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 [동아db]
우리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권과 표현의 자유 덕분에 오늘날 한 인간으로서 그 존엄성을 보장받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자유롭게 하고 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일부 구성원들과 극성 지지자들은 입으로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서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조직화한 그들은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발견하면 그 비난의 주체가 한때 같은 진영에 있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 봐주지 않고 비난과 위협을 쏟아낸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들여다 놓은 이들 앞에 헌법이 말하는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김여정 하명법’?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특정 정치인 또는 세력을 성역화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 이것은 헌법과 형법을 위반한 범법 행위가 된다. 그런데 이런 위헌적인 행태가 다른 곳도 아닌 법을 만드는 입법부에서 벌어졌다.12월 8일, 더불어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 처리했다. 벌안 발의자는 더불어민주당은 송영길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의원(무소속)이다. 개정 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한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 살포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만약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조항도 넣었다.
이 법안은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린다. 북한 김여정이 지난 6월 4일, 담화문을 통해 탈북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남조선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했고, 그 다음날 김홍걸 의원이 앞장서서 법안을 발의하고, 여기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이 가세하면서 상정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을 지난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 했지만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법안이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최장 90일간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심사하도록 규정한 법령을 근거로 이 법의 처리를 막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12월 1일부로 90일이 지났다”면서 해당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90일간 조정위는 열리지 않았고,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해 본회의에 상정했다.
앞서 야당 의원들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에서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비난하자 송영길 위원장은 “5선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김여정의 하명이라도 받아서 발의했겠는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며 야당 의원들을 꾸짖었고, 여당 외통위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이러한 졸속 처리의 배경이 ‘매우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독재 세력에 대한 비판과 북한 주민에 대한 외부 정보의 유입 수단을 차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에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국회에서 나온 말인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주의적 지원 차단 악용 가능성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김홍걸 무소속 의원. [동아db]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로 UN 인권이사회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는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는 뉴욕 현지시각으로 12월5일,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 정부를 맹비난했다. 이 단체가 북한이나 시리아 같은 불량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G20에 속하는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정식 비판 성명을 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HRW는 한국 여당이 추진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시행될 경우, 한국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인권 활동을 범법 행위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지적하며 포문을 열었다.
HRW는 성명에서 “한국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정부 허가 없이 광고선전물과 인쇄물, USB 등 보조기억매체를 비롯하여 그 밖의 현금이나 재산상 이익이 되는 물건을 북한으로 보내는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 뒤 “이처럼 모호한 용어로 만들어진 법은 북한으로 보내는 식료품이나 의약품 등 다른 물건까지 규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인도주의적 지원을 차단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탈북 단체들은 대북전단에 다양한 외부 정보가 담긴 USB와 메모리 카드를 비롯해 현금과 의약품, 심지어 농사에 필요한 씨앗도 보내는데, 최근 미 국무부와 UN 인권이사회, 국제 인권단체들이 밝힌 것처럼 이러한 외부 정보와 문물의 북한 유입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북한 독재 정권을 흔드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외부 정보와 문물의 유입에 반대하는 것은 북한 독재 정권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뿐이다. 모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영유아 때부터 체계적인 세뇌 교육을 벌여 전제적 독재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있어 외부 정보 유입은 체제를 흔드는 중대한 위협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국무부와 의회는 최근 대북 정보 유입과 관련된 예산을 대폭 증액했고, 국제인권단체 역시 국내 탈북단체들과 연계해 북한에 대한 정보‧물자 유입 확대를 꾀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한국정부와 여당이 북한만큼이나 반발한 것을 놓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UN 인권이사회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매번 기권 중이며, 이번에 국회 상임위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것 외에도 대북 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탈북단체들에 대해 전방위적인 사무검사를 벌여 이들 단체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토머스 오헤아 킨타나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국제인권법과 헌법, 북한인권법 위반에 대해 경고했다.
정부는 “일부 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며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데, 이것 때문에 접경 지역에 사는 260만 주민의 생명과 재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행위 때문에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접경지역 주민이 위협을 받고 있다”며 UN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HRW의 성명 역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다. HRW의 존 시프턴 아시아국장은 VOA(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분노를 여과 없이 토해냈다. 시프턴 국장은 “한국 정부는 자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보호하는 것보다 김정은을 기쁘게 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조롱하며 “이 법안은 남북 양측 국민 모두에게 큰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자국민을 탄압해 김정은의 호감을 사려는 잘못된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국제 인권단체의 이 정도 수위 비난 성명은 북한의 김정은을 비롯해 화학무기로 자국민을 죽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국민 생활을 파탄으로 밀어 넣고 반대파를 닥치는 대로 잡아넣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와 같은 ‘글로벌 공인 악당’들에게나 주어지던 ‘악당 인증서’ 같은 것이다. 그런 인증서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받은 것이다. 도대체 작금의 이 나라가 헌법에 규정한 자유와 인권, 법치와 정의라는 가치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맞는지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