 수거해가고는 그걸로 끝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정씨는 LG전자 측이 오후쯤 전화를 걸어와 직접 대리점에 와서 다른 밥솥을 가져가라고 했다며 “내 잘못으로 밥솥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가서 다른 걸 받아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5월17일 폭발사고가 발생한 경남 창원시 대방동의 황모씨(28)도 LG계열사 판매점에서 밥솥을 사면서 구매기록을 남겼지만 리콜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
압력 밥솥 폭발사고가 잇따르자 LG전자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압력솥의 안전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현행 소비자보호법은 자발적 리콜을 실시할 경우 사업자가 ‘제품 결함의 내용, 결함으로 인한 위험 및 주의사항’ 등을 소비자와 유통업자에게 알리도록 돼 있다.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2곳 이상의 중앙일간지 1면에서 5면 사이에 내용을 실어 소비자와 유통업자들이 리콜 사실을 알고 적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LG 측은 이러한 소비자보호법상의 조항을 모두 지켰다고 강변하지만, 상당수 소비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다.
리콜 진행 중에도 홈쇼핑서 문제의 밥솥 판매
심지어 리콜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대형 홈쇼핑을 통해 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도 있다. 올 4월 I홈쇼핑에서 LG전자 P-M시리즈 압력밥솥을 구입했다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정모씨(35)는 “당시 이 밥솥은 쇼핑몰의 추천상품 코너에 올라와 있었고, 제품 결함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듣고 혹시나 싶어 서비스센터에 문의해보니 리콜 대상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리콜이 진행 중이었다는데, 어떻게 문제 있는 상품이 버젓이 팔리게 내버려뒀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나”라며 분노했다. 그 시기에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을 알리는 ‘추천상품’ 코너에 이 제품이 올라 있었다면 정씨 외에도 리콜 시작 뒤 문제가 있는 밥솥을 구입한 이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기자회견을 열어 '보상 리콜 실시'를 발표하는 모습(아래).
하지만 제조물 책임법 관련 소송 전문 변호인인 백현기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리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LG 사건의 경우에도 제조사의 부주의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서라면 엄청난 소송에 휘말렸을 것”이라며 “이제 우리 제조사들도 소비자들을 두려워하고 제품 결함이 나타났을 경우 이를 숨기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