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정유시설 인근에서 미사일 잔해가 떨어져 폭발하고 있다. 이날 사우디는 이란발 탄도미사일 8기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란의 이런 보복 공격은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세를 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말라면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은 미국과 사전 협의가 없었으며, 이란이 카타르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사우스 파르스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지 않았다. 다니엘 소벨만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교수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지만 카타르나 쿠웨이트 등 걸프국들은 군사적으로 훨씬 취약하다”면서 “이란은 이들을 이용해 강력한 후원국(미국)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지적했다.
걸프국 에너지 시설 피해 87조 원 달해
소벨만 교수는 이란이 이른바 ‘삼각 강압(Triangular Coercion)’ 전략으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맞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각 강압 전략은 직접적으로 제압할 수 없는 상대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취약한 제3자를 공격하는 게임 이론을 말한다. 이 경우 제3자는 주로 걸프국이다. 사우디,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 오만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들과 요르단, 이라크 등이다. 대부분 군사력이 약하지만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중요한 동맹이자 파트너들이다. 요르단을 제외하면 모두 산유국이다.미국은 그동안 이들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을 주둔시켜왔다. 이란은 그동안 바레인의 미 해군 제5함대 기지, 카타르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 쿠웨이트 알 살렘 공군기지, UAE 알 다프라 공군기지, 사우디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 요르단 무와파크 살티 공군기지 등 미군기지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왔다. 이에 따라 중동 지역 미군기지 복구비용이 최대 50억 달러(7조54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란은 이처럼 중동 지역 미군기지를 공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피해가 상당 부분 걸프국들에 집중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동 지역 에너지 관련 시설 피해는 카타르 등 9개국에 걸쳐 80여 곳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라이스타드 에너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국들의 석유·가스 생산 시설과 정제 시설, 송유관이 피해를 입었다. 필요한 시설 복구비만 최소 340억 달러(51조2700억 원)에서 최대 580억 달러(87조47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시설은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아 향후 정밀진단 결과에 따라 최종 복구비용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공급망 애널리스트 카란 사트와니는 “대규모 복구 작업에 필요한 장비 수요가 폭증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전체에 극심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도 “전쟁 이전 수준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회복하는 데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프로젝트 프리덤’ 무산시킨 이란의 전략

이란 페르시아만 해협청이 발표한 호르무즈해협 통제선. 페르시아만 해협청 X 계정
미국 NBC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인 사우디 정부는 미국 정부에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에서 미군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작전 지원을 위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전화통화를 갖고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 중단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한 관리는 “지리적 특성상 호르무즈해협에서 각국 선박들을 탈출시키려면 중동 지역 동맹과 파트너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걸프국들에 미군의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에 협력할 경우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소벨만 교수는 이를 두고 “이란이 미국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런가하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조치도 삼각 강압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은 3월 중순 이후 세계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해 왔다. 이를 통해 페르시아 만과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있는 2천여 척의 선박들을 사실상 ‘인질’로 잡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니티아 라브 연구원은 “이란이 선박 인질을 오래 붙잡아 둘수록, 이란이 해협 재개방에 있어 합법적인 이해관계자이자 수혜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르무즈해협 통항 관리를 명분으로 이란 정부가 설립한 페르시아만 해협청(PGSA)은 5월 19일 해협 일대에 통제 해역을 설정한다고 밝혔다. 해협청이 공표한 통제 해역의 동쪽 경계선은 이란의 쿠헤 모바라크와 UAE 남부 푸자이라를 직선으로 연결한 선이다. 또 서쪽 경계선은 이란 게슘섬 끝단과 UAE 움알쿠와인을 연결하는 선으로 UAE의 영해를 아우르고 있다. 해협청은 통제 해역을 경유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은 반드시 사전 조율을 거치고 공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인질’이 된 선박들의 소속 국가들은 이란의 이런 요구사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미국에 종전 협상을 조속히 타결해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이들 국가의 호소를 무조건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다. 프랑스 파리정치대(시앙스포)의 니콜 그라예프스키 교수는 “이란이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면서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혁명수비대 “공격 재개 시 중동 넘어 확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19일 걸프국들 정상으로부터 이란에 대한 공격 보류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뉴시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경우 이란은 걸프국들에 더 강도 높은 보복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재공격을 받을 경우 걸프 국들의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유전, 정유 시설, 항만 등을 타격하면 유가 급등과 물류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분명하고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 국제안보연구소(GSI)의 이란 안보 전문가인 하미드 레자 아지지 연구원은 “이란이 미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걸프국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이란 혁명수비대는 5월 20일 성명을 통해 “이란에 대한 침략이 재발할 경우 중동 전쟁이라고 공언했던 전쟁이 이번에는 역내를 훨씬 넘어 확전될 것”이라면서 “우리의 파괴적인 타격이 당신들을 짓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삼각 강압 전략으로 재미를 본 이란이 앞으로 미국과 관련된 안보 취약국들을 공격하겠다는 야심까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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