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출신으로 1999년부터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서 머물며 나무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고규홍씨(44·사진)가 절집의 아름답고 오래된 나무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절집나무’를 펴냈다. 사진작업은 지난해 ‘이 땅의 큰 나무’를 펴내며 호흡을 맞췄던 사진작가 김성철씨가 맡았다. ‘이 땅의 큰 나무’ 못지않은 울림을 주는 나무 보고서다.
“절집들은 모두 오랜 역사와 문화의 한켠을 말없이 지켜주는 전통문화의 증거물들이지요. 절집마다 오래된 이야기와 기록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는 소리 없이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사람살이를 지켜본 나무가 있습니다. 또 그런 나무를 말없이 키워온 절집 사람들의 생명존중 문화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절집은 모두 33곳. 170여곳의 절집 답사를 거쳐 선정했다. 나무는 산뽕나무, 산벚나무, 고욤나무, 보리수, 백목련, 고로쇠나무 등 60여종. 지은이는 각각의 절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진 환경, 식물학적 생태까지 보여준다.
‘자연이 빚은 수목원’이란 별칭을 얻은 전남 순천의 선암사 같은 곳에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들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절집 창건 초기에 심어진 나무를 이제껏 잘 가꿔오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가의 전통 덕분이다.
충남 서산 개심사에선 자연의 생태를 존중한 건축 철학도 엿볼 수 있다. 이곳 요사채인 심검당에는 기둥으로 쓰기에 너무 심하게 휘고 비틀린 나무로 집을 지어 자연 모습 그대로를 건축물에 끌어들인 옛 스님들의 지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천리포수목원 재단 감사이며 무가지 ‘포커스마라톤’의 온라인팀장으로 있는 고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답사와 글쓰기로 보내며, 나무처럼 느리고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