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유세할 때 모습. [Biden Camp]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2016년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동영상을 제작해 자기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주는 내용 중 일부다. 해리스 당선인은 자메이카계 흑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인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딸 이름을 ‘카멀라(kamala)’라고 지었다. 카멀라는 인도 고어(古語)인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생소한 이름이다 보니 해리스 당선인은 그동안 자기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는 것을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도 출신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발음해달라고 동영상까지 만든 것이다. 해리스 당선인은 자신이 인도 출신이라는 자부심까지 보여왔다. 올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을 때 수락연설에서 “치티(chittis·인도 타밀어로 이모나 고모)를 비롯해 가족의 응원에 감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도 출신이라는 자부심
카멀라가 젊었을 때 어머니 샤말라, 여동생 마야와 함께 찍은 사진. [해리스 인스타그램]
해리스 당선인은 12세 때인 1976년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사해 살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워싱턴 DC의 하워드대에 진학했는데, 하워드대는 흑인 엘리트 교육의 상징과도 같은 학교다. 1989년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후 그는 검사의 길로 들어섰다. 샌프란시스코시 검사장을 거쳐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까지 오른 뒤 2016년 상원의원에 당선했다.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 중도에 포기했지만, 조 바이든 당시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발탁됐다.
특히 해리스 당선인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교류가 끊기는 바람에 외가 친척들과 가깝게 지냈다. 아버지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그의 외가 친척들을 보면 모두 엘리트다. 외삼촌 발라찬드란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및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큰 이모 샤랄라는 산부인과 의사이며, 작은 이모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는 정보과학자다. 외사촌 샤라다는 미국 메릴랜드대 비교문학 부교수다. 여동생 마야는 인권변호사로,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수석고문을 담당했다. 외조부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하게 지냈다. 특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그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아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나는 온갖 장벽을 무너뜨린 어머니의 딸’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10여 년 전 암으로 사망했다.
“해리스는 우리 마을의 딸”
해리스 당선인의 인도 외가 마을 사람들이 축하 불꽃을 터뜨리고 있다. [PTI]
이런 가운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조 바이든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인도계 미국인들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이른바 ‘해외 인도인’(Overseas Citizenship of India·OCI)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OCI는 유학 또는 해외 취업 등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인 NRI(Non-resident Indian)와 이민자 및 이민 2~3세대를 의미하는 POI(Person of Indian Origin)를 통칭한다. 전체 OCI의 13.9%인 446만 명이 미국에 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투표권을 갖는 인도계 미국인 유권자 수는 190만여 명이다. 미국 전체 유권자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인도계 유권자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에 재산도 상당하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형 IT(정보기술)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고위 간부의 상당수가 인도계다. 이들은 각종 선거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등 정치적 목소리를 드러내왔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온 이민 규제 강화 정책을 반대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격전지였던 텍사스(16만 명), 펜실베이니아(6만1000명), 미시간(4만5000명), 플로리다(8만7000명), 조지아(5만7000명)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같은 핏줄’인 해리스의 당선을 위해 바이든 대선후보를 찍었다. 인도의 유력 경제지 ‘이코노믹 타임스’는 ‘인도계 기술자들이 대거 미국 이민을 신청했지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면서 ‘바이든 정부가 50만 명의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4년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DOS]
부통령은 힘이 없는 자리?
카멀라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해리스 인스타그램]
바이든 당선인은 상원의원 시절이던 2006년 언론과 인터뷰에서 “2020년에는 미국과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게 내 꿈”이라면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세계는 더욱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바이든 당선인의 의도는 인도와 미국이 협력한다면 중국을 견제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바이든 당선인이 누구보다 해리스 당선인을 신임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해리스 당선인의 추천으로 요직 중 요직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에 인도계인 니라 탠든 미국진보센터(NEC) 의장을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해리스 당선인 덕분에 미국과 인도가 더욱 긴밀한 밀월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임하지만 힘이 없는 자리라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나이(78)를 고려할 때 56세인 해리스 당선인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 대선후보로 도전할 수도 있다. 해리스 당선인이 앞으로 이름처럼 연꽃을 활짝 피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