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 닷새 전인 4월 8일 광주 충장로에서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 대선(대통령선거)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의석 28석 가운데 국민의당 23석, 더민주당 3석, 새누리당 2석으로 화답했다. 30석 가운데 26석에서 민주통합당 후보가 당선하고 야권연대의 한 축이던 통합진보당이 3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한 19대 총선 상황과 비교하면 더민주당이 통합진보당 수준으로 참패한 것이다.
총선 이후 문 전 대표는 ‘정계은퇴와 대선 불출마 약속’ 이행 대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씨와 함께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는 DJ 생가를 찾아 호남 여론 무마에 나섰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문 전 대표는 하의도 주민과 오찬에서 “(호남이) 지난번 대선 때 그렇게 지지를 모아주셨는데 제가 제대로 보답해드리지 못했다. 앞으로 정치를 더 잘해서 꼭 갚아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잘해서’ ‘꼭 갚아드리도록 하겠다’는 문 전 대표의 말 속에는 내년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어 보인다. 또한 정계은퇴, 대선 불출마 등 열흘 전 자신이 호남 유권자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이행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DJ 생가 방문 이후 문 전 대표는 경남 김해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 자리에 노 전 대통령과 별 인연이 없는 김홍걸 씨가 동행했다. 문 전 대표는 호남 의원들의 연쇄 탈당으로 더민주당의 호남 기반이 무너져내리던 시점에 김홍걸 씨를 영입, 호남 민심을 추스르려 했다.
총선 후에도 문 전 대표가 김씨와 동행하는 이유는 뭘까. 당장은 ‘정계은퇴, 대선 불출마’ 약속 불이행에 대한 따가운 호남 여론을 무마하려는 방패막이 성격이 짙다. 그러나 또 다른 뜻도 담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20대 총선에는 불출마했지만, 내년 대선 전후로 ‘김홍걸 국회의원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20대 총선 직후 검찰은 국민의당 박준영 당선인의 ‘공천 헌금’ 의혹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박 당선인에 대한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이뤄져 총선 후 일주일만에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쳤고, 회계책임자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더욱이 검찰은 박 당선인에 대해 20대 국회 개원 전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영 당선인의 선거구는 전남 신안·무안·영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인 신안군이 박 당선인 선거구에 포함된 점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내년 12월 대선 투표일에 문 전 대표는 더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고, 김홍걸 씨는 전남 신안·무안·영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동반 출마하려는 묵계가 이번 하의도와 봉하마을 교차 방문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