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칩 들어간 AI스피커 4만8000개 보급
해안감시 CCTV도 중국산, 비밀 데이터 송신칩 미확인
드론 통신 장비도 화웨이 장비 쓰는 회사가 납품
국방부의 ‘중국몽’, 동맹 관계 해칠 위험
육군 드론봇전투단이 드론을 조종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뉴시스]
그런 공직 사회에서도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있다.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내 관료로서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윗선’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른바 ‘높으신 분’이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그 의중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함이다.
여러 정부 부처 중에 군은 ‘높으신 분’ 눈치를 가장 심하게 보는 집단이다. 군에서 쓰는 좋은 표현으로는 이를 ‘지휘주목’이라고 하고, 일선에서는 속된 말로 “안테나를 위로 쫑긋 세운다”고 한다. 상명하복이 생명인 군대에서 상관의 지휘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추종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이러한 ‘지휘주목’이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벗어나 과도한 충성이 될 때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창하자 국방부는 국방부본부는 물론 말단 부대에까지 ‘국방 녹색성장’ 포스터를 붙이며 요란을 떨었다. 간부들에게 자전거 출퇴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장관을 비롯한 각 지휘관들은 검은색 세단 대신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들이 군 통수권자의 국정 철학을 작은 일상에서까지 공유하는 충성스러운 군인임을 앞을 다투어 과시했다.
박근혜 정부 때 ‘창조경제’라는 단어가 만들어지자 국방부는 ‘창조국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온갖 사업에 ‘창조국방’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창조국방 개념을 정립한다며 용역과제까지 내고, 장병들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창조국방 아이디어 공모전 판도 벌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방부는 빠르게 창조국방의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중국몽’이 채우기 시작했다. 북한과 9·19 군사합의를 통해 우리 군사력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고, 북한의 온갖 도발이 이어지며 우리 국민까지 살해됐는데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직 잘 지켜지고 있다며 앞으로 이 합의를 더 잘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국민이 아닌 정권에 충성하는 군의 이러한 ‘지휘주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장교만큼 3D(Difficult·Dirty·Dangerous)인 직업도 없다. 잦은 이사와 출동·야근에 시달려도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인사권을 쥐고 있는 윗사람 비위는 물론 툭하면 ‘데스노트(상급자에 대한 음해성 투서)’와 ‘드래곤볼 모으기(여럿이 상급부대나 청와대에 청원을 넣어 상급자를 곤란에 빠뜨리는 행위의 은어)’ 카드를 들고 나오는 하급자 눈치를 봐야 한다. 그렇다고 전역을 선택하자니 요즘 같은 극심한 취업난 시대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어떻게든 진급하고 오래 붙어 있으려면 ‘윗분’들의 눈에 들기 위해 안테나를 위로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안테나를 세운 군인들이 만들어낸 작품이 군의 중국몽(中國夢)이다. 군 통수권자가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같은 나라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중국몽 함께 하겠다”라는 지침을 줬으니 ‘국방 녹색성장’, ‘창조국방’ 때처럼 이제는 ‘중국몽’을 함께 할 차례가 된 것이다. 국방부의 중국몽은 ‘Made in China’ 제품 사용에서 시작됐다. 장병 복지, 경계 작전 능력 향상,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국방 분야 접목 등 온갖 명분으로 갖가지 장비들이 군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우리 군과 함께 작전하는 미국은 여러 채널을 통해 화웨이 등 중국의 대외 스파이 공작에 참여한 기업의 장비를 배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산 IT 장비들의 군 잠식 속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이실리콘이 생산한 반도체 칩. [진르터우탸오 제공]
국방부가 전군 생활관에 설치한 이 AI스피커에는 하이실리콘(HiSilicon)이라는 업체의 반도체가 탑재되어 있었다. 이 업체는 미국이 중국공산당의 대외 스파이 활동에 연루된 업체로 지목해 제재하고 있는 화웨이의 자회사로 주로 모바일 AP나 네트워크 반도체를 제작해 화웨이에 납품하는 업체다. 이 업체는 미 행정부의 제재 목록에 있는 회사다. 화웨이가 세계 각국에 수출한 통신 장비와 휴대전화, 가전제품에서 다량의 비밀 송수신 칩과 백도어 프로그램이 적발됐는데, 이 제품들을 화웨이에 납품한 업체가 하이실리콘이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에 의해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국방부는 ‘해당 칩으로 인한 보안 우려는 없다는 생산업체의 확인을 받았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보안 전문가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업체에 물어봤더니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보안 전문가들은 AI스피커가 호출되는 순간 군 관련 정보가 담긴 음성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민간 기업인 A사 서버로 전송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A사 역시 통신 장비에 상당한 수의 화웨이 제품을 쓰고 있고, 해외에서 이러한 구조 하에 수도 없이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회사 제품을 썼던 미국, 폴란드, 네덜란드, 호주, 아프리카연맹 등 셀 수 없는 국가들이 당했는데 우리만 문제가 없을 것이란다.
’국방 중국몽‘은 일선 경계작전에서도 구현 중이다. 북한 목선이 삼척항까지 들어오고, 태안에서 중국 보트가 제집 안방처럼 해안을 오가는데도 발견 못한 경계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추진되는 ’해강안 사업‘의 핵심 장비인 CCTV에서도 ’Made in China’가 발견된 것이다.
육군 9개 사단 17개 대대에 200여 대가 배치된 이 CCTV는 서류상 국내 업체가 납품했고, 군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이 CCTV는 사실 중국산이었다. 국내 한 언론이 취재한 결과 이 CCTV는 중국 톈진의 한 공장에서 제작된 CCTV와 동일한 모델이었고, 기기의 판매 인증을 발급해주는 국립전파연구원에도 군납 CCTV와 동일한 모델이 중국산으로 동시에 등록돼 있었다.
육군에 보급된 중국산 CCTV. [YTN뉴스 사진 캡쳐]
파키스탄 보안당국 조사 결과 이 CCTV는 촬영한 영상 데이터를 네트워크를 통해 특정 IP로 송신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해당 데이터를 수신하는 IP는 중국이었다. 파키스탄 국가 주요 시설을 한동안 중국이 전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산 CCTV 도면과 부품을 가져다가 국내에서 조립했는데, 그 안에 비밀 데이터 송신칩과 백도어가 있는지 들여다보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해외 스파이 혐의로 제재를 받고 있는 기업의 칩이 들어 있는 AI 스피커, 해외 주요 시설 촬영 정보 유출 의혹이 있는 업체의 부품을 쓴 CCTV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육군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드론봇 전투단’에서 구현되고 있는 ‘국방 중국몽’이다.
지난 4월, 전남 여수시 무슬목 서쪽 1.6km 해상 상공에 검은색 드론 한 대가 출현했다. 이 드론은 해상에서 미상 선박을 탐지·식별하고 해당 선박에 접근해 스피커를 이용해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선박이 드론의 경고 방송을 무시하고 도주하자 드론은 즉각 추격에 나섰고, 관련 정보를 인근에 있던 해경 경비함에게 제공해 해경이 해당 선박을 나포하고 진압하는 것을 지원했다. 육군과 대기업 B사, 해양경찰청이 함께한 드론봇 전투단 해상 경계 작전 시범의 한 장면이었다.
이날 시범에 동원된 드론은 대기업 B사의 스마트드론이었지만, 이 드론들은 중소기업인 U사, W사에서 제작된 모델들이었다. 문제는 이 드론의 통제 방식이다. 이 드론은 B사가 구축한 통신망을 이용해 드론에서 수집한 영상 정보를 관제센터로 전송하고, 관제센터의 명령을 수신한다.
기존에 구축된 이동통신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원거리에서도 효과적으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B사는 미 국무부가 콕 집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을 만큼 5G 네트워크 장비에 화웨이 장비를 많이 쓰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미 국무부 사이버·국제정보통신 담당 로버트 스트레이어 부차관보는 지난 7월, “미국은 B사 같은 기업들에게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면서 “화웨이 기술 도입 문제는 중국공산당이 그 기술에 장애를 일으키거나 감시 도구로 사용할 능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화웨이의 LTE·5G 네트워크에서 보안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폴란드 최대 이동통신사인 오렌지폴스카의 통신 서버에 사용된 화웨이 장비, 인도 국영통신사 바랏산차르니감(BSNL)의 서버에 적용된 화웨이 장비, 호주 정부망 서버에 사용된 화웨이 장비, 네덜란드 이동통신 3사가 도입된 통신망에서 모두 백도어가 발견됐다.
이들 백도어는 최초 보안 검사와 운용 단계에서 식별되지 않았을 만큼 잘 숨겨져 있었지만, 이상 데이터 트래픽, 즉 서버에서 몰래 데이터를 절취해 중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트래픽 때문에 덜미가 잡혔었다. A사는 화웨이 장비를 써도 보안상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지만,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진짜 문제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군은 미래 ‘게임 체인저’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드론봇 전투단의 관제 체계에 B사를 끌어들이고, 사단 사령부에 이 업체의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관제센터까지 만들었다. 미 국무부 스트레이어 차관보가 경고한 것처럼 육군의 드론봇이 중국의 감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기술적 장애가 발생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전투용 드론봇들을 중국이 통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AI스피커는 병영에 굳이 보급하지 않아도 될 장비였고, CCTV는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았으면 중국산을 피할 수 있었다. 화웨이 5G 네트워크로 관제되는 드론봇 역시 국방부가 화웨이 장비, 그리고 그 장비를 쓰는 특정 업체에 대해 경각심만 가지고 있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초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물론 국무부와 상무부 등 거의 모든 행정부 관련 부서 요인들이 한국을 콕 집어 ‘화웨이 경보 메시지’를 던진 바 있었다. 동맹국이 그런 경고를 해줄 때, 우리 국방부는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군 통수권자의 의중에 부합하기 위해 열심히 중국몽을 꾸었고, 그 결과 우리 국방 일선 곳곳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스파이로 낙인찍힌 ‘메이드 인 차이나’ 장비들이 보급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 해 왔던 전례를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국방부와 관련 업체들의 주장대로 군에 보급된 화웨이 연관 장비들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명색이 핵심 동맹국 중 하나라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이렇게까지 화웨이가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유사시 미군이 우리 군과의 커넥트(Connect)를 과연 달가워할까? 한미동맹이 망가지는 것도 이렇게까지 방법이 다양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다.