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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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전쟁 끝나도 고민은 계속

이라크전 마무리·반전 국가들과의 관계·미군 재편·내년 대선 등 난제 산더미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3-05-14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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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다드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이라크전쟁의 결과는 아직 판명 난 것이 없다.

    이라크전 이후 워싱턴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보다는 시험을 하루 앞둔 수험생의 긴장된 분위기가 여전히 더 압도적이다. 주요 신문들에서 이라크전으로 인한 임시 전쟁 섹션이 사라진 지는 벌써 보름이 넘었고, 1면 머릿기사는 다시 마이클 조던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외교 정책 결정자들이 전쟁을 끝내고 휴식에 들어갔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다.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태산인 탓이다.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측했던 대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 없어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적한 난제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이 주도해서 새판을 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질서다. 그렇다 보니 부시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숙제의 목록은 길기만 하다.

    사우디서 미군 철수문제도 골치

    이 목록의 맨 윗줄은 이라크전의 마무리다. 워싱턴은 이라크의 미군이 ‘해방군’이기를 원했지만 ‘점령군’이 되어버렸다. 이 점령군은 최소한 몇 개 사단 규모로 최소 몇 년간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라크 종전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전후 복구 문제도 문제지만 이라크 지도부 구성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골칫거리다. 이라크 내 다수종족인 시아파와 소수 종족인 수니파, 쿠르드족을 한자리에 앉혀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여의치 않다. 더구나 터키와 이란의 협조 없이는 가당찮은 일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이란 중부 나탄즈의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란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보인다.



    두 번째 목록에 올라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1991년 미국이 걸프전 이후 걸프 지역에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쐐기’ 같은 곳이었다. 술탄 공군기지는 이라크 남부 정찰을 도맡은 핵심 군사기지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 공군기지에 있던 미 공군 작전지휘소를 카타르로 옮기겠다고 했다. 사우디 주둔 미군도 올 여름까지는 전면 철수시킨다. 이는 미국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군은 더 이상 사우디에 주둔할 명분이 없어졌다. 사우디와 미국의 정치상황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자국 군대를 주둔시킬 다른 나라를 찾아야 한다.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걸프 지역 소국 가운데 어느 지역을 선택하더라도 미군 주둔은 정치적으로 보나, 전략적으로 보나 억지를 감수해야 한다.

    사우디에서 미군만 빼낸다고 사우디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석유 정책, 아랍권에서의 사우디의 역할, 사우디의 국내 정치 등 산적해 있는 미묘한 문제로 사우디 왕족의 워싱턴 나들이 횟수가 과거보다 늘면 늘었지 줄어들 리는 없다.

    셋째는 대(對)러시아 프랑스 독일 외교다. 무슨 수를 쓰든 이라크전 반대로 똘똘 뭉쳐 있는 이 세 나라를 떨어뜨려놓아야 한다. 물론 오히려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이라크 복구에 따른 이권을 일정 부분 넘겨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의 마음을 미국 쪽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프랑스는 반미동맹을 와해시키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한 가능성을 이미 내비친 바 있다.

    넷째, 영국의 블레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것도 부시 대통령의 숙제 가운데 하나다. 이라크전으로 갈라진 블레어와 영국민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주지 않으면 그나마 믿고 있는 미·영 동맹마저 흔들릴 판이다.

    다섯째는 유엔이다. 부시는 신보수주의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효용성을 믿지 않는다. 초강대국 미국의 앞길을 방해하는 애물단지쯤으로 여긴다. 이라크 과도정부 구성, 전후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이라크 국내 안보와 경제 재건 등은 미국 혼자 해내기에는 벅찬 과제들이다. 밉고 싫더라도 유엔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은 이를 위해 콜린 파월이라는 카드를 준비해두고 있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마련해둔, 밉든 곱든 믿어야 할 해결사다. 또 미국이 아무리 일방주의의 효용성을 믿는다 해도 유엔 역시 미국의 세계전략을 구축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다. 최소한 미국이 ‘초부랑국(hyper-rogue power)’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이미 듣고 있기는 하지만) 유엔은 필요하다.

    여섯째는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미국이 깨끗하게 해결하기를 원치 않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문제다. 유럽은 미국이 이라크에만 신경 쓰고, 유럽의 바로 이웃인 중동지역 안보에 직결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는 등한시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친(親)이스라엘 강경 로비파의 주머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유대계 표를 얻어야 선거에 이길 수 있고, 아버지 부시의 원한(사담 후세인)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을 치른 미국의 명분은 두 가지였다.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이라크를 독재에서 해방시켜 자유국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아직 흔적도 못 찾았다. 이럴 때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이라크를 해방시켰다는 명분이다. 전쟁의 이름도 ‘자유 이라크(Freedom of Iraq)’였다. 이라크 해방을 통해 아랍권에 민주주의를 확산한다는 민주주의 도미노론이 그 배경이다. 이 민주주의 도미노론은 결국 팔레스타인도 겨냥하고 있다. 이라크 독재를 타도하는 시범을 보여 온건한 아랍 정권들로 하여금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 폭력을 쓸 데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이스라엘 옆을 지키겠다는 구상이다. 부시 행정부 내 관리 모두가 이런 이상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말과 행동으로 봐선 부시 대통령 자신이 이런 구도를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친이스라엘 강경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워싱턴에서는 비밀도 아니고 쉬쉬할 일도 아니다. 신보수주의자 대부분이 유대계고, 유대계는 미국을 이끌어가는 거대한 축이며, 이 축은 부시 행정부 안팎 곳곳에 세워져 있다. 더구나 폴 월포위츠 국방차관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 축의 기수다.

    일곱 번째는 이른바 ‘럼스펠드 독트린’이라는 미군 재편이다. 부시 대통령이 럼스펠드에게 통째로 떠넘긴 숙제다. 21세기형 전쟁을 위한 미군을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을 수행하기에는 럼스펠드만한 적임자가 없다. 이라크전으로 힘도 세졌고, 미래형 전쟁에 대한 자신의 개념도 확고하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무기로 무장한 소규모 특공대의 최단기전이 럼스펠드의 21세기형 미국 전쟁이다. 이미 이라크전에서 써먹었다. 개전 2주째 이런 전쟁론이 모진 비판을 받긴 했지만, 지금 럼스펠드는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듣는다. ‘키신저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행정부 참모’ ‘맥나라마 이후 최강의 국방장관’ ‘맥아더 이후 최고의 전투 전략가’ ‘처칠 이후 가장 산뜻하면서도 퉁명한 정치가’ 등등. 물론 럼스펠드 주변사람들의 말이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이라크전 이전에 이미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구상을 끝내놓고 있었다. 멀게는 QDR (Quadrennial Defence Review)이라 불리는 국방부의 ‘매 4년 국방정책 검토 보고서’가 나온 2002년 9월이고, 가깝게는 이라크전 직전이다.

    미군의 현역 병력 수는 약 13개 사단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발칸 등에 이미 발이 묶여 있는 병력과 필리핀 등 분쟁 가능 지역에 파견할 예상 병력을 합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10개 사단은 되어야 한다. 물론 한반도 분쟁시 증원할 병력도 계산되어 있다. ‘2개 동시 전쟁 전략’을 접었다고는 하지만 이 카드를 언제 다시 써먹을지 모르는 만큼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자니 병력이 충분치 않다. 더구나 병력 감축과 예산 삭감이라는 정치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럼스펠드의 펜타곤은 최첨단무기 프로젝트에 무한정에 가까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해외 주둔 미군 감축 및 재배치에서 남는 돈이 이 프로젝트에 재투입된다.

    여덟 번째로 부시 대통령이 풀어야 숙제가 가장 중요하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의 재선 성공이다. 국내 경제가 핵심이다. 앞의 일곱 가지 숙제는 여덟 번째 숙제를 풀기 위한 것이다. 나머지는 다 풀고 마지막 한 가지만 못 푼다면, 아버지 꼴이 되고 만다. 미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집중 거론되는 사람이 플로리다 주지사인 동생 젭 부시다. 그러나 동생은 2008년용이다. 공화당이 부시의 재선을 자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결정적 하자가 없는 한 대통령의 재선을 가능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미국의 정치구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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