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북한군 파병으로 신냉전체제 구축 의도

러시아, 혈맹 북한과 군사동맹 강화…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11-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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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군인은 1945년 북한 애국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 침략자들로부터 해방을 위해 싸웠고, 1950~1953년에는 우리 조종사들이 수만 번의 전투 비행을 했다. 우리 선대의 위업은 오늘날 양국 관계 발전의 좋은 토대가 됐다.”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평양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평양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크렘린궁 제공]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19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모두 발언을 통해 6·25전쟁 당시 소련 공군 조종사들의 참전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며 한 말이다. 소련 공군 조종사들이 6·25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을 소련과 러시아가 시인한 적은 없었다. 소련 공군의 6·25전쟁 참전은 극비 사항이었다.

    이재훈 조선대 동북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최근 입수한 러시아 국방부 중앙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소련 공군의 비밀 전투보고서에 따르면 소련 공군은 6·25전쟁 당시 6만3229회 전투비행을 했고, 미국 등 유엔군 전투기 1309대를 격추했다. 당시 참전했던 소련 공군 조종사 출신의 러시아 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오를로프 박사는 러시아 일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와 인터뷰에서 “조종사 2000여 명이 중공군처럼 위장한 군복을 입고 전투기로 출격해 미군 전투기와 싸웠다”며 “소련은 전투기 335대와 조종사 120명을 잃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 앞에서 소련 공군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밝힌 것은 러시아와 북한의 혈맹(血盟) 관계를 강조하려는 의도다.

    두 정상은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명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 조약)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 조약은 무엇보다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는 1961년 북한과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조소동맹조약)과 같은 수준이다. 실제로 북·러 조약 제4조에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은 조소동맹조약의 제1조와 동일하다.

    조소동맹조약은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가 1996년 조약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폐기됐다. 이후 러시아는 2000년 북한과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에는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제외됐다.

    소련은 냉전 시절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및 공산주의 국가와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유사시 자동 군사 개입을 약속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이 조약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 조소동맹조약과 유사한 북·러 조약을 체결한 것은 러시아의 지위를 냉전 시절 소련 수준으로 격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새 조약을 토대로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며, 군사 기술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힘으로써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말 그대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끌어들여 신(新)냉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확실한 우군 만들기 나선 푸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5월 14일 전술미사일 관련 설비를 시찰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5월 14일 전술미사일 관련 설비를 시찰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푸틴 대통령은 자국을 지원하기 위한 북한의 파병을 확인하면서 북·러 조약의 제4조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그는 10월 24일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 참석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부인하지 않은 채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북·러 조약이 비준됐는데, 그 조약에는 제4조가 있다”며 “우리는 북한 지도부가 러시아와 합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10월 14일 북·러 조약 비준안을 하원인 국가두마에 제출했다. 국가두마는 10월 24일 이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비준안은 거수기인 상원을 통과할 것이 분명하고, 이 경우 푸틴 대통령이 서명하면 발효된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인 쿠르스크주를 침공한 만큼 북한이 이 조약의 제4조에 근거해 군 병력을 자국에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의 붕괴는 20세기 최대 지정학적인 재앙”이라고 말할 정도로 러시아를 소련 수준의 강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이른바 ‘신냉전체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대표 사례로 이웃 국가 벨라루스와 군사동맹을 들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3년 3월 ‘유럽 최후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나토의 침공 위협을 명분 삼아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같은 해 5월 일부 전술핵무기를 벨라루스로 이전했는데, 이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국외에 핵무기를 배치한 첫 사례였다. 벨라루스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나토 3개 회원국은 물론 우크라이나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러시아군과 벨라루스군은 올해 6월 전술핵무기 훈련까지 공동으로 실시했다. 당시 훈련에는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M 단거리탄도미사일과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미그-31 전투기,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22 등이 참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년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으로선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에 맞서고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우군 만들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푸틴 대통령이 북한과 벨라루스처럼 냉전 시절 동맹 관계를 부활시키면서 신냉전체제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다. 실제로 벨라루스를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준 러시아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북·러 조약 제2조는 “전 지구적 전략적 안정과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 지향 및 전략 전술적 협동 강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략적 안정은 핵보유국 간 핵 균형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제10조엔 ‘평화적 원자력’ 분야 협력도 명시됐다. 미국-인도의 원자력 협정에서 보듯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와 원자력 협력은 해당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 러시아에 무기 지원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로만 로보프 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RISS) 선임연구원은 “북·러 조약은 미국·한국·일본의 협력 강화와 한반도 내 미국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대규모 병력을 지원받아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까지 보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에 포탄 800만여 발 외에도 불새-4 대전차미사일, RPG 대전차로켓과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로 불리는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지원해왔다.

    북한은 러시아와 혈맹 관계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유사시 러시아군의 파병 같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러시아의 핵우산 등을 제공받아 한미일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고, 벨라루스처럼 러시아군을 자국 영토에 주둔시키거나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과 다탄두 기술을 비롯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전략핵잠수함(SSBN) 건조 기술, 군사정찰위성의 사진·영상 촬영 기술, 지상국과 통신 기술 등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10월 23일(현지 시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파병된 북한군의 전투능력 등에 의문은 있지만, 북한군의 파병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진 러시아를 구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군사 균형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도 있다. 러시아군에 입대한 병사는 2000달러(약 276만 원) 월급과 소정의 일시금을 받는다. 북한군에게도 이런 급여 기준이 적용될 경우 1만2000명을 파병한다면 한 달에 2400만 달러(약 332억1000만 원)를 벌어들이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파병을 통해 신냉전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북한과 러시아의 혈맹관계는 앞으로 국제질서와 안보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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