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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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그날, 구마모토는 전쟁터였다

대책 없는 여진 습격에 공포 도가니…시험대 오른 아베 총리 리더십

  • 장원재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입력2016-04-25 15: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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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공항에 내린 것은 4월 15일 오후 2시 무렵이었다. 전날 밤 발생한 규모 6.5 지진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하네다국제공항에서 출발한 길이었다. 지진 때문에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싶었으나 출발시간이 다소 늦어졌을 뿐 비행기는 무사히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먼저 택시를 타고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마시키(益城)정을 찾았다. 택시 운전사 모리 아도시노리(65) 씨는 전날 지진에 대해 “집에 가는 길이었고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신주가 쓰러지나 싶을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구마모토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제 같은 일은 태어나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

    마시키정 중심가를 1km가량 앞두고 극심한 정체가 시작됐다. 왕복 2차로에 자위대 차량, 경찰차, 구급차, 취재차량 등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카메라 가방을 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논밭을 한참 걸어가니 담벼락이 무너진 집들이 나타났다. 중심가에 도착하자 처참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 깨지거나 지붕 일부가 깨진 곳은 부지기수였고 건물 전체가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도 많았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거미줄처럼 균열이 나 있었다.

    TV 등 부서진 가전제품을 승합차에 싣던 40대 남성에게 말을 걸자 “전날 밤 차에서 밤을 새웠다. 가족은 다행히 무사하지만 앞으로 어디에 가서 무얼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편의점이나 마트는 여진 우려 때문에 모두 문을 닫았다. 중심가 마트 안에서 상품을
    정리하던 상인은 “팔 수 있는 게 거의 안 남았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피난 장소인 마을 공민관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는 주민들이 전날 밤 사용한 모포와 담요가 쌓여 있었다. 여진 우려 때문에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노상에서 밤을 새운 주민 10여 명이 불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릎을 주무르며 앉아 있던 니시카와 구니코(67) 씨는 “마침 친구 집에 가 있을 때 지진이 났다. 그릇과 책 등이 떨어져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아래 숨었다 지진이 약간 진정된 틈을 타 피난소로 왔다”고 말했다.

    공민관 뒤편 마을 사무소는 구호물품을 나르는 자위대와 이를 받으려는 주민으로 북적였다. 일본 방송국 차량과 마이크를 잡은 기자들도 눈에 띄었다. 취재를 마친 뒤 다른 한국 기자의 차를 얻어타고 간신히 구마모토시로 이동했다.

    침대에 누운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어둠 속에서 갑자기 침대가 심하게 흔들리며 몸이 내던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지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 탁자 밑으로 가려고 했지만 방 전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침대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스마트폰에서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라는 비상 알람이 울렸다.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스치며 가족 생각이 났다.

    진동이 멈추자 호텔 복도 스피커에서 “침착하게 주차장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불을 켜니 방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라디에이터, 의자, 쓰레기통이 넘어졌고 찻잔과 책 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옷을 걸쳐입고 노트북컴퓨터 등을 챙겨 나가니 세탁실 벽에 붙어 있던 건조기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수도관이 파손돼 복도 천장 곳곳에서 물이 줄줄 떨어졌다.

    주차장으로 가니 직원이 투숙객들에게 “건물과 나무로부터 떨어지라”고 안내했다. 그 순간 다시 땅이 크게 흔들렸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투숙객 한두 명이 비명을 질렀다. 호텔 직원들은 침착한 태도로 의자와 모포, 물 등을 가져와 투숙객들에게 나눠줬다. 객실 명부를 토대로 이름을 불러 안부를 확인했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여진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방송에서는 “4월 14일 밤에 발생한 규모 6.5 지진은 전진(前震)이었고 이번이 본진(本震)”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의 ‘개헌’ 구상도 차질 

    날이 밝은 후 돌아본 구마모토 시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무너진 다리, 뒤틀린 건물, 기울어진 신호등과 전봇대…. 사람 몸 크기의 바위가 굴러떨어져 도로를 막은 곳도 있었다. 주유소에는 자동차들이 긴 줄을 섰고, 주민들은 담요 등을 챙겨 대피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대중교통이 전면 중단돼 거리는 한산했고, 구조활동에 나선 소방차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 요란했다.

    구마모토 공항은 전면 폐쇄됐고 신칸센이나 고속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구마모토 역 앞에는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여 발을 동동 굴렀다. 역에서 만난 한국인 커플은 “전날 신칸센을 타고 오다 비상 탈출해 택시로 시내까지 들어왔다. 지진에 정전까지 겹쳐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기자는 한국인, 일본인과 함께 택시를 타고 100km가량 떨어진 후쿠오카(福岡)로 이동해 간신히 도쿄로 돌아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가장 강력한 이번 지진으로 4월 20일 오전 11시까지 47명이 숨지고 1147여 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중에는 목조주택이 무너지면서 그 밑에 깔려 참변을 당한 사람이 많았다. 대규모 산사태가 난 미나미아소(南阿蘇)촌의 경우 골든타임(재해 시 생존율이 크게 떨어지는 시간) 72시간이 경과한 가운데 아직 4명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강진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시험대가 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4월 14일 밤 1차 강진 후 15분 만에 언론 앞에 나섰고, 16일에는 오전 3시 27분 카메라 앞에 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민주당 정권이 미숙한 초동대응으로 자멸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복구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일단 초동 대응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마이니치신문’이 19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응답이 65%에 달했고 내각 지지율도 소폭(2%p)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원 물자가 신속하게 피해민에게 도달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져 분위기가 바뀔 개연성도 있다.

    5월 소비세 인상 연기를 발표하며 중의원을 해산한 뒤 개헌을 내걸고 중·참의원 합동선거를 치러 개헌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구상에도 적잖은 차질이 예상된다. “지금 같은 때 선거를 할 수 있겠느냐” “피해 복구와 부흥에 매달려야 하는데 개헌이 웬 말이냐”는 말이 자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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